시인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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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사이, 일본을 몇 차례 다녀왔다. 단순한 친지 방문을 겸한 여행이 목적이었으나 유서 깊은 도시, 교토와 나고야, 그리고 오사카에 살아 숨 쉬는 역사적 흔적들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나간 긴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와 일본이 서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은 역사의 흔적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것들을 접할 때마다 전해오던 작은 떨림들은 지금도 머릿속에 아련히 남아 떠나질 않는다.

그러나 일본을 오가던 그 와중에도 끊이지 않았던 일본 정치 지도자의 어처구니없는 망언에 나의 마음은 편할 날이 없었다. 인정할 것을 인정치 않는, 왜곡된 역사의식이 얼마나 두 나라 사이의 관계에 해악을 끼치는가를 절실히 느끼며 ‘숙명’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래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의미에서 다시금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러한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몸담고 있는 출판사는 일본 인문서적의 번역본을 꾸준히 발간해 오고 있는 터라 일본을 바라보는 시각이 일반인에 비해 더 미묘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일본 내에서도 당당히 목소리를 높여 가고 있는 이른바 ‘양심적 지식인’의 용기(?)가 밴 저작물을 자주 접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직업적인 행운이요, 내 스스로가 만끽하는 쾌감인지도 모른다.

나에게 요즘 주어진 임무는 몇 해 전 펴낸 번역서 ‘퇴계 경철학’의 개정본 출간을 위해 문장을 다시 다듬는 일이다. 우연의 일치이겠으나 시기적으로 볼 때,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한 면도 없지 않다. 한 동안 ‘일본’이라는 단어가 나의 머릿속에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동양철학계 권위자 다카하시 스스무(高橋進)가 쓴 『퇴계 경철학』과의 여행을 다시 떠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일상에서 자주 누릴 수 없는 어떤 희열인 것이다.

『퇴계 경철학』은 퇴계 이황의 ‘경(敬)사상’, 곧 삼가하고 삼가함을 한평생 몸소 실천한 퇴계의 ‘자성록(自省錄)’이다. 이 책은 퇴계가 자신의 사상적 원숙기라고 할 수 있는 55∼60세까지의 시기에 문인들에게 보낸 서간 가운데서 수양과 성찰에 도움이 되는 편지 22통을 모아 직접 편집한 것이다.

‘낮게 생활하고 높이 생각한다.’ 삶은 간소하되 마음은 풍아(風雅)함을 참된 인간의 생활로 여긴 선비정신의 극치가 바로 ‘경사상’이다. ‘경’은 학문의 한 방법으로서, 진리를 이해하고 도덕적 주체를 확립하는 문으로 여겨졌다. 퇴계 이황에 이르러 이 ‘경’의 개념이 세계관, 인간관을 포함하는 철학 체계의 핵심이 되어 ‘경철학’으로 성립됐다. 퇴계는 ‘경철학’을 확립함으로써 유학(儒學)을 더욱 개성 있는 실천철학의 선비정신으로 집대성한 사상가라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이 가져간 『퇴계 자성록』은 일본 사상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경사상’은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260여 년 평화시대를 구축한 도쿠가와(德川) 정권의 이데올로기에도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의 교육도 바꿔 놓았고, 메이지 유신의 원동력이 되었으며, 메이지 신정부는 유학으로 국민성을 길러 도덕을 높이는 기반으로 삼았다. 

오륜(五倫)과 오상(五常)을 중시하게 된 일본은, 이와 같은 정신세계를 기초로 무사(武士) 근성에서 국민성을 개조하고 유교문화를 익혀 그들 나름의 도덕국가를 건설, 오늘과 같은 선진국으로 발전했다. 그 밑바탕에는 언제나 ‘퇴계 경철학’이 있었다. 

“조선 퇴계 이황의 ‘경사상’은 도쿠가와 정권 이데올로기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 또한 메이지 유신의 원동력이 됐던 야마자키 안사이(山崎闇齋) 학파, 요코이 쇼난(橫井小楠)과 모토다 나가자네(元田永孚) 등은 퇴계를 신처럼 존경했다. 이런 사실을 오늘날 일본인들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을 잊는다면 일본 문화가 발 딛고 서 있는 그 정신적 기반을 완전히 도외시해 버리는 게 되기 때문이다.” 도쿄대 아베 요시오(阿部吉雄) 교수의 말이  다시금 깊은 의미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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