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연구원장, 정치학박사

나라 안팎에서 우리 앞날을 내다보는 시각들이 뒤틀려 있다. 경제와 안보가 쌍끌이로 어렵다는 지적이 그 촛점이다. 때론 비관이 지나쳐서 심사가 편치 않고, 이런저런 진단이 기우이길 바랄 경우도 있다. 이 고언들이 과연 우리에게 보약일 지, 아니면 독배가 될 지는 지켜볼 일이다.

어제 모처럼 서울에 온 일본 전문가는 한일관계에 일침을 놓았다. 그는 일본의 적극 역할론을 말하면서도, 한국이 양국 미래관계에 비전이나 갖고 있는 지 의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현실을 직시하는 정밀한 손익계산서도 없는 듯 하다고 개탄했다.

일본 전문가와 토론을 하다보니 일본이 근간에 작심한 듯 풀어놓는 코리아 패싱 현상들이 새삼스러워졌다. 두 나라는 우선 경제부터 멀어졌다. 지난 해 10월 대법원의 일제 강제 징용에 상응하는 판결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11월부터 올해 5월까지 한일간 교역규모는 461억 5천만 달러를 기록, 전년도 동기에 비해 9.2% 줄었다. 일본의 대한 투자액 역시 6.6% 줄어서 다른 지역들의 지속 상승세에 비해 하락이 두드러졌다.

한일 사이의 안보협력은 미국 정부가 공식 우려를 표명할 정도다. 일본의 대외관계는 매년 펴내는 외교청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2019년 판에는 한국이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나라"라는 표현을 빼면서, 한일관계가 "매우 엄중한 상황에 직면했다"고 기술했다.

일본은 제주 국제관함식(2018.10월)에 욱일기를 게양하겠다는 주장을 이유로 자국 군함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중국 칭다오 국제관함식(2019.4월)에는 욱일기를 달고 신형 호위함을 파견했다. 한국 해군 함정이 훈련중 일본 초계기에 레이저 빔을 발사했다는 양국간 논란에는 아베 총리까지 나섰다.

한일관계는 지금 사사건건 맞서있고 최악의 상태다. 이러다간 6월 28일 오사카에서 열릴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이 무산 또는 형식적 회동으로 그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양국관계가 정상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을 터이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미국, 중국간 패권 다툼은 경제와 안보, 기술과 문화로 까지 번지고 있다. 여기서 한일 양국의 운신폭이 제한적일 것은 자명하다. 두 나라는 서로 한발씩 물러서서 대국을 봐야한다. 이번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는 반드시 양 정상이 관계 개선을 향한 큰 줄기를 찾아내야 한다. 미국의 지정학자인 피터 자이한(p.Zeihan)도 비슷한 논지를 폈다. 그는 미국이 셰일 가스 혁명으로 에너지를 자급하게 되면서 세계경찰 역할을 더 이상 하지 않을거란 역설을 펼친 전략가로 저명하다. 그의 충고는 "미국이 국제문제로 부터 손을 빼는 상황에서 한국의 새 파트너 옵션은 경제적, 전략적으로 일본"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한국이 싫거나 좋거나 할 의제가 아니란 얘기다. 한국이 가야 할 길, 당연히 미래를 향해 스스로 선택해야만 한다. 일본 역시 북한만 쳐다보지 말고, 대국답게 먼저 손을 내밀 수는 없을까.

시진핑의 북한 방문 소식을 듣고서도 한일관계를 돌아보지 못한다면 참으로 허망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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