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실련 ‘플랫폼 노동’ 대담회…노․사 전문가 모여 근로환경, 적정수수료 등 토론

배달앱 기사(라이더) A씨는 오토바이에 핸드폰 7~8개를 부착하고, 한꺼번에 7~8군데를 최단 시간에 ‘멀티 배달’하는 만능 배달꾼이다. 그는 하루 15시간씩 주7일 근무를 하며 월 800만~900만원을 번다. 그러나 그에게 낮과 밤은 따로 없다. 가족 얼굴은 잠깐 스쳐지나듯 보고, 잠깐의 취침 시간 외엔 오로지 거리에서 내달리는 ‘배달의 기수’다. 
지난 10일 저녁 7시 경제정의실천연합회 강당에선 이같은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고민하는 ‘플랫폼 노동과 양질의 일자리’ 대담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선 배달앱, 카카오택시 등과 같은 ‘플랫폼 기업’에 종사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가혹한 근로조건 개선이 집중 논의되었고, 이를 위해 플랫폼 협동조합이나 플랫폼 참여자들 간의 공정분배가 중요하다는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었다. 또 거대자본에 의한 독점적 플랫폼 기업이 등장할수록 플랫폼 산업은 황폐화될 것이란 지적도 뒤따랐다.

이택광 국민대 명예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대담회엔 배달앱 ‘부르릉’을 운영하는 박준규 메쉬코리아 최고운영책임자, 이성종 플랫폼 노동연대 대표(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기획실장),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 최종희 전자신문 기자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 50여 명의 청중이 참석해 성황을 이룬 이날 행사에서 논의된 내용 중 골자를 추려 간략히 소개한다.

■ 박준규 매쉬코리아 최고운영책임자(배달앱)=기사들은 4대 보험을 가입시켜주는 치킨집도 원하지 않는다. 그 보단 자율적인 노동 환경을 원한다. 열심히 할 경우 평균 450만원까지 월수입을 올린다곤 하지만, 점심과 저녁시간 제외하면 사실상 일도 많지 않다. 그래서 때론 공급과잉 현상을 빚기도 한다. 
배달앱의 경우 적정 수수료는 참 결정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수수료를 어떻게 분배하는게 바람직한 것인가? 역시 바람직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플랫폼 기업으로선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공급자와 수요자를 원한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수수료가 조금이라도 더 비싸면 수요자들이 외면한다. 노동자들 역시 조금이라도 더 수입을 보장해주는 플랫폼으로 쉽게 옮겨가곤 한다. 이런 문제들을 적절히 해결하는 것도 큰 숙제다.
물론 독점적 지위의 플랫폼에 대해선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은 대다수 플랫폼들이 그런 수준에 못미치고 있다. 독점을 견제하되, 시장 원리가 올바르게 작동하도록 하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 플랫폼 노동연대 이성종 대표=플랫폼 기업은 노동 공급자와 소비자 등 참여자들에게 온라인 공간을 제공하고, 표면적으로는 개입을 안 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때 참여자들의 온갖 정보가 플랫폼에 제공되므로 결국은 빅데이터 종속이 이뤄진다. 그래서 정부는 이를 두고 ‘DNA(Data Network AI)’라고 부르기도 한다. 
흔히 플랫폼 노동을 운영하는 플랫폼 기업들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성공하는 요인은 세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이는 노사관계 혹은 노동자들의 근로조건과 결부되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플랫폼 기업들은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기득권 효과를 누리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에서 앞서 갈 수 있다. 둘째는 이용자, 즉 소비자와 참여자들을 확대해감으로써 독과점 위치를 굳힐 수 있다. 셋째는 이른바 ‘잠김 효과’ 혹은 네트워킹 효과다. 일단 시장을 선점하고 수익을 내기 시작하면, 후발 업체들에게 진입 장벽을 드리움으로써 진입을 할 수 없게 하는 것이다.
이런 단계를 거쳐 성장하는 플랫폼 기업들은 플랫폼 노동자와 일반 소비자 등 참여자들로부터 수집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거대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거둬가는 것이다. 
이 경우 노동자들은 일과 삶의 균형, 즉 워라벨은 생각하기 어렵다. 실제로 일주일 내내 하루도 안 쉬고 매일 15시간을 일하면서 최고 800만~900만원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다. 이는 분명 비정상이다.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렇게 되면 일과 삶의 균형이란 생각하기 어렵고, 플랫폼 노동자로서의 자율성도 기할 수 없으며,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으로서 기본권도 누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음식배달, 앱중개수수료, 앱대행수수료 등을 어떻게 고루 분배하느냐도 중요하다. 물론 주문자, 업소 사장, 앱개발자(플랫폼) 등이 공정하게 나눠가져야 한다.
택배 등의 업계에선 배달수수료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이에 노동자들(라이더)은 건수를 올리기 위해 더욱 신속한 배달을 강행하는 등 무리를 하다가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그래서 과연 적정 수수료는 어느 수준이 되어야 하는가도 중요하다. 근로시간을 준수하면서 생계를 보장할 수 있는 수준은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플랫폼 노동자들의 근무 여건은 열악하기 그지 없다. 특히 배달앱이나 카카오택시 등 많은 플랫폼 기업들이 노동자에 대한 고객들의 평가 시스템을 만들고, 이를 고용과 직결시키는 평가 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나마 플랫폼 노동의 장점이랄 수도 있는 ‘자율성’의 여지마저 없애는 셈이다.
지난 2011년 한때 ‘피자 30분 배달운동’을 펼친 적이 있다. 이는 그 동안 ‘총알 배달’로 사고가 빈발하면서 이를 막겠다는 취지로 생겨난 것이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없던 일이 되어 버렸다. 무엇보다 피자를 주문한 소비자들의 ‘빨리 빨리’ 문화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사회적으로 이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고, 바람직하기론 변질되거나 상하기 쉬운 물품을 제외하곤 ‘24시간 배달제’가 정착되어야 할 것이다.
이 대목에서 노동자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미국에서 정착된 플랫폼 협동조합을 제안한다. 이는 노동자의 근무조건도 개선하면서 산업재해보상보험 등 사회보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 정미나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정책팀장=정확히 표현해 플랫폼 노동은 ‘공유경제’라기보단, ‘디지털 이코노미’다. 그 동안 플랫폼 노동에 대한 사회적 논의나 문제점 등에 대한 체계적 감시도 드물었고, 투명성이 문제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최근 카카오 등 대기업들이 이에 뛰어들면서 새삼 그런 문제가 사회적으로 주목받으며 논란의 대상이 된 점은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본다. 
본래 플랫폼 산업은 산업 혁신, 즉 공급과 수요가 일원화되고, 시장 거래 비용의 최소화 등의 장점이 많다. 그러나 단점이라면 사실상 프리랜서 신분인 참여자(노동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허술하고, 주로 저숙련 노동을 중심으로 이뤄짐으로써 저임금 노동자를 양산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직업훈련 등의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 플랫폼 기업과 노동자들 간에 공정한 분배가 이뤄져야 한다. 또 ‘사람의 수고’, 즉 사람이 직접 운송하거나 이동하는 노동에 대한 비용은 제 값을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 적정한 수수료나 임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뤄져야 한다. 이는 공정분배의 전제 조건으로서, 궁극적으론 정치로 풀어야 할 문제다. 

앞에서 이성종 대표가 말한 협동조합 운동에 공감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배달앱의 경우 배달 노동자(라이더)가 산재보험에 들기 위해선 연간 900만원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여느 음식점의 경우 산재보험료가 연간 200만원에 불과한데 비해 너무나 과도한 금액이다. 이를 위해 금융위원회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으나, “과도한 요율 등 문제가 많아 곤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책당국이 국민의 편인지, 보험회사 편인지 헷갈리게 한 모습이다.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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