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섬, 나의 섬
너의 섬, 나의 섬
  • 유성문(먼빛)
  • 승인 2019.07.12 09:2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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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속의 섬, 여의도

조선시대에는 ‘양화도’, ‘나의주’ 등으로 불렸다. 현재 국회의사당 자리인 양말산은 홍수에 잠길 때도 머리를 살짝 내밀고 있어서 ‘나의 섬’, ‘너의 섬’하고 말장난처럼 부르던 것이 한자화해 ‘여의도(汝矣島)’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기가 막히다. 말장난으로 지어진 이름이라니. 하긴 지금도 말장난으로 날을 지새우기 일쑤인 곳이니. 여의도가 원래 비행장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16년, 일제는 방목이나 하던 모래땅에 간이비행장을 건설함으로써 섬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1920년, 이탈리아의 공군 중위 페라린과 마지에로가 조종하는 공군기가 여의도에 착륙하여 서울시민의 열렬한 환영을 받는다. 1922년에는 최초의 조선인 비행사 안창남의 모국방문 비행으로 여의도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기도 한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상하이 임시정부의 이범석·장준하·김준엽 등 광복군을 태운 수송기가 내린 곳도, 후에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미군 특별기로 내린 곳도 여의도비행장이었다.  

1936년 김포비행장 건설 후에도 여의도비행장은 그대로 존속되었고, 광복 후에는 잠시 미군이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 여의도에 천지개벽을 몰고 온 것이 바로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에 의한 윤중제(輪中堤, 지금의 여의방죽) 공사였다. 김현옥 시장은 비행장 폐쇄와 공군기지 이전을 앞두고 1968년부터 본격적인 여의도 개발에 착수한다. 비행장이 있던 자리를 신시가지로 개발하려는 원대한 계획에 따라 먼저 장마철마다 물에 잠기는 등 상습침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윤중제 공사에 들어갔다. 그해 2월 10일, 여의도를 압박하는 물의 흐름을 줄이는 동시에 공사에 필요한 자재를 조달하기 위한 밤섬 폭파작업을 시작으로, 당시만 해도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라던 윤중제 축조는 불과 5개월 만에 끝이 났다. 그러나 윤중제 건설만으로도 서울시 재정은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고, 김현옥 시장은 그가 벌인 다른 동시다발적 공사 중 1970년 와우아파트 붕괴사고가 일어나면서 경질되고야 만다. 

밤섬 너머로 여의도가 바라보인다. 여의도 개발의 최대 제물인 밤섬은 폭파 전까지만 해도 제법 사람의 삶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경영하던 목장이 있었고, 섬 주민들은 누에치기, 어업, 조선업을 생계로 삼았다. 1968년 섬이 폭파되자 주민 400여 명은 섬을 지켜주던 수호신의 사당을 앞세우고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하고, 남은 섬은 ‘새들의 마을’이 되었다.
밤섬 너머로 여의도가 바라보인다. 여의도 개발의 최대 제물인 밤섬은 폭파 전까지만 해도 제법 사람의 삶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경영하던 목장이 있었고, 섬 주민들은 누에치기, 어업, 조선업을 생계로 삼았다. 1968년 섬이 폭파되자 주민 400여 명은 섬을 지켜주던 수호신의 사당을 앞세우고 마포구 창전동으로 이주하고, 남은 섬은 ‘새들의 마을’이 되었다.

처음 여의도 개발계획을 주도한 사람은 건축가 김수근이었다. 그는 매우 입체적인 도시계획을 세웠고, 그에 따라 거대한 활주로가 있던 부지도 어김없이 신시가지로 변모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개발계획을 밀어붙일 김현옥 시장이 잘리고 후임 양택식 시장이 들어서면서, 그는 입체도시 계획을 완전히 갈아엎고 평면계획으로 변경하여 일반에 분양하는 데 주력했다. 게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의중이 작용하면서 시가지 한복판에는 언제든 비상활주로로 변경할 수 있는 거대한 아스팔트 광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이름도 5.16광장. 이렇게 태어난 광장은 평양의 김일성광장에 대응할 만한 위용을 자랑하면서 체제선전장으로 활용되는 등 숱한 신화를 쌓아나갔다. ‘국군의 날’ 등에는 어김없이 웅장한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고, 필요에 맞춰 대규모 관제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5공 때는 ‘국풍81’,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교황 방한 미사 등이 줄줄이 이어졌고, 한때는 ‘3김(金)’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세 결집능력 경연장이기도 했다. 

어둠이 내리는 여의도. 여의도공원을 마주하고 LG트윈타워, 유수의 증권사들, 금융감독원, 전경련 등 즐비한 고층건물들이 늘어서 이곳이 여전히 한국경제의 중심임을 과시하고 있다. 1999년 5.16광장의 아스팔트를 다시 뒤엎고 들어선 여의도공원은 뉴욕 센트럴파크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의도지역에 근무하는 직장인 등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여의도공원 일대에는 벚나무가 꽤 많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벚꽃이 피는 철에 가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때맞춰 벚꽃축제가 열리면서 몰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을 겪기도 하지만. 이곳의 벚나무는 대부분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옮겨 심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벚나무는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면서 조경용으로 심어놓은 것이고.
어둠이 내리는 여의도. 여의도공원을 마주하고 LG트윈타워, 유수의 증권사들, 금융감독원, 전경련 등 즐비한 고층건물들이 늘어서 이곳이 여전히 한국경제의 중심임을 과시하고 있다. 1999년 5.16광장의 아스팔트를 다시 뒤엎고 들어선 여의도공원은 뉴욕 센트럴파크만큼은 아니더라도 여의도지역에 근무하는 직장인 등 시민들의 쉼터로 사랑을 받고 있다. 여의도공원 일대에는 벚나무가 꽤 많이 심어져 있기 때문에 벚꽃이 피는 철에 가면 그야말로 장관이다. 때맞춰 벚꽃축제가 열리면서 몰려드는 인파로 북새통을 겪기도 하지만. 이곳의 벚나무는 대부분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옮겨 심어진 것들이다. 그리고 그 벚나무는 일제가 창경궁을 동물원으로 만들면서 조경용으로 심어놓은 것이고.

어릴 적 아버지는 뒤에서 내 양 귓볼을 잡고 쑥 끌어올리면서 ‘서울 구경시켜줄까’ 하셨다. 그러고도 한참 후인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 ‘진짜 서울 구경’을 했지만, 내가 첫 서울 구경에서 가장 먼저 놀란 것은 마천루처럼 높고도 높은 빌딩들이었다.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서울에서 ‘아무 빌딩이나 올려다보고 층수를 세면 센 층수만큼 돈 받아간다’는 말을 생각하며 피식 웃기도 했다. 1985년에 세워진 여의도 63빌딩(지금은 ‘63스퀘어’)은 오랫동안 서울에서, 대한민국에서, 아니 한때는 북미를 제외한 전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었다. 지금이야 제 높이의 두 배가 넘는 롯데월드타워는 말할 것도 없고, 국내에서도 서너 번째, 아니 여의도에서마저 뒤로 밀릴 판이지만 많은 이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그 상징성만은 여전하다. 오죽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건물?’하면 ‘63…’하다가 멈칫할 정도로. 그런데, 그때 아버지께서 63빌딩까지 다 구경시켜주시려면 팔이 얼마나 아파야 했을까.

마포대교에서 바라본 63스퀘어와 여의도한강공원.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형상이라는 63스퀘어는 해질 무렵이면 유독 금빛으로 더 반짝거린다. 건너 노량진 고시촌 수험생들에게는 때론 희망으로 바라보이기도 하고, 때론 절망감으로 다가오기도 하면서. 63스퀘어는 수족관(‘63시월드’), I MAX영화관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고, 전망대(‘63골든타워’)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야경 또한 일품이다.
마포대교에서 바라본 63스퀘어와 여의도한강공원. ‘두 손을 모아 기도하는’ 형상이라는 63스퀘어는 해질 무렵이면 유독 금빛으로 더 반짝거린다. 건너 노량진 고시촌 수험생들에게는 때론 희망으로 바라보이기도 하고, 때론 절망감으로 다가오기도 하면서. 63스퀘어는 수족관(‘63시월드’), I MAX영화관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고, 전망대(‘63골든타워’)에서 바라보는 한강의 야경 또한 일품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여의도를 섬으로 남게 해주고 있는 것이 샛강이다. 여의도는 이름처럼 섬이지만, 사실상 섬의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다. 한강 반대편으로 섬과 육지 사이는 거의 개울 수준이라서 ‘샛강’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올림픽대로로 인해 시가지가 격리되어 있어 섬으로서 고립감은 어느 정도 유지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 영등포구에 속하는 여의도 내에서도 ‘영등포’라 하면 샛강 건너편에 있는 ‘영등포구 본토(또는 영등포역 일대)’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샛강생태공원은 1997년 국내 최초로 조성된 생태공원이다. 샛강을 환경친화구역으로 바꾸고 자연학습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비록 개발에 의해 쪼그라들었지만,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할 것들은 거기서 터를 잡고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치며 겨우 숨을 붙이고 있다. 다행히 생태공원으로 조성한 뒤 동식물의 분포가 매우 다양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과 자연의 삶이 공존할 때 그나마 여의도는 ‘너의 섬’이 아닌 ‘나의 섬’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생태를 관찰로와 관찰마루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주요시설로는 계류시설과 함께 수초수로·생태연못·저습지·버드나무하반림·건생초지 등이 있다. 자연생태를 보존하기 위해 매점이나 가로등은 물론 벤치도 설치하지 않았다.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생태를 관찰로와 관찰마루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주요시설로는 계류시설과 함께 수초수로·생태연못·저습지·버드나무하반림·건생초지 등이 있다. 자연생태를 보존하기 위해 매점이나 가로등은 물론 벤치도 설치하지 않았다.

√ 매주 금·토요일(18:00~23:00) 여의도한강공원에서는 ‘밤도깨비 야시장’이 펼쳐진다. ‘밤도깨비 야시장’은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핸드메이드 제품 판매, 푸드트럭 장터 운영, 문화공연 등이 진행된다. 여의도뿐만 아니라 반포, 상암DDP, 청계천에서도 야시장이 열리지만 한여름 밤 나들이로는 아무래도 여의도가 제격이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한강의 야경을 덤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5일부터 시작된 ‘서울 밤도깨비 야시장’은 오는 10월 27일까지 열린다. 

-샛길로 : 선유도공원
여의도에서 그리 멀지않은 한강 선유도공원은 참 좋은 공원이다. ‘자연공원’과 ‘조경공원’의 아름다움이 적당이 섞여 있다. 풀밭 위에선 마치 오래된 풍경처럼 나들이 나온 동아리들의 레크리에이션이 한창이고, 웨딩촬영에 코스프레족들까지 사진촬영의 명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아늑하고 편안하다. 축구장 15개 정도의 크기라지만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오밀조밀 아늑하고, 아무 곳에서나 자리를 잡고 하늘을 쳐다보면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없다. 시간은 강물보다 느리게만 흘러가고.
원래 한강정수장으로 사용하던 곳을 2002년부터 공원으로 리모델링해 개방한 곳으로, 정수장 당시에 있었던 시설들을 재활용하여 생태 및 수생 공원으로 만들었다. 물을 주제로 한 식물원과 정화원 등이 있다. 특히 옛 시설들을 철거하면서 남은 기둥들을 활용한 ‘녹색기둥의 정원’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래서인지 밤에 가면 커플들의 진한 애정행각을 곳곳에서 목도한다지만 그리 탓할 일은 아닌 것 같고. 지금의 공원시설은 조경가 정영선과 건축가 조성룡이 대표설계자인 작품이며,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3위에 오르기도 했다.

선유도공원 ‘녹색기둥의 정원’을 모녀가 다정스레 거닐고 있다. ‘탄생 1000일’을 기념해 엄마아빠와 나들이 나왔단다. ‘그래, 1000일 동안 세상을 살아본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그냥 씩 웃는다.
선유도공원 ‘녹색기둥의 정원’을 모녀가 다정스레 거닐고 있다. ‘탄생 1000일’을 기념해 엄마아빠와 나들이 나왔단다. ‘그래, 1000일 동안 세상을 살아본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그냥 씩 웃는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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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2019-07-13 17:55:30
로드서울이 보여준 여의도. 내게도 여의도 5.16광장의 기억이 있다. 70년대중반 어느해인가 교련시범을 개최했는데 응급처치법과 붕대법시범을 위해 여고생들도 참석하였는데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가끔 압박붕대를 사용할때면 절로 웃음이 나오기는 하는데..

심강지서(위영) 2019-07-12 17:02:40
여의도 근방에 있어 거의 매일 여의도를 다녀 봐도 너의 섬, 나의 섬, 여의도는 처음 들어 본다.
유 작가가 고등 악교때 서울 다녀 왔다고 하니 출세 한 것이다.
베이붐 세대에서 서울 사람 제외하고 지방에서 고등학교 때 서울 온다는 것은 친척이 서울에 있는 사람말고는 힘든 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유 작가님은 부모님에게 축복받은 것이다.

요즈음 토목기술의 발달로 섬으로 남아 있는 섬이 별로 없다. 그 만큼 섬의 존재가 중요해 졌지만 서울에서 여의도가 샛강으로 인해 섬이라는 사실이 신기롭다.

한국 금융의 메카인 여의도가 그 기능의 일부가 강남 테헤란으로 이전되어 한쪽 날개가 꺽인 느낌이다.
516광장이 서울 공원으로 변했으나 매하탄의 센트파크처럼 되지 못해 아쉽다

유작가의 다음 이야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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