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정치권 일각, 보수언론 ‘양비론’, 아베가 노리는 ‘내부 분열’ 부추겨
전경련 세미나 등 논란 여지, “저자세 외교로 자국 정부 탓” 비판 일어

일본 수출 규제 국면에서 오히려 우리 정부를 탓하는 일부 여론이 결국은 아베정권이 노리는 ‘국론 분열’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정․재계 일각과 보수언론, 경제신문 등이 이런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현지에선 한국의 보수일간지 등을 일어로 번역한 내용이 널리 유도되기도 한다. 
지난 10일엔 전국경제인연합회와 산하 한국경제원이 ‘일본 경제 제재의 영향 및 해법’ 세미나를 열고, 이와 유사한 내용의 주장들을 대거 쏟아내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이날 세미나에선 “한·일 통상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치적 관리체계가 깨진 데 있다”거나, “구조상 한국이 일본을 제압할 수 있는 한 수가 존재하지 않는 상황. 맞대응 전략은 국민에게 보여주기식 대응”, “일본제품, 관광 불매는 정서상 이해되지만 일본에 효과 불확실. 일본에 ‘재보복’ 명분 제공.” 등의 내용들이 이어졌다.
사실상 ‘외교 해법’을 명목삼아 일본에 대한 사실상의 양보에 가까운 타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유형의 타협을 경계하는 전문가들에 의하면, ‘대법원 판결에 반해 강제징용배상 피해자들에게 우리 정부가 돈을 주는 방식’ 등이 있다. 그러나 이는 사법부 판결을 행정부가 부인하는 결과여서 민주국가의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조치라는 비판이다.

이날 전경련 세미나에선 보수 성향의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 이론에 따라 우리 기업들의 수출 규제 대응 전략도 ‘보복’으로 간주하는 듯한 언급도 나왔다. 
국민적 정서를 바탕으로 한 자발적 불매 운동과 함께 일본에 대한 우리 기업의 대응을 ‘일본의 재보복’ 빌미로 표현했다. 현 상황에서 피치못할 기업과 국민의 대응도 ‘보복’이란 의미를 그 행간에 깔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한국경제연구원 김윤경 실장은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의 모의실험을 통해 분석한 자료를 들어 설명했다. “(보복이란 용어는) 우리나라의 반도체 재고와 생산에 필요한 일본 수출 규제 품목 여분으로 수개월 판매와 생산이 가능한데, 이를 일본에 판매하지 않거나 판매 조절한다는 의미”라는 설명이다.
이에 기자가 “일본이 수출 규제를 풀지 않을 경우 생산에 필요한 소재 수급이 안정화되기 전까지 생산자가 생산·판매의 완급을 조절하는 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냐”고 질문한데 대해 “그걸 두고 ‘보복’이라고 한 표현은 잘못된 것 같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날 토론자들은 또 “한일 통상갈등의 근본적 원인은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치적 관리체계가 깨진 데 있다”고 했다. ‘근본적 원인’이라고 강조는 했지만, 일본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국내 판결을 무시한 대응이란 뜻의 ‘근본’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처럼 ‘양비론’을 무기로 사실상 우리 정부에 더 책임을 돌리는 움직임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 물론 우리 정부의 사전 대응 등에서 미흡했던 부분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무역보복을 가해온 일본과 아베 정권의 책임을 강하게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배근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경연을 비롯한 재계 일각과 보수 야당이 내놓는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라는 비판에 대해 역시 날선 비판을 가했다.
그는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에 대한 언급에 앞서, 양비론적으로 잘잘못을 따지는 분들은 비난은 하지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은 하지 않고 정부의 무능만을 탓하고 있다”면서 “지난 정부처럼 저자세 외교를 하거나,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돈을 주는 것으로 해결해야 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 간 입장차가 있을 때 이익을 위해 상대국에서 내놓는 방법이 불합리 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여-야가 한 목소리를 내야 함에도 양비론만 내세우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일본 수출 규제에 대한 정부의 해결책으로 미국 등과의 ‘국제공조’를 꼽았다. “현재 한·일 분쟁에서 가장 유리한 쪽은 중국이며, 이는 미국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며 “한·일간 분쟁으로 이익을 보는 쪽이 중국이라면 미국이 뒷짐만 지고 있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다. 게다가 “현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한-일간 타격은 클 수밖에 없고, 이는 둔화된 세계경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어 관련 국가들도 원치 않을 것”이라는 최 교수의 설명이다.
최 교수는 “물론 부품소재 국산화에 지원하는 한편, 실제 한일 간에 상당한 기술력 차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부품소재 개발과 기초연구 등을 지원해야 한다”면서 “일본 입장에서는 우리의 소재 국산화를 원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단합하고, 국제공조를 잘 만들어내면 이번 문제는 조기에 타결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윤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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