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업 60%, 6개월 못 버텨’ 중기중앙회 조사, 언론 보도에 “논리적 모순 여지”
일 규제에 ‘긍정, 영향없음’ 기업들에게도 “‘감내할 수 있는 기간’” 답변 요구?

일부 언론과 정치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로 예상되는 불이익을 지나치게 강조한다는 지적과 함께, 이로 인해 국내 여론 분열을 노리는 아베 정권의 전략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높다. 피해가 예상되긴 하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의 대응과 대비책 등 ‘경우의 수’를 분석하며 그야말로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0일 조간신문을 비롯한 공중파와 종편 등에 대서 특필된 중소기업 중앙회 설문조사 내용도 그 반면 교사의 사례로 꼽힌다.

많은 신문과 방송은 조사 결과를 나름대로 인용해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 60%, 일본 수출규제 6개월 이상 못 버틴다’고 헤드 타이틀을 뽑았다. 보도 내용을 보면 ‘응답기업’의 28.9%가 ‘일본의 수출 규제를 감내할 수 있는 기간은 ‘3개월 이내’라고 답했고, 30.1%는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으로 답한 것으로 소개했다. 또 ‘응답자’의 59%가 ‘반년을 채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고, 6개월~1년까지 감내할 수 있다는 기업은 20.5%, 1년 이상 버틸 수 있다는 기업은 20.5%로 조사됐다는 내용을 내보냈다.

그러나 <애플경제>가 다시 면밀하게 해당 설문조사를 분석한 결과, 실제 중기중앙회의 설문 결과가 언론 보도로 이어지는 과정엔 모순되는 점이 상당히 발견되었다. 대표적으로 설문 조사의 기반이 된 표본수와 매 문항별 응답기업, 또 ‘수출 규제 감내 기간’ 문항과 수출 규제에 대한 ‘긍 ․ 부정’ 응답률 등이 각기 엇갈리는 모습이었다.
특히 대부분 언론이 표현하듯, 반도체 관련 중소기업 60%가 ‘일본 수출규제 6개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내용부터가 재고의 여지가 있어 보인다. 

문제가 되는 것은 2번 ‘국내 관련 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최대 기간’에 관한 문항이다. 질문에 답한 기업은 전체 표본수에 해당하는 269명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 중 일본의 수출규제가 미칠 영향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59.9%(매우 부정적 19.7%, 다소 부정적 40.2%)이고, ‘긍정적’이란 응답은 5.2%에 그쳤고, ‘영향없음’이란 대답이 34.9%에 달했다. 긍정적이거나 ‘영향없음’을 합하면 40.1%가 ‘일본 수출규제와 무관하거나, 긍정적’이란 답을 내놓은 것이다.

자료=중소기업중앙회
<일본 정부의 조치가 관련 산업에 미치는 영향> 자료=중소기업중앙회

그렇다면 전체 269개 기업 중 사실상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기업(59.9%)들이 ‘6개월 이상 못 버틴다’고 대답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보도 내용이나 중기중앙회측의 설문 결과 요약서를 보면, 그 문맥상 그 외의 나머지 기업들도 “6개월~1년까지 감내할 수 있다는 기업은 20.5%, 1년 이상 버틸 수 있다는 기업은 20.5%로 조사됐다’는 식으로 해석하게 한다. 수치상으로 볼 때 ‘6개월~1년’, ‘1년 이상’이라고 밝혔다는 기업은 ‘부정적’이라는 기업(59.9%)를 뺀, ‘긍정적’이라거나, ‘영향없음’이라고 한 기업들(40.1%)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는 상식에 반하는 설정이다. 즉, 영향을 안 받거나, 오히려 긍정적이라고 한 기업들이 수출 규제로 인해 ‘감내’해야 할 특정 시한을 언급한다는 자체가 논리상 모순이라는 지적을 살 만하다.

 

자료=중소기업중앙회
<수출제한조치 지속시 국내 관련 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최대 기간> 자료=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선 나타나지 않지만, 상식대로라면 2번 문항에서 전체 표본수(269개 기업)가 아닌, 수출 규제에 ‘부정적’이라고 밝힌 161개 기업(전체의 59.9%)을 대상으로 2번 문항(수출규제 감내 기간)을 묻는게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161개 기업의 60%인 97개 기업이 ‘6개월 이상 못 버틴다’고 응답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6개월 이상 못 버틴다’는 응답이 전체 기업의 60%가 아닌, 36%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즉, ‘기업의 60%가6개월도 못 버틴다’가 아니라, ‘기업의 36%가 6개월도 못 버틴다’고 해야 정확할 것이란 추정이 가능하다. 그 숫자가 전체 표본수의 3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이다. 60%와 36%는 숫자의 의미를 뛰어넘어 지금의 경색된 한일 관계에서 한국측의 ‘위기감 지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의역될 수도 있다. 그런 만큼 수치 산정 과정에서부터 매우 신중하고 조심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설문조사에선 ‘응답기업’과 전체 ‘표본수’의 개념도 혼선을 빚게 한다. 실제로 2번 문항에선 ‘n=269’라고 표본수와 동일한 숫자를 응답기업으로 제시한데 비해, 1번 문항(부정적 영향의 피해 유형)에선 앞서 수출 규제에 ‘부정적’이라고 밝힌 기업들 161개(전체의 59.9%)만을 대상(n=161)으로 하고 있다. 이에 반해 ‘피해 감내 기간’을 물은 2번 문항에선 ‘긍․부정’과 ‘영향없음’을 망라한 모든 기업(269개)을 대상으로 질문함으로써 조사 방법상의 오류를 의심하게 한다.

해당 설문조사는 모두 7가지 문항으로 되어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2번(수출제한조치 지속시 국내 관련 산업이 감내할 수 있는 최대 기간), 3번(수출제한조치 지속시 국내 또는 제3국을 활용해 해결하는데 필요한 기간) 문항은 일본 수출규제로 인해 초래될 국내의 위기감을 염두에 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수출규제 자체가 한국 내의 절박한 위기의식을 목표로 한 것인 만큼 해당 설문조사 중에서 사실상 가장 핵심적인 문항일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분석하기에 따라선 이처럼 다른 결과를 추정할 수 있는 방식이어서, 현재의 한일 관계에 비춰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을 살 수 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애플경제>와의 통화에서 “(긍정, 영향없음 등의 기업을 포함해) 일본 수출규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기업 입장으로서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물어본 결과”라고 원론적 수준의 답변을 내놓았다. 

이같은 설문조사 결과가 중소기업중앙회 공표된 직후 많은 언론들은 ‘기업의 60%가 6개월도 못 버틴다’는 보도자료 제목을 그대로 인용했다. 기사 본문 역시 거의 대부분 보도자료의 내용을 옮겨다 쓰는 수준의 베끼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기사만 보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우리 반도체나 통신 관련 중소기업의 3분의 2가 일본 수출규제가 계속될 경우 ‘6개월’을 못 버티거나, 무더기 도산이라도 할 것인 양 우려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이같은 설문 결과를 내놓은 중소기업중앙회는 8월 초 중소기업사절단을 구성,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는 별개로 일본 자민당과 경제산업성 각료들과 만나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다.

이상호 ․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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