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 시민의 숲 

이 숲은 참 많고 무거운 의미를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우선 조성 이유부터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개최를 기념하였단다. 우면산 끝자락이니 ‘소가 잠들’ 법도 한 곳인데, 곳곳이 무슨무슨 기념물이다.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 때 희생된 희생자 위령탑도 있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희생된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탑도 있고, 1950년 6.25전쟁 때 비정규군으로 참전하였던 유격백마부대 충혼탑도 있다. 주변에는 윤봉길의사기념관과 그의 동상 및 숭모비까지 있다. 이쯤 되면 숲은 의미로 턱 숨이 막힌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숲이 먼저인지 사람이 먼저인지 알 수는 없으되, 숲과 사람은 서로 기대 살아왔다. 숲은 사람의 온기를 기다렸고, 사람은 숲의 위로를 바랐다. 숲에 들어가면 사람은 비로소 숨이 트일 것 같다고 말하고, 숲은 그럴 때마다 그저 빙긋이 웃는다. 이러니 김훈의 말마따나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 숲의 가장 큰 미덕은 ‘순환’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되풀이되도록 숲은 변화하면서도 한결같다. 그 피돌기가, 그 숨쉬기가 우리 몸을 감쌀 때, 우리 마음을 감쌀 때 우리는 시나브로 숲이 된다.

양재 시민의 숲은 1986년 조성된 공원숲이다. 면적은 총 25만8,992㎡이며, 이 중 녹지가 20만5872㎡다. 빌딩과 도로에 의해 마치 섬처럼 고립되어 있지만, 그렇기에 도시인에겐 더없이 소중한 공간이 된다. 겨울철에는 사람이 뜸한 편이지만 봄·가을에는 하루 7,000명 이상이 숲을 찾아 연간 이용객 수가 1백63만 명을 넘는다. 숲에는 소나무, 느티나무, 단풍나무, 칠엽수, 잣나무 등 25만여 그루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비록 오래된 당숲처럼 아름드리 고목은 찾을 수 없지만 수령 30~40년의 성장목들이 튼실하게 자리하고 있다.

숲은 강을 낳는다. 숲이 머금었던 물은 개울로 흐르고, 개울은 모두어 강을 이룬다. 강은 바다로 흐르며 다시 숲을 낳는다. 그래서 강과 숲은 하나의 순환고리를 이룬다. 하지만 도심에 들어선 숲이 개울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행히 시민의 숲은 양재천과 더불어 있다. 양재천은 20여 년 전만 해도 썩은 물이 흐르던 오염된 하천이었다. 1995년부터 부들과 부레옥잠 등 수질을 정화시켜주는 식물을 심고 오염원을 차단하면서 수질이 맑아지고 아이들이 물장구치며 노는 개울이 되었다. 지금은 서울에서 가장 유명한 생태공원 중 하나다.

나이 드니 비로소 숲이 보인다. 세상이 보인다. 그것은 집착이나 증오가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들고 사라지는 것조차도 순환이다. 받아들일 때 비로소 숲이 된다. 숨이 된다. 슬프거나 노여워 할 까닭도 없으리라. 숲보다, 세상보다 우리가 먼저 사라질 터이니까.

-샛길로 : 예술의 전당
우면산 자락의 예술의 전당은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곳이다. 오페라하우스, 음악당, 미술관, 축제극장 등에서 다양한 공연과 전시를 즐길 수 있고, 오페라하우스 뒤로 조금만 올라가면 우면지와 함께 맑은 공기와 새소리가 가슴까지 씻어주는 초록빛 산책로가 펼쳐져 있다. 가벼운 산책으로 만족할 수 없다면 우면산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코스를 택하면 된다. 건물과 건물사이로는 아늑한 마당과 함께 한국정원, 분수가 있는 연못 등 자연과 더불어 아름다운 음악선율을 만끽할 수 있는 야외 문화공간도 있다.

서초동 누에다리에서 바라본 반포대로와 예술의 전당. 너머로 우면산이 펼쳐진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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