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 열정과 분노로 뭉친 마왕
신해철, 열정과 분노로 뭉친 마왕
  • 오건
  • 승인 2019.06.14 13: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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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함께 읽는 스타인문학 6
분당구 수내동 신해철거리에 있는 신해철 좌상.
분당구 수내동 신해철거리에 있는 신해철 좌상.

신해철이라는 가수가 있었어.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꼭 기억해야할 가수야. 세상의 불의에 분노할 줄 알고,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가수였지. 아니 가수라고 얘기하기엔 그를 모두 설명할 수 없어. 탁월한 기타리스트이자 작사와 작곡에도 능했고, 프로듀서로서도 뛰어났거든. 뛰어난 언변으로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떳떳하게 밝혔던 논객이자 특유의 입담과 독특한 진행으로 밤 시간대를 대표한 라디오 DJ였어.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왕’ 또는 ‘교주’라고 불렀지. 2014년 10월. 마흔여섯, 너무 아까운 나이에 세상과 작별했어.  

그는 소위 꽃미남 가수였지. 20세 시절이던 1988년, 무한궤도의 리드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하여 대상을 차지하며 가요계에 등장했거든. 당시 수상곡은 자작곡인 ‘그대에게’였지. 

신해철. 피규어 제작=양한모
신해철. 피규어 제작=양한모

스타 중의 스타로 출발한 꽃미남

90년대초 무한궤도를 거쳐 넥스트를 결성한 신해철은 스타 중의 스타였어요. 대마초 사건으로 활동을 금지당했을 때도 그의 아우라는 조금도 줄지 않았지. 그가 만들고 부르는 노래들은 80년대와는 또 다른 무게감이 느껴지는 음악들이었거든. 그는 감히 록으로 교향악을 만들고 싶어하는 야심가였어. 시적이면서도 도회적인 그의 노랫말은 대중가요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고, 넥스트 멤버들과 빚어내는 멜로디와 리듬은 새로우면서도 파격적이었지.

그러나 가요계에서는 그가 지나치게 건방지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었어. 그 이유는 방송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거나, 선배들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할 줄 모른다거나 하는 행위가 ‘제도권에 대한 도전’으로 비쳐졌기 때문이지. 예나 지금이나 좀 튀면 건방지다는 평가부터 날아드는 건 어쩔 수 없나봐. 그가 언젠가 이런 얘기를 했어.

“이제 우리는 미8군으로부터 공급받은 서양음악에서 탈피해야 돼요. 아직도 미국의 팝음악과 가장 근접하게 흉내 내는 음악이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사대주의적 근성이 가요계 전반에 깔려있잖아요.”

그는 말로만 그렇게 떠드는 아티스트가 아니었어요. 광주항쟁을 다룬 독립영화 <황무지>의 영화음악을 만든다거나, 치열한 로커들의 삶을 다룬 <정글스토리> 등의 영화음악에 참여하기도 했지. 그가 만든 노래 ‘70년대에 바침’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피격방송, 전두환 전 대통령의 후보수락 연설 등을 담아 군사독재가 여전한 현재형 임을 고발했지. 99년에는 국악과 테크노를 접목시킨 실험적인 음악으로 한국적인 록음악의 변화를 꾀하기도 했어. 90년대 서태지와 댄스음악으로 상징되는 음악적 환경에서 그의 실험이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는 자신만의 목소리로 음악이 상업화 되는 시대에 저항 한거야. 언젠가 음악잡지에 실린 장문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이 땅에 신해철을 뛰어넘는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가수가 또 있을까 감탄한 적도 있었어. 신해철은 한 마디로 발상의 새로움, 끝없는 저항정신, 지칠 줄 모르는 정열, 꺾이지 않는 고집으로 똘똘 뭉친 ‘음악전사’였어. 

분당구 수내동 신해철거리.
분당구 수내동 신해철거리.

음악하는 후배들을 살뜰하게 챙기던 휴머니스트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있는 신해철은 휴머니스트야. 후배 뮤지션들에 대한 애정이 아주 각별했어. 어려운 후배들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자신의 주머니를 털었으며, 재능이 뛰어난 후배들을 이해서는 직접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거든. 그의 ‘독설’의 뒤에는 진정성을 가지고 음악하는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고 싶은 ‘깊은 애정’이 숨어 있었어요. 

그가 ‘소셜테이너’로 불리면서 정치적인 회합이나 무대에 자주 섰던 건 그가 정치적이어서가 아니야. 그가 옳다고 인정하는 사람에 대한 헌신을 통해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구현하고 싶어하는 ‘민물장어’였거든. 만약 그가 의도를 가진 소셜테이너였다면 노무현 정부 시절에 온 몸을 던져 지지했던 그의 공을 인정받아 문화부장관이라도 할 수 있었을 거야. 그는 단지 ‘바보 노무현’을 당당하게 지지하고 그를 사랑했던 한 시민이었지. 그의 ‘입’과 ‘노래’에 대해 대해 불편해하는 이들이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그를 탄압했지만 그는 끝내 기사화 되는 걸 원치 않았어. 혼자 고통을 짊어지고 산거지.      

‘저 강물이 모여드는 곳 성난 파도 아래 깊이/ 한 번만이라도 이를 수 있다면 나 언젠가/ 심장이 터질 때까지 흐느껴 울고 웃으며/ 긴 여행을 끝내리 미련 없이.’

그의 노래 ‘민물장어의 꿈’을 듣다보니 문득 그가 그리워지는군. 좋은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일찍 떠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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