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남용이 문제인 어구와 표현(3)

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①“좋은 아침입니다.”
딱 봐도 ‘굿모닝’의 직역(直譯) 아니던가? 활자는 우리글이지만 한국 인사가 아니다. 심지어 프로그램 제목 중 <생방송 좋은 아침입니다.>이란 것도 있었다. 시그널이 울리면 진행자와 패널들이 한꺼번에 “좋은 아침입니다.” 하며 입을 모으기도 했다. 우리 인사는 “밤새 별 일 없으셨습니까?”“아침은 드셨습니까?” “두루 평안하시죠?”등으로 상대의 눈높이를 의식하고 알맹이가 있다. 방송으로의 적용이 어느덧 어색해졌어도‘좋은 아침’은 재고의 여지가 많다. 대안은, 아침방송이나 공적인 자리 같으면 “상쾌한 아침입니다.” “오늘은 아침 공기가 쌀쌀하네요.”“좀 가물었다 싶었는데 단비가 내리는 아침입니다.” ‘오늘 아침은 비에 바람에 날씨가 궂은 편인데요, 그래서 활기찬 소식으로 문을 열겠습니다.“ 정도가 무난할 것이다. 

②“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일반적으로 대화의 대상은 대개 착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그러나 간혹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인터뷰도 기다리고 있다. 수입쇠고기를 한우로 속여 판 상인, 짝퉁 가방을 명품으로 둔갑시킨 업자, 바가지 숙박 요금을 받다 걸린 주인 등등. 이런 사람들과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멘트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만약 피해를 본 당사자가 TV나 라디오로 이런 장면을 보기라도 한다면 거세게 항의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리포터가 나무라거나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다 듣고는 “시민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로 끝 질문 던지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잘 들었습니다.” 정도로 맺는 게 설득적이다. 

③“이곳(저곳)은(요)”
현장성을 방해하는 것은 군더더기와 설명조의 멘트다. 불필요한 멘트와 긴 멘트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생동감을 갉아 먹는 부작용을 수반한다.
“제가 지금 나와 있는 이곳은요 쇳물이 나오는 곳입니다.”전형적인 서툰 멘트다. TV라면 동작과 시선을 동반하면서 “쇳물이 나오는 뜨거운 현장입니다.”해야 바람직하고, 라디오 같으면 “소리 들리시나요? 쇳물이 나오는 현장에 나와 있습니다.” 해야 현장감을 살린 멘트다. “저는요”“이곳은요”는 문법에도 안 맞는다. 보조사 ‘-요’는 주격조사 ‘이/가’나 역시 보조사 ‘은/는’에 연이어 올 수 없다. 구어의 자연스러움을 호소하나, ‘-요’를 붙이면 오히려 치기(稚氣)만 보탤 뿐이며 없는 것이 훨씬 산뜻하다. ‘이것, 저것, 요것’ 등의 지시대명사는 텍스트에 힘을 빼 놓는다. 아울러 ‘이들, 그들’등은 멀쩡한 사람들을 마치 먼 관계로 치환시키고 졸지에 타자화(他者化)시키는 악영향을 끼친다.   

④세상 밖으로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나와 자유를 얻은 시민, 혹은 오랜 병치레나 장애 문제 혹은 자발적 은둔으로 바깥세상 경험을 못하던 이가 비로소 태양과 구름과 비를 마주할 때, 흔히 ‘세상 밖으로 나오다/나왔다 라고’ 한다. 과거 어느 시점에 기자나 방송 작가가 쓴 비유적 표현이 퍼진 게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세상’을 일그러진 대상으로 본 출발이 잘못되었다. ‘세상’ 자체를 정상적으로 봐야 긍정적이고 일반적 통념에도 맞는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삶을 누리고 법과 질서가 제대로 돌아가는 사회 시스템, 그 세상! 그 세상으로 이제 죄인도 장애인도 병자도 은둔자도 ‘안으로’ 들어가 살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세상 밖으로 나간다고? 그것은 ‘적응’이 아니고 ‘일탈’이다. 범법을 계획하거나 범위를 넓히면 지구 내지 태양계를 떠나겠다는 얘기다. 그 뜻이 아니라면 ‘세상 속으로’로 바루어야 마땅하다. 

강성곤 KBS 아나운서는 1985년 KBS입사,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위원, 미디어언어연구소 전문위원,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건국대, 숙명여대, 중앙대, 한양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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