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제 명을 다해 살지 못하는 건 참 슬픈 일이야. 사람은 태어나면 모두가 죽지만 제 명을 다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요절하면 주변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크겠지. 그런데 요절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 사이에 유명세를 더하는 경우도 있지. 청춘의 심벌인 영화배우 제임스 딘 알지? 그리고 가깝게는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도 있구. 우리에게도 그란 가수가 한 명 있어. 바로 포크가수 김광석이야.
 
아주 오래 전 일이지. 나는 그가 소극장 무대에서 노래하는 걸 보러간 적이 있어. 1995년 8월이었을거야, 대학로 학전소극장. 불과 200석 남짓의 소극장에 발디딜 틈없이 관객들로 가득 찼었지. 보조의자에 앉아서라도 공연을 보겠다는 팬들의 성화에 작은 소극장의 계단에도 보조의자가 놓여질 정도였어. 객석의 관객들은 20대와 30대 초반이 주류를 이뤘고, 남성팬보다는 여성팬들이 훨씬 많았어. 그때 김광석은 소극장 1천회 공연이라는 대기록을 앞두고 있었어.
 
어둠 속에서 서서히 조명이 밝아지면서 그가 하모니카 전주를 시작했지. 술렁이던 객석은 이내 조용해지고 하모니카 소리보다 더 슬프고, 아름답고, 때로는 힘이 넘치는 김광석의 노래가 이어졌어. 대부분 김광석의 열혈팬이었지. 그의 라이브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김광석의 무대 카리스마에 질려 연신 탄성을 내질렀어. 
 

그리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그는 유명을 달리했어요. 경찰이 자택에서 자살했다고 발표했지. 그 뒤로도 무수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공식적인 기록은 자살이었어. 턴테이블에 LP를 얹고, 때로는 CD로 그의 노래를 들었지만 그날 라이브무대서 듣던 그의 노래를 결코 잊을 수 없어요. 마치 혁명 전야처럼 조용하고 부드럽게 시작하여 폭풍처럼 몰아치는 그의 노래를 듣다보면 피가 뜨거워지면서 가슴이 뛰었거든.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그의 목소리는 정말 타고난 가수라는 생각을 갖게 했지. 첫 구절만 들어도 누구의 노래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그의 노래는 부르면 곧 역사가 됐지.
 
1996년 1월. 그의 부음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믿을 수가 없었어. 그것도 사고사나 병사가 아닌 자살이라니. 그와 친분이 있던 가수나 매니저, 혹은 음악동네 사람들은 그의 장례식장에 와서 절대 자살할 리가 없다면서 울부짖었거든.
 
김광석은 죽기 전날 저녁 친구 박학기와 술을 마셨어요 김광석이 한 잔 더하자고 했지만 박학기가 다른 약속이 있어 아쉽게 헤어졌다고 했어. 그가 마포구 서교동에 있던 집에 귀가한 시간은 자정이 넘은 0시 30분. 그는 부인 서모씨와 맥주 4병을 나눠마셨던 것으로 확인됐어. 그리고 부인이 안방에 들어가 비디오를 보는 사이 전깃줄로 목을 맨 거지. 여러 가지 정황상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이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기에 주변 사람들이 더 안타까워 했었지. 
 

해를 더할수록 김광석이 더 뚜렷하게 우리 시대의 선 굵은 벽화로 각인되는 것을 보면 하늘나라의 그가 결코 외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들이 해를 거듭하면서 더 인기를 얻어가는가 하면 그를 추모하는 대구이 김광석거리에 추모객들로 넘쳐나거든. 
 
어찌보면 그가 너무 일찍 우리와 이별했지만 그의 노래는 갈수록 빛을 더하면서 신화가 돼가고 있는 거같아. 지금도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있어. 감성의 끝이 있다면 그곳에 이런 목소리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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