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양적 완화, 내년 대선 앞둔 트럼프의 ‘경기 부추기기’ 등 반영

3일 뉴욕증시 시황을 보도한 <월스트리트 저널> 1면 톱기사.
3일(현지시간) 뉴욕증시 시황을 보도한 <월스트리트 저널> 1면 톱기사.

미국 경제가 ‘사상 최장’의 호경기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3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 30, S&P500, 나스닥 등 3대 주요 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것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이날 뉴욕증시는 표면적으론 미 중앙은행격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금리 인하 등 통화정책을 완화할 것이란 기대에 사상 초유의 폭등세를 보인 것이다.
이날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179포인트, 0.67% 상승한 2만6천966,  S&P 500지수는 22포인트, 0.77% 오른 2천995, 나스닥은 61포인트, 0.75% 상승한 8천170에 장을 마감했다. 다우지수는 종가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S&P 500지수도 종가와 장중가 모두 최고치를 갈아 치웠으며, 나스닥 역시 종가 기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같은 뉴욕증시의 폭등은 최근의 통화정책 뿐 아니라, 지난 19C 중반 이래 가장 긴 기간 동안 호경기가 이어지고 있고, 미․중 무역갈등도 휴전 후 재협상에 들어가는 등 미국 경제의 긍정적 변수도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기 불황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경제 현실과는 사뭇 달라보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월가 전문가들 간엔 “마냥 좋게만 볼 수 없는  신호”라며 우려스런 시각이 교차하고 있다.

특히 뉴욕증시의 기록적인 상승세는 호경기 경제정책과는 사뭇 달라보이는 미국의 통화정책이 직접적인 요인이 되고 있다. 애초 오사카 G20회의 미.중 정상회담에서 미.중 무역분쟁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아질 경우, 연준은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그러나 양 정상이 ‘휴전’에 합의하고 다시 재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하면서 일단 인하설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대신 연준은 기준금리를 동결(2.25~2.5%)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발표한 성명서에서 ‘인내심’이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적절한 대응’을 제시했다. ‘인내심’은 곧 금리인상을 자제한다는 의미를 내포한 반면, ‘적절한 대응’은 상황에 따라 금리를 되레 내릴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물론 이 대목에서 예측 불가한 트럼프 대통령의 ‘시장 개입’도 한 몫하고 있다. 고전 거시경제학 이론대로라면, 경기 과열이란 지적까지 나오는 현실에서 기준금리와 시장금리를 올리고, 디플레이션을 방어하는 선에서 물가 조정을 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한껏 달아오른 미국의 시장 경기를 더욱 부채질하는데 급급하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지난 연초 연준이 금리인상을 시사할 때부터 이를 저지하고 금리 동결 내지 인하를 압박하는 ‘트윗 정치’를 일삼고 있다. 심지어 “기준금리 인하에 협력하지 않으면 해임하겠다”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협박하거나 엄포를 놓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최근에는 EU의 움직임까지 견제하면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향해 “정책금리를 내려서 실물경제를 더 자극해야 한다”고 트윗으로 압박하기도 했다. 다분히 정치적인 그의 행보 때문만은 아니지만, 지난 6월엔 미 연준 역시 애초 금리인상을 주장하던 매파가 우위를 보였던 지형이 급변, 인하를 주장하는 비둘기파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급기야 파월 의장마저도 인하쪽에 무게를 싣는 상황이 되면서 통화정책 완화가 기정사실로 굳어지게 되었다. 최근  <애플경제>가 검색한 <월스트리트 저널> 기사에 의하면 연준 위원 17명 중 '금리동결' 찬성이 과반수에 달할 정도로 분위기가 바뀌었고, 금리인상을 찬성하는 ‘매파’는 한 명 뿐이었다. 물론 파월 의장도 금리인상에는 반대 입장이다.

이같은 변화에 대해 월가와 미국의 조야에선 “대체 그렇게 (연준의) 분위기가 돌변한 까닭이 뭐냐”고 의아해하고 있다. 여러 분석이 가해지긴 하지만, 미국의 주요 언론들의 공통된 견해는 ‘트럼프와 2020년’에 방점을 찍고 있다. 즉,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는 지금과 같은 미국의 호경기가 어떻게든 이어지도록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파월 연준 의장에 대한 협박에 가까운 압박이나, 금리 인하, 감세정책, 통화정책 완화에 의한 기업과 가계 부채의 끝없는 확장 등이 모든 그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들로 해석되고 있다. 

월가나 경제학계 등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사상 최장 기간의 호경기가 분명 정상은 아니다”라는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 한다. 마치 가장 어두운 새벽과 밝은 아침이 교차하듯, 호경기가 길면 길수록 언젠가는 최악, 최장기의 불경기가 닥칠 수도 있다는 걱정이다.
더욱이 현재 미국 경제의 호경기는 정상적인 경제요인들이 최적 상태로 작동한 결과가 결코 아니란 점을 우려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나 생산성 향상의 결과라기보단, 연준의 인위적인 양적 완화, 즉 시중에 엄청난 돈(유동성)을 풀어 경기를 부추긴 것으로 본다. 또 트럼프 행정부가 시종일관 대규모 감세정책을 펼친 점도 무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반면에 무리한 경기확장은 또 무리한 구조조정을 낳고, 그 결과 노동자와 가계 소득은 제자리를 맴도는 등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은 하나의 허구적 신화로 추락한지 오래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내 애널리스트들도 3일(현지시간)의 뉴욕증시 폭등은 미국 경제의 이런 명과 암을 행간에 깔고 있는 ‘시그널’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찌됐든 이들도 이달 중에 미국 금리가 추가로 인하될 것으로 내다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7월과 9월에 각각 0.25% 포인트씩 연내 0.5% 포인트 내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는가 하면, 여차하면 한꺼번에 0.5% 포인트 내릴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한국은행의 ‘매파’인사 중에서도 최근 “저물가와 불경기 국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며 미 연준의 페이스와 발을 맞추는 듯한 발언이 나와 인하 가능성을 점치게 한다. 3일(현지시간)의 뉴욕증시는 그런 점에서 한국경제에 또 하나의 나침반이 될만한 ‘사건’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상호 ․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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