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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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ㆍ보훈의 달 6월도 어느덧 하순에 접어들었다. 해마다 6월이면 이 나라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장렬히 산화(散花)한 넋을 기리는 추모 의식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먼저 가신 분들의 그 고귀한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풍요로움이 과연 가능했을까를 새삼 되새겨 보는 뜻 깊은 시기이다.

며칠 뒤면 민족의 비극인 6ㆍ25전쟁이 발발한 지 69주년을 맞는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칠순을 바라보는, 오랜 시간이 강물처럼 흘렀다. 피를 나눈 동족끼리 서로의 심장에 총부리를 겨누었던, 피비린내 나는 악몽의 순간들이 이제 더러는 잊히고 있다지만 6ㆍ25전쟁을 단순한 과거사로만 인식하고 차츰 조국의 소중함마저 잊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툭하면 불거졌던 일부 사회지도층의 눈먼 자식 사랑 때문에 국민들은 종종 울화가 치밀기도 했다. 자식의 병역 기피를 위해 국적을 포기시키는가 하면 돈과 권력을 앞세워 공정한 룰을 어기려 하는, 후안무치한 행태가 꼬리를 물었다. 정부에서는 애국정신을 되새기고자 해마다 다양한 보훈행사를 추진하고 있지만, 눈먼 자식 사랑이 빚어 낸 이들의 행태가 완전히 수그러들었다고 속단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농사 가운데 자식농사가 가장 어렵다’며 그 어려움을 토로했다. 필자도 두 자녀를 둔 아비로,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자식농사에 늘 고심하고 살았지만 어른들의 그 말씀은, ‘무척 어려우니 적당히 하라’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이라’는 깊은 뜻으로 헤아려진다. 

을사사화 때 제주목사로 쫓겨났다가 파면된 임형수(林亨秀)는 나주에서 사약을 받았다. 문장에도 뛰어나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던 그가 열 살이 채 안 된 아들에게 말했다. "글을 배우지 말거라." 아들이 울며 나가니, 다시 불러 말했다. "글을 안 배우면 무식하게 되어 남의 업신여김을 받을 테니, 글은 배우되 과거는 보지 말아라."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나오는 이 구절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성격이 강직했던 그가 자신의 아들만큼은 평탄하게 살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녹아 있다.

아시아 최대 재벌이라는 홍콩 창장(長江) 그룹의 리자청(李嘉誠) 회장은 엄격했던 자녀교육으로도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두 아들에게 ‘잘난 사람, 머릿속에 든 사람’보다 인격이 갖춰진, 예의 바르고 겸손한 ‘된 사람’을 자녀 교육의 최대 덕목으로 삼았다고 한다. 돈보다 인간의 도리부터 가르친 덕에 두 아들은 미국 유학시절 갑부 아들이란 사실을 전혀 드러낸 적이 없었고, 오히려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하고 골프연습장에서 공 줍는 일로 학비를 보탰다는 일화가 알려져 있다. 

이와는 반대로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 부모의 자식 사랑이 너무 지나치다는 소리를 우리는 자주 듣고 있다. 자녀를 너무 사랑하다 보니 품안에서 떠나보낼 수 없는 부모, 그리고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의 결과가 성인이 돼서도 부모에게 의존하는 ‘어른아이들’을 양산(量産)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그 ‘어른아이들’을 손에서 과감히 놓지 못하면 마침내 아이도 불행해지고, 부모도 불행해지는 결과를 빚게 된다.

전문가들은 지나친 자식 사랑으로 정작 자신의 노후를 챙기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소망을 버릴 것’을 권한다. 또 완벽은 환상이고 완벽을 추구하기로 결정한 것은 실패로 가는 지름길을 선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단언한다. 자녀들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연습’을 통해 부모들로부터 완벽한 독립을 하고,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신선한 변화의 바람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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