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하신도시 주민들 연일 반대 집회, “주거지 비껴가는 노선으로 변경” 요구

‘GTX 차량기지 노선, 열병합 터져 다 죽는다!’-. GTX-A 파주 연장 노선이 열병합 발전소 지하와 아파트 단지 인근이나 지하를 통과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기도 파주시 교하 신도시의 주민들 반발이 날로 거세지고 있다.
지난 22일 저녁에도 6월 들어 세 번째로 노선 변경을 요구하는 촛불집회가 교하중앙공원 광장에서 열렸다. 토요일인 이 날 지역 주민들 500여 명이 모여 한 목소리로 GTX-A 연장 노선의 열병합 지하 관통을 강력히 반대하고, 정부와 시공사를 규탄했다. 이 자리엔 자녀를 동반하거나 이웃들끼리 삼삼오오 집회에 참가한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행사장에 등장한 각종 구호는 주민들의 절실한 심정을 그대로 대변했다. 주민들은 ‘열병합 통과 결사 반대’, ‘안전을 무시한 열병합 지하 폭파 공사 결사 반대’, ‘가스관, 열배관, 그리고 GTX, 이번엔 관(棺)을 준비할 차례인가?’, ‘국토부는 서민이 안심하고 사는 주거환경 조성하라!’는 등의 문구가 씌어진 플래카드나 피켓, 깃발을 흔들며 정부와 시공사의 태도 변화를 요구했다.
행사장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무대 공연이 이어지고, 간간이 참가자들이 구호도 합창하면서 차츰 분위기가 고조되기도 했다. 가족과 이웃끼리의 평화로운 풍경이었지만, 표정만큼은 한결같이 진지하고 절실해보였다.

문제의 GTX-A 연장노선은 교하 신도시 북단의 교하청석스포츠센터와 열병합발전소, 그리고 중앙에 펼쳐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 지하를 통과한 후, 신도시 서북쪽 끝단의 차량기지로 연결된다. 애초 이 노선은 지난 2017년 예비타당성조사보고서의 원안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원안과는 달리 건설비 등의 이유로 시행사에 의해 노선이 바뀐 것이다. 바뀐 노선은 공청회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2018년 12월에 가서야 뒤늦게 주민들에게 전해졌다.
이에 주민들은 격렬한 반대에 나섰고, 대책위원회가 자발적으로 꾸려졌으며, 관계 기관과 요로에 항의와 호소를 이어갔다. 파주시와 국토부 민자철도팀 등에 노선 변경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하거나, 파주시청,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 앞, 국토부 등을 찾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확정된 안”이라거나, “다른 대책이 없다”는 등의 무성의한 답변만이 돌아왔다. 이날 집회도 관계 당국과 건설사의 이런 무책임과 무신경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와 항의의 일환으로 열린 것이다.

교하 신도시 주민들의 반발은 여느 ‘님비(Not In My Yard)’ 현상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평가다. 이해관계나 보상심리에서 나온 이기적인 동기가 아니라, 당장의 생활안전과 생명을 위협당할 수도 있다는 공포와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실제로 ‘GTX-A 안전한 노선 확보를 위한 지역대책협의회’(위원장 김해성)에 따르면 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계획된 GTX-A 차량기지 노선에는 2개의 고압가스관과 4개의 열배관이 불과 6m 깊이로 교차하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대로 GTX 차량이 하루 130회 운행될 경우 그 진동으로 인해 폭발할 위험이 있고, 지상의 열병합 발전소에 영향을 미치기라도 하면 상상키 힘든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주민들은 우려한다. 더욱이 설계 도면상 암반으로 표기된 곳도 사실은 연약 지반이어서, 추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도 걱정이다.
여러 아파트 단지 지하를 관통하면서 설치되는 환기구도 큰 문제다. 이들 환기구는 라돈 가스 등 인체에 치명적인 가스를 내뿜고 있어, 지역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환기구로부터 반경 200~400m 안에는 아파트 단지는 물론, 2개의 초등학교도 있어 더욱 주민들이 불안해 한다. 그럼에도 이같은 주민들의 우려와 항의에 대해 시행사 측에선 “뾰족한 방법이 없다”는 반응을 보여 주민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

교하 주민들은 시행사가 계획한 노선 대신에 교하신도시를 동쪽으로 비껴가는 노선을 현재 요구하고 있다. 이곳은 운정신도시와 교하신도시 사이의 개활지를 지나, 일산~파주~문산을 잇는 왕복 4~6차로의 국도 지하로 연결되는 모양새다. 주거지와는 멀리 떨어져 있어 인근 주민들의 일상이나 안전을 위협할 염려가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일부 언론이나 전문가들도 이같은 주민들의 변경안이 시행사나 국토부 계획 노선보다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지도상으로 보면 주민들이 요구하는 변경 노선은 아파트 단지의 외곽을 직선으로 뻗어나가는 형태다. 건설비용 측면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지는 모르나, 굳이 아파트 밀집단지나 열병합 발전소 땅밑을 곡선으로 파고 드는 경우보다 시공의 난이도나 안전성면에서 합리적일 수도 있다. 건설비용을 따지는 당국과 시행사에 대해서 주민들은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슬로건으로 맞서고 있다.

대책위 측은 앞으로 주민들의 요구안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반대 운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이곳 관계자는 “왜 우리는 고압가스관과 열배관, 환기구의 위험성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런 질문의 행간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오로지 이윤 논리에만 급급해 하는 국가와 기업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 배신감이 짙게 배어있다.
“조금만 옮기면 모든 것이 안전한데 국토부는 교하 주민의 안전을 무시하고, 국민보다 오직  시행사의 이익만을 염려하고 있다”는 이 관계자는 “교하 주민의 안전을 위해 차량기지 노선을 속히 변경해야 마땅하다”고 절박한 표정으로 호소했다.

글 ․ 사진 : 파주 교하=박경만(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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