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길이 그러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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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성문(먼빛)
  • 승인 2019.06.28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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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7017

예전 충무로로 가기 위해 만리동 고개 너머 서울역고가 차도를 지날 때마다 참 어지간히 막히는 길이었다. 정말 마음이 급할 때면 서부역으로 돌아가는 아랫길을 택해보지만 그 길이라고 편할 일이 있나. 세상 모든 길이 그러한 것을.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한 것을. ‘서울로7017’은 노후한 옛 서울역고가 차도를 개·보수하여 만들어졌다. ‘7017’의 ‘70’은 서울역 고가가 만들어진 1970년을, ‘17’은 공원화사업이 완료된 2017년과 17개의 사람길, 고가차도의 높이인 17m의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게다가 ‘서울로’는 ‘서울을 대표하는 사람길’과 ‘서울로 향하는 길’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니. 잘 모르겠다. 길 하나에 그토록 많은 의미를 덧대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또 그 길을 가는 마음을.

2014년, 안전진단 D등급을 받은 고가차도 하나를 헐지 않고 공원화한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참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이익에 반하는지 않는지, 또는 자기 생각에 반하는지 않는지를 놓고 길보다 더 무수한 입길을 냈다. 인근 상권이 죽느니 마느니, 교통난이 배가하느니 마느니 백가쟁명이 노방을 채웠다. 2017년 길이 ‘세워진’ 후에도 1년 만에 내방객이 1000만 명을 돌파하고 주변 상권이 오히려 살아났다는 둥, 변변한 그늘막 하나 없는 시멘트 길이 가면 얼마나 가겠으며 그만한 관리비용이라면 진짜 유용한 공원 몇 개는 더 만들 수 있겠다는 둥 논란은 끊일 줄 모른다. 그 많은 말들의 옳고 그름은 잘 모르겠으나 이 길이 이룬 공로 하나만은 부정하지 않으련다. ‘조망’ 그 하나만은. 길에서 길을 바라보다니. 그것도 추억과 사연 가득한 길을.

생각보다 빈약한 서울로 콘텐츠 중 그래도 피아노만큼은 사줄 만하다. 처음 서울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 옆에 놓인 1대를 시작으로 이제는 9대의 피아노가 곳곳에 놓여 지나는 연인들의 발길을 주저앉힌다. 비록 상태는 별로라지만 휴가장병이 여친 앞에서 서툰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한밤중에 외국인까지 가세해서 재즈풍의 노상카페를 열기도 한다.
생각보다 빈약한 서울로 콘텐츠 중 그래도 피아노만큼은 사줄 만하다. 처음 서울역 2번 출구 엘리베이터 옆에 놓인 1대를 시작으로 이제는 9대의 피아노가 곳곳에 놓여 지나는 연인들의 발길을 주저앉힌다. 비록 상태는 별로라지만 휴가장병이 여친 앞에서 서툰 솜씨를 뽐내기도 하고, 한밤중에 외국인까지 가세해서 재즈풍의 노상카페를 열기도 한다.

변방에서 서울로 입성한 이라면, 밤새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새벽녘 서울역 광장에 부려졌을 때의 그 황망함을 안다. 빌딩 사이의 파리한 가로등 불빛은 지금이 여명인지 모색인지 가뭇하게 하고, 어디선가 굴러온 깡통 하나 잠시 발 앞에 멈추었다가 또 다시 또르르 제 갈 길을 간다. 옷깃을 여미고 길을 걸으면 이번에는 늙은 포주의 팔짱이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이 땅 모든 철도의 시점이자 종점인 양했던 옛 서울역은 이제 제몫을 새로운 민자역사에 내어주고 ‘문화역 서울284(‘284’는 서울역의 사적번호다)’로 눌러앉았다. 하지만 서울역 광장은 그와는 상관없이 떠도는 마음들을 받아내느라 영일이 없다. 노숙자들의 성소가 된 지 이미 오래고, 각종 종교 전도와 노조 집회에 이제는 태극기부대까지, 옛 황망함을 되새길 겨를조차 앗아가고야 만다. 그 또한 ‘서울로’ 가는 길이런가.  

위/서울역은 1900년 경인선의 서울 도심구간 개통과 함께 남대문정거장으로 개업하여 1923년 ‘경성역’으로 이름이 바뀐 뒤 광복 후인 1947년에 현재의 ‘서울역’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서울역 광장 한켠에 우두커니 세워진 강우규 의사(義士)의 동상 밑에는 그가 순국하기 직전 남긴 시가 적혀있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위/서울역은 1900년 경인선의 서울 도심구간 개통과 함께 남대문정거장으로 개업하여 1923년 ‘경성역’으로 이름이 바뀐 뒤 광복 후인 1947년에 현재의 ‘서울역’으로 다시 이름이 바뀌었다. 서울역 광장 한켠에 우두커니 세워진 강우규 의사(義士)의 동상 밑에는 그가 순국하기 직전 남긴 시가 적혀있다. “단두대 위에 올라서니/ 오히려 봄바람이 감도는구나./ 몸은 있으나 나라가 없으니/ 어찌 감회가 없으리오.”
아래/서울역 일대는 전국 최대의 노숙자 기거구역이기도 하다. 한때의 단속기를 거쳐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마치 그들의 소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도 노숙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서울역 일대는 전국 최대의 노숙자 기거구역이기도 하다. 한때의 단속기를 거쳐 이제는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마치 그들의 소도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도 노숙의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김사인 ‘노숙’ 전문

서울로에서 바라본 서울역의 야경. 밤은 모든 것은 끌어안아준다. 백주의 악다구니와 끝없는 여정의 고단함까지도.
서울로에서 바라본 서울역의 야경. 밤은 모든 것은 끌어안아준다. 백주의 악다구니와 끝없는 여정의 고단함까지도.

서울스퀘어는 드라마 <미생>을 통해 오랜만에 본색을 되찾았다. 지금도 흔히들 ‘대우빌딩’이라고도 부르는 서울스퀘어는 잘 아시다시피 원래 대우그룹의 본산이었다. 1977년 6월에 그룹 사옥으로 건립된 이후 ‘대우신화’와 부침을 함께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대우그룹은 해체되어 버렸고, 대우빌딩은 대우건설과 함께 금호아시아나그룹에 인수되면서 간판을 바꿔달았다. 그것도 잠시, ‘승자의 저주’를 견디지 못한 금호아시아나그룹 역시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대우빌딩을 모건스탠리에 되팔았고, 모건스탠리는 인수와 함께 리모델링을 하면서 이름을 ‘서울스퀘어’로 바꿨다. 2014년 겨울, 옛 대우빌딩을 무대로 한 드라마 <미생>이 방영되자 오래된 직장인들은 마치 자기 일인 양 ‘상사맨들의 신화’를 소환했고, 그 신화는 한동안 그들의 회식자리에서 회자되었다. 때론 과장해서, 때론 비애스럽게. 

“오늘 하루도 견디느라 수고했어. 내일도 버티고, 모레도 견디고, 계속 계속 살아남으라고.” -드라마 <미생> 중에서

서울로에서 내려다본, 아니 올려다본 서울스퀘어. ‘땅에 발을 딛고서도 구름 위 별을 볼 수 있는 거인’을 꿈꾼 ‘미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는 오래된 ‘영욕의 신화’ 하나를 소환해 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긴 23층 옥상은 통제 때문에 올라가볼 수 없지만, 안영이(강소라 분)의 에피소드가 주로 그려진 공원은 건물 2층 뒤편 주차장에서 계단을 통해 둘러볼 수 있다. 서울스퀘어 전면부 타일은 LED로 덮여 있어 밤에는 비디오 아티스트들의 영상을 보여준다. 건물 외벽을 가득 메운 줄리안 오피의 미디어 파사드마저 마치 <미생>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서울로에서 내려다본, 아니 올려다본 서울스퀘어. ‘땅에 발을 딛고서도 구름 위 별을 볼 수 있는 거인’을 꿈꾼 ‘미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는 오래된 ‘영욕의 신화’ 하나를 소환해 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하면서 깊은 인상을 남긴 23층 옥상은 통제 때문에 올라가볼 수 없지만, 안영이(강소라 분)의 에피소드가 주로 그려진 공원은 건물 2층 뒤편 주차장에서 계단을 통해 둘러볼 수 있다. 서울스퀘어 전면부 타일은 LED로 덮여 있어 밤에는 비디오 아티스트들의 영상을 보여준다. 건물 외벽을 가득 메운 줄리안 오피의 미디어 파사드마저 마치 <미생>의 한 장면처럼 보인다.

서울로의 서쪽 출구는 만리고개로 이어진다. 이름이 그래서일까. 한겨울 만두 한 봉지 사들고 만리동 꼭대기 친구 칩을 찾을 때 길은 아득하고 멀게만 느껴졌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만리시장은 그리 긴 세월을 보낸 것 같지는 않다. 비탈을 따라 조물조물한 가게들이 이어지고, 그 끄트머리쯤 성우이용원이 나온다. 간판의 입체글자들은 금방이라도 떨어져 내릴 듯하고, 아귀가 맞지 않은 문짝은 겨우 내외를 가리고 있다. 3대를 이어 92년째 문을 열고 있는 이 이발소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제 이순에 접어든 이발사는 열네 살에 처음 가위를 잡은 이래 이제껏 손을 놓지 않았다. 허름한 이발소의 수입이래야 뻔하지만 잊지 않고 찾아주는 단골들 때문에 문을 닫지 못한다. 작년 세상을 버린 노회찬 의원이 방미 직전 마지막 이발을 하러 찾은 곳도 이 집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노포(老鋪)의 낡은 창문 사이로 흘러나오는 불빛은 외려 아늑하고, 세월을 따라 돌고돌아온 삼색등마저 왠지 모를 위로를 안겨준다.

92년의 역사를 지닌 성우이용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다. 1927년 이발기술자이던 서재덕 씨가 처음 문을 연 이후 1935년부터 사위인 이성순 씨가 이어받았고, 현재는 3대째인 이남열 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그 역사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92년의 역사를 지닌 성우이용원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이발소다. 1927년 이발기술자이던 서재덕 씨가 처음 문을 연 이후 1935년부터 사위인 이성순 씨가 이어받았고, 현재는 3대째인 이남열 사장이 운영하고 있다. 그 역사를 인정받아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샛길로 : 염천교 수제화거리
서울역과 이웃한 염천교 수제화거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수제화거리다. 1925년 일제강점기에 시작하여 지금까지 오랜 시간 처음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수제화를 만들어오고 있다. 일본 구두 제작기술의 전파거점이라는 역사적 요인에다 유행과 패션을 선도하면서 오랫동안 우리나라 제화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대형 제화업체와 값싼 중국제품의 유입, 수제화의 인식 감소로 인해 힘든 시기를 거쳤지만 25여 곳의 구두매장과 함께 공장, 부자재상 등이 지금도 여전히 수제화거리를 지키고 있다.

염천교 수제화거리 털보제화의 박공수 사장은 60여 년 동안 갖바치의 삶을 살아왔다. 전북 김제가 고향으로, 모두들 배고팠던 시절 무턱대고 서울로 올라와 남의 가게에서 제화기술을 배웠다. 남성제화만을 전문으로 한다는 그는 지금도 하루에 50~60켤레의 구두를 짓기도 한다. 가게를 찾는 손님은 많지 않지만,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는 신발들로 생계를 잇는다.
염천교 수제화거리 털보제화의 박공수 사장은 60여 년 동안 갖바치의 삶을 살아왔다. 전북 김제가 고향으로, 모두들 배고팠던 시절 무턱대고 서울로 올라와 남의 가게에서 제화기술을 배웠다. 남성제화만을 전문으로 한다는 그는 지금도 하루에 50~60켤레의 구두를 짓기도 한다. 가게를 찾는 손님은 많지 않지만, 전국 각지로 팔려나가는 신발들로 생계를 잇는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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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지서(위영) 2019-07-03 08:22:01
길이란 사람이 소통하는 통로의 하나이다. 길이 있기에 문화와 문명이 발달했고 사람이 살아 왔다. 유작가는 우리처럼 시골출신으로 서울로 올라 온 사람에게 서울의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 주셔 고맙다.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부대끼며 서로를 돕고 살아 가는 존재이기에 길과 관련된 유 작가의 이야기가 재미를 더 한다.
20세기 최고의 외교관인 키신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스페인 속담에 이르기를, 여행자여!, 길이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네. 당신이 걷는 곳이 길이 되는 거야!"(."Traveler," says Spanish proverb," there is no roads. Roads are made by walking." -Henry Kissinger, Diplomacy, P836)

길이란 이런 것이다!

이혜숙 2019-06-30 21:37:13
40여년전 20층이 넘는 대우빌딩을보며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느꼈던 맘이 아직도 생생하다. 세상이
넓고 높을거라고 상상만 하다가 그리 큰 건물이 없었던 그 당시 대우빌딩의 위용은 책가방을 들고있는
여고생의 맘을 담박에 빼앗아 갔었지.
로드서울을 읽고 있노라면 까맣게 잊고 있던 추억이 잘도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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