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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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성문(먼빛)
  • 승인 2019.10.03 20:1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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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과 경복궁

나는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와 연애하고 있다 그녀는/ 1893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한 영국왕립지학협회 회원이다/ 그녀는 인경전의 종소리가 울리면 장안의/ 남자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갑자기 부녀자의 세계로/ 화하는 극적인 서울을 보았다 이 아름다운 시간에는/ 남자로서 거리를 무단통행할 수 있는 것은 교구꾼,/ 내시, 외국인의 종놈, 관리들뿐이다 그리고/ 심야에는 여자는 사라지고 남자가 다시 오입을 하러/ 활보하고 나선다고 이런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를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다고/ 천하를 호령한 민비는 한 번도 장안외출을/ 하지 못했다고 –김수영 <거대한 뿌리> 중에서  

나는 한국에 있을 때 그들이 세계에서 가장 열등한 민족이 아닌가 의심했고, 그들의 상황을 가망 없는 것으로 여겼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 <Korea and Her Neighbours>(1898) 중에서

김수영의 시에서 나오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실지 ‘조선을 처음 방문한 해’는 1894년이고, 그 해는 동학농민운동과 갑오개혁, 그리고 조선반도의 지배를 놓고 중국과 일본이 맞붙은 청일전쟁이 일어난 격동의 해이기도 했다. 가마를 타고 서울에 당도한 그녀는 광화문 일대에서 예의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본 일이 없는’ 놀라운 광경을 목도한다. 이후 1897년까지 세 차례 더 조선을 방문하고, 고종과 명성황후를 만나기도 한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발간한다. 
처음 방문했을 때 지금껏 여행한 나라들 중 ‘가장 재미없는 나라’라는 인상을 받았던 그녀였지만, 이내 청일전쟁 동안 조선의 운명들을 깨달으면서 이 나라에 대해 참으로 강렬한 흥미를 갖게 된다. 또 시베리아의 러시아 정부 아래 있는 조선인 이주자들의 현황을 살펴보면서 ‘미래에 있을 이 나라의 가능성에 대해 눈을 크게 뜨게 되었다. 그녀는 책 머리글에 ’한국에 머무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이 나라가 처음에 안겨주는 찝찝한 인상들을 잊어버리게 할 만큼 강렬한 매력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있다‘고 썼다.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조감도. 서울시와 행정안전부가 그 추진을 놓고 갈등을 빚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은 결국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여기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에 대해 논란을 보탤 생각은 없다.
서울시가 발표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조감도. 서울시와 행정안전부가 그 추진을 놓고 갈등을 빚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은 결국 내년 총선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여기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에 대해 논란을 보탤 생각은 없다.

헐린다 헐린다 하던 광화문은 마침내 헐리기 시작한다. 총독부 청사 까닭으로 헐리고 정책 덕택으로 다시 짓게 된다. 원래 광화문은 물건이다. 울 줄도 알고, 웃을 줄도 알며, 노할 줄도 알고,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이 아니다. 밟히면 꾸물거리고 죽이면 소리치는 생물이 아니라,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거물이다. (…) 풍우 몇 백 년 동안에 충신도 드나들고 역적도 드나들며, 수구당도 드나들고 개화당도 드나들던 광화문아! 평화의 사자도 지나고 살벌의 총검도 지나며, 일로의 사절도 지나고 청국의 국빈도 지나던 광화문아! 그들을 맞고 그들을 보냄이 너의 타고난 천직이며, 그 길을 인도하고 그 길을 가리킴이 너의 타고난 천명이었다 하면 너는 그 자리 그 곳을 떠나지 말아야 네 생명이 있으며, 그 방향 그 터전을 옮기지 말아야 네 일생을 마칠 것이다. -설의식 <헐려 짓는 광화문>(동아일보 1926.8.29일자) 중에서 

어느덧 모든 소란의 정점에서 모든 소란을 끌어안아주고 있는 광화문광장은 1395년 경복궁의 정문으로 지어진 광화문에서 비롯한다. ‘울 줄도, 웃을 줄도 아는’ 사람이 아닌 광화문이지만, 그 수난의 역사는 민족사의 애환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이 불타면서 같이 무너졌고, 이후 273년간 공터로 있다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 1865년 재건되었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조선총독부 신청사를 지으면서 총독부 앞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1927년 원래 자리에서 벗어난 건춘문 북쪽으로 ‘헐려 짓게’ 된다. 
6.25전쟁 때에는 포탄을 맞아 목조 문루 부분은 완파되어 사라지고 석축만 남았다가,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남아있던 석축을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청사) 앞으로 이전하고, 그 위에 복원했다. 그러나 이 복원은 석조가 아닌 콘크리트 복원인데다 중앙청을 기준으로 지어지면서 원래의 자리에서 후퇴하고 각도도 틀어지는 등 문제가 많아 2006년 다시 ‘헐고 지어’지게 된다. 2010년 8월 15일 광복절에 현판식이 거행되면서 광화문 복원공사는 모두 끝이 났고, ‘헐려 지어’지고 ‘헐려 지어’진 지 93년 만에 겨우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광화문과 경복궁. 조선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기와마루 너머로 그와 비슷한 모양새를 지닌 청와대가 바라보인다. 시대적 사유에 따라 각도가 비틀리기도 해야 했던 그 축은 스스로 권력의 지향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내려다본 광화문과 경복궁. 조선 정궁(正宮)인 경복궁의 기와마루 너머로 그와 비슷한 모양새를 지닌 청와대가 바라보인다. 시대적 사유에 따라 각도가 비틀리기도 해야 했던 그 축은 스스로 권력의 지향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버드 비숍 여사를 안 뒤부터는 썩어빠진 대한민국이/ 괴롭지 않다 오히려 황송하다 역사는 아무리/ 더러운 역사라도 좋다/ 진창은 아무리 더러운 진창이라도 좋다/ 나에게 놋주발보다도 더 쨍쨍 울리는 추억이/ 있는 한 인간은 영원하고 사랑도 그렇다//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좆이다/ 은밀도 심오도 학구도 체면도 인습도 치안국으로 가라/ 동양척식회사, 일본영사관, 대한민국 관리,/ 아이스크림은 미국놈 좆대강이나 빨아라 그러나/ 요강, 망건, 장죽, 종묘상, 장전, 구리개 약방, 신전,/ 피혁점, 곰보, 애꾸, 애 못 낳는 여자, 무식쟁이,/ 이 모든 무수한 반동이 좋다/ 이 땅에 발을 붙이기 위해서는 –김수영 <거대한 뿌리> 중에서

광화문광장과 인근의 내력은 시로 대신하고, 광화문을 지나 경복궁으로 들어선다. 광화문광장과 마찬가지로 경복궁은 이제 온전히 시민들의 차지가 되었다. 문화재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조선궁릉 내·외국인 관람객은 모두 1천136만2천여 명으로, 그 중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단연 경복궁일 터이니 대략 몇 백만 명 수준은 될 것이라 어림짐작해볼 수 있겠다. 
경복궁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그 부작용도 만만찮다. 2010년 G20 정상회담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며 실시한 야간개장의 경우 문화재청의 안일한 관리 운영과 미성숙한 시민의식 등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고, 무료입장이 가능한 한복 착의에 대해서도 그 허용기준을 개량한복까지로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논란을 빚다 급기야 2018년 국정감사에서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개량한복을 입고 출석해 ‘문화의 절대적 보존이 아닌 효율적 보존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복궁 관람법에 대해서는 저마다의 방법이 있겠지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부임 당시 박연근 경복궁관리소장에게 “경복궁은 언제가 가장 아름답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으로 일례를 삼고자 한다. 

“청장님, 비오는 날 꼭 근정전으로 와 박석 마당을 보십시오, 특히 갑자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여기에 와보면 빗물이 박석 이음새를 따라 제 길을 찾아가는 그 동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물길은 마냥 구불구불해서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하수구로 급하게 몰리지 않습니다. 옛날 분들의 슬기를 우리는 못 당합니다.”

많은 이들이 무료관람 혜택보다는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한복을 착용한다. 입장료보다 더 비싼 한복 대여료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금년도 경복궁 야간개장은 11월 6일까지다.
많은 이들이 무료관람 혜택보다는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한복을 착용한다. 입장료보다 더 비싼 한복 대여료를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금년도 경복궁 야간개장은 11월 6일까지다.

경복궁을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있다. 경복궁의 맨 뒤켠에 자리한 건청궁이다. 이곳의 곤녕합은 이른바 ‘을미사변’으로 불리는 일본 낭인들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현장이다. 1895년 10월 8일 새벽,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지휘하는 40여 명의 낭인들은 ‘여우사냥’ 암호명에 따라 곤녕합 옥호루에서 잠을 자고 있던 명성왕후를 무참히 살해한다. 그곳이 원래 역사적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몇 년 전 어느 책에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충격적 이야기를 접하고는 그 대면의 심정이 더욱 처연해졌다. 소설가 김진명이 각고의 노력 끝에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시즈카 에조라는 일본인이 본국에 보고한 비밀문서를 찾아냈다는데, 그 내용을 요약해놓은 자료는 차마 글로 옮기기조차 어렵다.

당시 일본 낭인들이 궁궐로 침입하자 황후는 궁녀처럼 분장을 한다. 침입자들은 애를 낳은 여자임을 확인하기 위해 궁녀들의 옷을 모두 벗겨 가슴을 칼로 도려내고, 그렇게 해서 황후가 누군지 가려낸다. 찾아낸 후 배와 옆구리를 세 번 칼로 찌른다. 그 후 국모를 뒤뜰로 끌고가 돌아가면서 20명이 강간을 한다. 살아있을 때도 하고, 6명째에 죽었는데도 계속하였다. 그걸 말리는 신하들의 사지를 다 잘라버렸다. 그렇게 한 후 너덜너덜해진 국모의 시체를 얼굴부터 발끝까지 차례대로 한명씩 칼로 쑤셨다. 그다음 시체에 기름을 붓고 활활 태웠고, 타다만 덩어리를 연못 속에 던져버렸다. -배국환 <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에서 재인용    

건청궁 곤녕합의 옥호루. 건청궁은 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대립관계에서 주도권을 회복하여 정국을 능동적으로 이끌었던 고종이 명성황후를 위해 조영한 별궁이다. 건청궁 또한 경복궁의 많은 전각처럼 일제에 의해 하나둘 철거되어 빈터로 남아 있다가 2007년 복원되었다.
건청궁 곤녕합의 옥호루. 건청궁은 아버지 흥선대원군과의 대립관계에서 주도권을 회복하여 정국을 능동적으로 이끌었던 고종이 명성황후를 위해 조영한 별궁이다. 건청궁 또한 경복궁의 많은 전각처럼 일제에 의해 하나둘 철거되어 빈터로 남아 있다가 2007년 복원되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에서

나는 정말 무엇에 분개해야 하는가. 광화문광장은 여전히 시끄럽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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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2019-10-07 18:17:53
교과서속의 역사를 잊어갈 나이에 새롭게 읽는 역사가 유익하며 책 제목마저 가물거려질때 작가님의 문학적 지식으로 써주시는 로드서울이 문학과 역사를 생각하게 해주는 즐거움을 주시네요.감사합니다.

심강지서(위영) 2019-10-07 06:34:46
임진외란으로 경복궁이 불타고 대원군이 복원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일이라 생각된다.

조선의 통치철학과 사상이 경복궁에 고소란히 남아있다. 지금도 계속하여 복원하는 공사는 박수받을 사역이다.

일본옴들이 을미사변으로.명성황후를 살해한 일은 우리뿐만 아니라 후세에도 꼭 가억해야 할 알이다.

일본이 식만지를 미회해서도 안 되지만 잘못은 더욱 철저히 배워 두 번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영국의 인도에 대한 식민지 통치를 미화한 하버드대 퍼가슨 교수의 *제국*을 본 따서

몇몇 뉴라아트 교수들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미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식민지가 긍정적인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주객이 전도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많은 자료로 배움을 주는 유 작가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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