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민생․경제법안들 국회 파행으로 ‘동면’, “상당수 20대 국회 후 폐기 운명”

국회의사당. 사진=애플경제DB
국회의사당. 사진=애플경제DB

(사)소상공인연합회 최승재 회장은 최근 한 간담회에서 “복합쇼핑몰, 전문점 등 기존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대규모 점포가 확산하는데도 이를 규제할 법안이 국회에 묶여 있는 등 실효적 규제가 없어 소상공인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개탄했다. 
국회 파행이 장기화되면서 당장 다급한 국민들의 생활고나 민원 현안을 해소해줄 경제 ․ 민생법안들이 묶여 있어 국회를 향한 원성이 극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총선을 불과 10개월 밖에 남겨두지 않아 이중 대부분은 20대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운명이어서 더욱 우려를 낳고 있다. 

<애플경제>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6월20일 현재 20대 국회에 제출되거나 발의된 법안은 총 21,244건이다. 그중 철회나 대안에 의한 폐기, 부결, 가결 등에 의해 처리된 법안은 6,440건에 달했다. 이는 전체 법안 중 30.3%에 달한다. 이에 비해 19대 국회는 42.82%, 18대는 45.41%, 17대는 52.15%, 16대는 65.98%의 처리율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20대 국회가 ‘최악’인 셈이다.

현재 언론을 장식하는 의제는 6조7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이나 공수처 설치안, 선거법 개혁안 등이다. 그러나 현재 국회 정쟁으로 ‘볼모’ 잡힌 법안들 대부분은 그 보다 더 절박한 생활 밀착형 법안들이라는 점이 문제다. 이들 법안의 대부분은 경제난이나 경기 회복, 서민의 생활고 해결, 청년층의 실업문제 해결, 사회적 약자나 저소득층을 위한 지원, 그리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안 등이다. 그래서 “국회가 경제를 망친다”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각 민생법안을 둘러싼 각계 각층에서 국회를 향한 분노가 증폭되고 있다.

이는 몇몇 절실한 민생법안의 사례를 봐도 짐작할 만하다. 예를 들어 대한상의는 앞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조세제한특례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법인세법, 소득세법 등을 개정해야 내용의 보고서를 발행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6.6%의 2배 수준인 50.0%다. 10년 이상된 중소기업의 가업승계에서 가장 큰 애로사항은 '상속세 등 조세부담'(70%)이었다고 밝혔다. 또한 보고서에는 승계 이후 업종·자산·고용을 유지하도록 한 사후관리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회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어 이런 재계의 요구는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는 전망이다.

소상공인 업계에서도 답답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사)소상공인연합회 최 회장은 지난 11일 국회 정문 앞에서 '국회 제 역할 찾기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올해 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는 단 사흘 열렸고, 4월 이후 민생법안은 단 한 건도 처리되지 못했다"면서 "추가경정예산을 비롯해 시급한 민생·소상공인 현안이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내집 마련을 꿈꾸는 소시민들이나 신혼부부, 청년층 등에게도 국회와 정치인들의 직무 유기는 치명적이다. 당장 오는 10월부터 아파트 청약업무가 현행 금융결제원에서 한국감정원으로 이관되는 가운데 감정원의 금융거래 정보 취급을 위한 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10월 청약시스템 정상 가동에 비상이 걸렸다. 금융기관이 아닌 한국감정원에 청약통장과 관련한 금융정보를 넘길 경우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하기 때문에 국회 법안이 통과돼야 하지만 법안 처리에 난항이 예상된다.

공정거래법도 국회에서 오래도록 겨울잠을 자고 있다. 37년 만에 전부 개정안이 제출된 공정거래법은 지금 소위에 계류돼 회부까지 했지만, 전혀 심의가 진행되지 않다. 이는 특히 공정거래를 바탕으로 한 조선업계 합병문제 등 국가 경제구조 재편과 효율화, 그리고 이를 통한 경제 난국 돌파에 필수적인 장치라고 할 수 있다. 

빅데이터 산업을 키우기 위한 ‘빅데이터 3법’도 계류중이다. 그렇잖아도 빅데이터 산업의 효율화와 개인정보 보호 등을 둘러싼 논란이 달아오르고 있어서, 이들 관련법이 속이 제정되어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디지털 혁명을 앞두고 그 기반이 되는 빅데이터 메커니즘과 공유경제의 산업화가 시급한데도 불구하고, 입법기관인 국회가 어깃장을 놓고 있는 형국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외에도 벤처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전문개인투자자 등록제 도입 등의 벤처투자촉진법, 산업재편 시 세제 등을 지원하는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적용 대상을 공급과잉 업종에서 신산업으로 확대하는 법안 등도 계류돼 있다. 

그러나 여야가 합의해 국회가 개원이 된다고 해도, 이들 민생법안들 중 상당수는 그냥 폐기될 운명이다. 법에 정한 6월 임시국회도 열지 못한데 이어, 7월 인사청문회, 9월 정기국회 마저 여야 간의 정치적 쟁점이 맞물리는 가운데 예산 심의와 처리 등의 일정이 겹겹이 이어진다. 그 와중에 수많은 법안들을 일일이 심의, 처리하기엔 역부족인 셈이다. 내년 봄엔 이미 총선 시즌이어서 사실상 국회가 개점 휴업 상태에 접어들어 기대할 바가 못 된다. 결국 20대 국회가 끝난 셈이다. 그 때문에 시중에선 “‘경제실정’이니 ‘경제난’이니 남탓만 하고 있는 국회와 국회의원들이 사실상 목전의 경제난을 부추기는 주범들”이라는 과격한 비난도 쏟아지고 있다.

이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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