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영지회(絶纓之會), 그 넓은 도량
절영지회(絶纓之會), 그 넓은 도량
  • 김부조
  • 승인 2019.07.19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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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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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불같은 성격 때문에 무섭게 몰아치다가도 극에 다다르면 멈출 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장왕에게는 호색한, 쾌남아, 열혈남, 도가적 군주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이런 장왕의 성격을 아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는데 바로 ‘절영지회’다.
 
장왕이 영윤(令尹) 투월초(鬪越椒)의 반란을 평정하고 돌아와 여러 신하를 점대(漸臺·중국 한(漢)나라의 무제가 세운 누대)에 모아 놓고 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는 장왕의 비빈(妃嬪)도 참석했다. 왕과 신하들은 푸짐한 음식과 흥겨운 풍류로 하루를 즐겼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도 무르익은 흥이 그치지 않자, 장왕은 불을 밝히고 사랑하는 빈첩(嬪妾) 허희(許姬)를 시켜 여러 대부에게 술을 돌리게 했다. 술잔을 받은 신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받아 마셨다.
 
그런데 갑자기 광풍이 불어와 촛불이 모두 꺼지고 말았다. 미처 불을 켜지 못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허희의 소매를 끌어 당겼다. 허희는 깜짝 놀라 왼손으로 소매를 잡아 뽑고 오른손으로 그 사람의 관끈을 잡아당겨 끊었다. 관끈이 끊어지자 그 사람은 크게 당황해 허희의 손을 놓았다. 허희는 관끈을 들고 서둘러 장왕 앞으로 달려가 조용히 고했다. 
 
“첩이 대왕의 명을 받들어 백관에게 술을 돌리는데 그중 한 사람이 무엄하게도 촛불이 꺼짐을 틈타 저의 손을 끌어 당겼습니다. 제가 그 자의 관끈을 잡아당겨 끊어 왔으니 빨리 불을 밝혀 그 무례한 자를 찾아내도록 하소서.”
 
불만 켜면 감히 허희를 희롱한 자가 드러날 판이었다. 그러나 장왕은 다음과 같이 명했다.
 “오늘 이 연회에서 경들과 마음껏 즐기기로 약속했다. 경들은 모두 관끈을 끊고 실컷 마시자. 관끈이 끊어지지 않은 자는 마음껏 즐기지 않은 자이다.”
 
백관들이 모두 관끈을 끊은 뒤 장왕은 촛불을 밝히라고 명했다. 결국 허희를 희롱한 범인은 찾아낼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3년이 지났다. 진(秦)나라와 전쟁이 벌어졌는데 진군에 패한 왕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자 목숨을 내던져 분전, 왕을 구하고 대승을 이끈 장수가 있었다. 장웅(蔣雄)이란 장수였다. 장왕이 이상히 여겨 그를 불러 물었다.
 
“나는 평소에 그대를 특별히 우대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토록 죽기를 무릅쓰고 싸웠는가?”
그러자 장웅이 엎드려 말했다.
“저는 3년 전에 마땅히 죽을 목숨이었습니다. 연회가 있던 날 밤 술에 취해 그만 무례를 저질렀지만 왕께서는 이를 감추시고 제게 벌을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늘 저의 간과 뇌를 땅에 들어내고, 목의 피를 땅에 뿌려서라도 그 은혜를 갚을 것을 소원해 왔습니다. 신이 바로 갓끈이 끊어졌던 바로 그 놈입니다. 그때 폐하의 온정으로 살아날 수 있었으니 이제 한 목숨을 바쳐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려 했을 뿐입니다.”
 
이 싸움에서 진에게 이기고 난 다음부터 초는 차츰 강대해져서 장왕은 마침내 춘추오패(春秋五覇)의 한 사람이 되었다. 이 고사(故事)를 통해 우리는, 원수를 갚는 것은 적을 이기는 것이지만 용서하는 일은 위대한 구성원을 얻는 것과 같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된다. 
 
이처럼 무릇 다스리는 자(治者)의 그릇(度量)은 초장왕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잇따르는 국내외 여러 갈등 요인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사회가 어지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국가 지도자의 통 큰 리더십이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넓은 도량이 있어야 아랫사람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 의미의 절영시(絶纓詩)가 더욱 가슴을 울린다. 
 
‘어둠 속 잡아끈 손은 취중의 행동인 것을(暗中牽袂醉中情)/ 고운 손 바람 같이 관끈을 끊었다네(玉手如風已絶纓)/ 십분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 수 없기에(畜魚水忌十分淸)/ 군왕의 넓은 도량 바다 같다 일러오네(盡說君王江海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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