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인들의 ‘여름나기’
선인들의 ‘여름나기’
  • 김부조
  • 승인 2019.07.12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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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구름은 하늘가 멀리 걸려 있고 나뭇가지에 바람 한 점 없는 날/ 누가 이 찜통더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더위를 식힐 음식도, 피서 도구도 없으니/ 조용히 앉아서 책 읽는 게 제일이구나.’(조선 숙종 때 학자 윤증의 시 ‘더위’)

오늘은 삼복(三伏)더위의 시작인 초복(初伏)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 만나는 삼복은 음력 6월부터 7월 사이의 절기로 초복·중복·말복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夏至)로부터 셈을 해서 세번째 경일(庚日)이 초복이고, 네번째 경일이 중복이며, 입추가 지난 뒤 첫번째 경일이 말복이 된다. 

복날의 복(伏)자는 사람이 마치 개처럼 엎드려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가을철 금(金)의 기운이 땅으로 내려오다가 아직 가시지 않은 강한 더위 앞에 엎드려 복종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찌는 듯한 무더위가 가을의 서늘함을 굴복시켰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래서 옛날에는 삼복더위가 되면 갖가지 방법으로 더위를 이기려 노력했다. 

한여름의 무더위는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겠지만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은 계층별로 차이가 있었다. 양반의 여름나기는 ‘더위 피하기’였다. 양반들은 사랑방 옆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더위를 식혔다. 차가운 감촉의 대나무나 왕골로 만든 죽부인을 옆에 끼고, 삼베 옷 속에 등거리와 등(藤)토시를 걸쳐 시원한 바람이 솔솔 통하도록 했다. 

오로지 체면만을 중요시했던 양반들은 아무리 더워도 상민(常民)들처럼 옷을 훌훌 벗어던지거나 물속에 풍덩 뛰어들지 못했다. 대신 수반(水盤)에 물과 돌을 채워 작은 호수를 만든 뒤 석창포를 심어 마음을 시원하게 달랬다. 또는 발을 차가운 물에 담근 채 시를 읊으며 경치를 즐기는 탁족회(濯足會)를 갖기도 했다.

반면에 상민들의 여름나기는 ‘더위 쫓기’였다. 계곡으로 들어가 물고기를 잡고 천렵(川獵)을 즐겼다. 바다를 찾아 모래찜질을 즐기기도 하고 깊은 계곡에서 폭포수를 맞기도 했다. 체면보다는 더위의 열기를 식히고 시원한 한판 놀이를 즐겨 가며 더위를 잊었던 것이다. 

삼복더위에는 보양식도 한 몫을 했다. 옛 문헌을 보면 ‘복달임’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삼복더위에 몸을 보양해주는 음식을 먹고 시원한 물가를 찾아 더위를 쫓던 일을 말한다. 복달임은 더위를 이겨 내자는 옛사람들의 적극적 지혜였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복달임 고깃국은 오늘날 보신탕으로 불려지는 개장국이 주를 이뤘다. 다만 지역에 따라서는 삼계탕이나 민어탕, 추어탕과 함께 닭고기, 돼지고기, 국수 등 다양한 음식이 등장하고 있다. 국수를 넣은 닭고기국과 미역을 넣어 끓인 국수가 있는가 하면, 복날에 쑤어 먹는 팥죽인 ‘복죽’, 호박을 섞어 부친 밀전병 등도 복달임 음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의 궁중에서는 더위를 이겨 내라는 뜻에서 벼슬아치들에게 빙표(氷票)를 준 뒤 석빙고에 가 얼음을 타 가게 했다. 또 활인서(活人署)의 병자(病者), 의금부(義禁府) 감옥의 죄수들에게도 얼음을 나누어 주었다. 연산군은 대나무 뱀틀 위에 앉아 대나무의 한기와 뱀의 냉기를 느끼는 피서법을 즐겼다고 한다. 경국지색 양귀비는 쇠구슬(玉魚)을 입에 넣어 빨면서 그 냉기로 더위를 식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번 삼복더위엔 필자도 옛사람들의 지혜를 빌어 더위를 이겨 볼까 한다. 거실에 대자리를 깔고 누워 책을 읽으며 은은한 국악 연주라도 들으면 머리가 맑아지고 더위는 한풀 꺾일 것만 같다. 주말엔 집 근처 도봉산 계곡을 찾아 시원한 그늘 아래 돗자리 펴고 솔솔 불어오는 산바람도 만끽해 보리라. 중복과 말복엔 민어매운탕으로 떨어진 원기도 되찾으며 더위를 이겨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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