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의 ‘12척의 배’
이순신장군의 ‘12척의 배’
  • 장영철
  • 승인 2019.07.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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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철 숭실대 교수(前 자산관리공사 사장)
장영철 숭실대 교수(前 자산관리공사 사장)

우리나라의 역사 중 가장 극적인 구절은 아마도 조선시대 임전왜란 중 이순신 장군이 왕에게 올린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는 표현일 것이다. 거짓 평화에 속아 당파싸움에 열중하면서 국방력 건설을 게을리 하다가 일본군이 부산 동래에서 서울까지 불과 20일 만에 올라올 정도로 무기력한 나라였던 조선에 이순신 장군이 있었던 것은 역사의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순신장군은 임진왜란이전에 당시로서는 독창적인 거북선을 건조하는 등 해군력을 확보하여 임진왜란 초기단계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바로 그 공적 때문에 음해를 받아 감옥에 간 사이 후임 장군이 일본해군에 궤멸되면서 다시 복귀한다.

이순신장군이 간신히 남은 배 12척을 추슬러서 일본함대 133척과 울돌목에서 맞서 아군의 피해 없이 일본전함 31척을 격파하는 큰 승리를 거둔 것은 세계 해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승리라고 한다. 이때부터 ‘12척의 배’는 비록 중과부적의 불리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전략과 결사항전의 정신력을 갖고 이겨내자는 자세를 강조하기 위하여 즐겨 사용되어 왔는 데, 최근 한국과 일본 간의 반도체 소재 무역공방에서 이 문구가 뜬금없이 사용되어 화제가 되고 있다.

1592년부터 7년간 일본의 침략으로 시작된 임진왜란은 한중일 3개국이 참여한 동북아의 정세를 뒤흔든 대형 전쟁이다. 당시 일본은 조선을 훨씬 능가하는 경제력과 오랜 내전에서 단련된 군사력으로 중국까지 넘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이 전쟁을 우리는 왜구의 난동 정도로 오인하게 하는 ‘왜란’이라고 기록하지만, 중국은 조선지역(朝鮮之役), 즉 조선전쟁이란 뜻으로 불렀고, 일본은 명치유신을 전후해서는 ‘조선정벌’, 그리고 2차대전후 부터는 전쟁당시의 천왕이름을 따서 임진왜란을 ‘분로쿠(文祿)의 역(役)’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풍신수길 정권은 몰락하여 새로운 막부정권이 들어섰고, 조선을 지원하였던 명은 국력이 약화되면서 청에게 망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내편 네편을 가르는 당파싸움에 눈이 멀어 일본의 조선침략 경고에 대비하지 않았던 조선은 온 국토가 전쟁터가 되어  무고한 백성들이 죽고 농경지가 2/3나 사라지는 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심지어는 왕이 백성을 버리고 중국으로 도망가려고 하였음에도 나라가 유지되는 역설을 낳았다. 전쟁에 대한 반성을 통해 나라를 재건한다는 소명의식은 없이 청에 멸망당한 명나라를 그리워하고 명나라 대신 조선이 유가의 정통성을 갖는다는 소위 ‘소중화’ 사상에 빠지면서 동북아의 격변하는 정세를 도외시하고 새로운 문물을 배격하면서 국가는 존립자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엉망이 되었다. 결국, 조선이라는 나라는 19세기말 세계와 교류하면서 신흥강국으로 부상한 일본의 2차 공격에 이렇다 할 반격도 하지 못한 채 무기력하게 나라를 내어주는 사태를 빚은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금 한일관계는 새로운 경제전쟁이라는 국면을 맞고 있다. 작년 10월 대법원의 강제징용자 배상판결을 계기로 일본은 수차례에 걸쳐 국제법인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위반한 것으로 국가간 신뢰를 깨는 일이며 판결이 실행될 경우 보복하겠다고 하였음에도 우리 정부의 반응이 없자 반도체의 중요 소재 부품 수출규제를 시작하였고 앞으로의 추이를 보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과거 임진왜란 시절에는 우리가 파견한 사절단의 의견이 엇갈렸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일본이 분명하게 한국정부의 대책이 없으면 보복하겠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헷갈릴 일도 없다.

우리가 6.25전쟁이후 한미동맹 덕분에 그동안 안보에 대한 큰 걱정 없이 원자재를 수입가공하여 수출하는 전략으로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노벨과학상을 받은 사람이 한명도 없을 정도로 기초기술이 크게 부족하여 중요한 소재 부품은 직접 개발 보다는 미국, 일본을 포함한 기술 강국에 의존하여왔다. 현대 과학기술시대의 제품은 수많은 소재와 부품이 필요하고 수 많은 공정을 통하여 생산하기 때문에 어느 한 곳에 차질이 생기면 제품생산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동안은 다행히도 자유로운 국제교역 환경이 유지되면서 글로벌 공급망체인을 통하여 기초 자재들이 조달되었지만 지금은 미국과 중국간의 무역분쟁 등에서 보듯 글로벌체인망이 깨지기 시작하고 있다. 자체 개발한다고 하나 그 사이에 제조 기업은 망할 수 도 있다. 이 틈을 보고 치밀하게 보복을 준비하여 온 일본에 대하여 무방비상태로 방치하다가 막상 일본이 행동으로 나서자 느닷없이 이순신장군의 ‘12척의 배’ 기적을 언급하면서 국민의 반일 결사항전을 고취하고 있다. ‘12척의 배’의 승리는 이순신장군이 적의 전술과 지형지물을 철저히 연구하여 실행한 결과임을 명심하고 이제라도 이순신장군처럼 현실에 입각한 전술을 냉정하게 마련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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