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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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1월, 세계 최대의 인터넷 종합 쇼핑몰 아마존이 전자잉크(e-ink) 디스플레이 기반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kindle)’을 불쑥 내놓았다. 그 당시 가격은 359달러. 첫 판매 개시 후 5시간 30분 만에 매진될 만큼 높은 관심을 모으며 전자책 혁명(?)의 후폭풍을 예고했다. 그간 기존 단말기의 단점으로 꼽히던 눈부심, 콘텐츠 부족, 타 매체와의 호환성 결여를 극복한 획기적 상품이었다. 전자책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PC 화면이나 휴대폰을 이용해 책을 읽을 때면 너무 밝은 디스플레이 때문에 5분 이상 집중하기 어려웠으나, 이 제품의 출시로 인터넷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책처럼 지루하지도 않은 그 중간의 편안함을 맛볼 수 있게 됐다. 

이 세상에 종이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얇게 깎은 대나무나, 얇고 단단한 나무에 기록했다. 이것을 각각 죽간(竹簡)과 목독(木牘)이라 했는데 일반적으로 책의 출발을, 내용에 따라 체계 있게 엮어 만든 죽간과 목독에 두고 있다.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책(冊)이란 글자는 책의 형태를 보고 만든 상형문자다.

종이가 처음으로 발명된 것은 중국 후한(後漢) 화제(和帝) 때의 일이다. 환관으로 있던 채륜(蔡倫)은 그 무렵 서사(書寫) 재료 대부분이 글을 쓰기에 불편하거나, 비단처럼 값비싼 것이어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찾았던 것이다. 나무껍질과 삼의 머리 부분, 또는 폐품 따위를 이용해 그가 만든 종이는 일대의 혁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렇게 발명된 종이는 곧바로 재료로 쓰여 다양한 형태의 책으로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현대의 책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출판선진국들에서 페이퍼백(paper back) 형태로 성행했는데, 전자공학이나 광학 등의 발달로 정보처리의 개념과 방법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 전자출판물들이 빠르게 등장했다. 특히 지난 2011년은 ‘국내 전자책 시장 원년’으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이 전자책 시장의 ‘태동’이었다면 2011년은 ‘성장’을 넘어 가히 ‘혁명’으로 불릴 만한 큰 변혁의 물결로 출판계를 변화시켰다. 

해외 전문가들은 전 세계 전자책 시장이 앞으로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아마존의 경우 전자책 판매량이 종이책 판매량보다 더 앞서고 있다. 전자책을 판매한 지 3년 만에 종이책 판매 실적을 이미 뛰어넘었다. 고무적인 것은 전자책이 계속해서 성장 가능한 시장이라는 점이다. 

전자책은 종이책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하고, 온라인 구매를 통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으며, 필요한 부분만 별도로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독서를 하면서 동영상 자료를 보거나 배경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휴대용 단말기에 별도의 메모리카드를 내장하면 최대 수십 만 권의 책을 저장해 언제 어디서나 쉽게 검색해 읽을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책은 수천 년 동안 인류의 문화와 정신을 담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 전달하고자 하는 정신체계, 외형적 발전을 가능케 하는 제지기술, 인쇄기술 등이 그 시대정신을 표현해 온 것이다. 아마 미래에도, 인간과 기본적으로 친숙한 종이책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아직도 우세하다. 그러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전자책을 저장한 뒤 언제든지 꺼내 읽을 수 있는 휴대용 기기들이 이미 독자층으로 파고든 지는 오래다. 이제 국민 대다수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고, 전자책에 최적화된 태블릿PC 사용자도 급증하면서 전자책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무엇으로 읽을 것인가’를 출간한 디지털 전문가 제이슨 머코스키는 “지금부터 한 세대 후 평범한 가정에 종이책이 몇 권이나 있을까. 아마 장식용 외에는 한 권도 없을지 모른다”라며 충격적인 예견을 한 바 있다.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전자책 단말기 ‘킨들’ 개발에 참여했던 그는 “아쉽지만 종이책의 죽음을 알리는 종은 이미 울렸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급속도로 변모하는 디지털 혁명기에, 거센 전자책의 물결에 맞선 종이책이 과연 어떠한 대처로 그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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