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칼럼니스트

이른바 ‘독서의 계절’ 가을이 깊어 간다. 단풍으로 물드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말할 나위 없고 날씨도 쾌적해 생활하는 데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거기다 수확의 기쁨까지 누릴 수 있으니 가을이야말로 계절의 으뜸인 셈이다. 책 읽기도 좋지만 사색에 잠겨, 지나온 시간을 한번쯤 되돌아보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흔히 가을에 독서를 장려하려고 쓰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이란 말은 중국 당(唐)나라 때의 대문호이자 당·송팔대가로 꼽히는 한유(韓愈)가 아들 창(昶)의 독서를 권장하기 위해 지은 ‘부독서성남시(符讀書城南詩)’의 ‘등화초가친 간편가서권(燈火稍可親 簡編可舒卷)’이란 구절에 나온다. ‘이제 등불을 가까이할 수 있으니 책을 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라는 뜻이다.

독서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말을 들자면 위편삼절(韋編三絶)도 빼 놓을 수 없다. 종이가 없어 대나무에 글자를 쓴 뒤 책으로 엮던 시절, 만년의 공자(孔子)가 주역(周易)을 하도 읽어 대쪽을 엮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자 “내가 수년 동안 틈을 얻어서 이와 같이 되었으니, 내가 주역에 있어서는 곧 환하니라”라고 말했다. 공자 같은 성인도 학문 연구를 위해서는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사흘 동안 글을 읽지 않으면 언어가 삭막하여 말에 아름다움이 없다(三日不讀書語言無味)”는 말이나 “책 속에 금은보화가 다 들어 있다(書中自有千鍾祿)”는 의미의 말도 독서의 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강조한 말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호주 멜버른 대학의 피터 도허티 교수는 노벨상 수상 원인을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할머니가 책을 많이 읽어주셨고 6~7세부터 혼자 책을 읽기 시작했으며 거기서 노벨상 받는 원동력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빌게이츠는 1만4천여권에 이르는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하버드대 졸업장 보다 소중한 것은 독서하는 습관이라고 했다. 그 유명한 처칠과 에디슨,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공통점은 학교에서도 포기한 학습부진아였지만, 아무도 못 말리는 독서광이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고 했던 안중근 의사는 사형이 집행되던 날, 집행관이 마지막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자 ‘5분만 시간을 달라. 읽던 책을 아직 다 읽지 못했다’고 했다.

일본은 오래 전부터 아침독서 10분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정규수업 직전 10분간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읽도록 하는 것이다. 국민독서 장려를 위해 ‘활자문화진흥법’도 만들었다. 프랑스에서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려면 생텍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알퐁스 도데의 『풍차간의 편지』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이 정도의 책도 안 읽은 사람에게 무기를 맡길 순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미국의 어느 연구 보고서 앞에서 우리는 낯이 붉어진다. 한국이 조사 대상 30개국 가운데 가장 책을 안 읽는 나라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1주일에 3.1시간을 활자매체에 할애하고 있는데 1위인 인도는 10.7시간을 독서에 쓴다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민독서실태 조사결과에 의하면 국민 10명 중 4명은 1년에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감스럽게도 정보통신이 주도하는 세대가 시작된 이후 우리 사회는 책을 멀리하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낯선 집을 방문할 때 부엌과 화장실을 보면 그 집 안주인을 알 수 있고 서재와 읽는 책을 보면 그 집 주인을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다고 한다. 과연 시간이 없다고 술을 못 마시고 잠을 못 자는 사람이 있을까. 만일 오랜 세월 술을 마시고 친구를 열심히 만나도 인생이 바뀌지 않았다면, 책 읽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보는 것은 어떨까.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독서를 가장 싼값으로 가장 오랫동안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독서는 인생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깊어 가는 가을, 서둘러 독서의 불빛을 환히 밝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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