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밑 정동 길엔
언덕 밑 정동 길엔
  • 유성문(먼빛)
  • 승인 2019.10.18 10:3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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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정동

이젠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해갔지만
덕수궁 돌담길에 아직 남아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이영훈 작사·작곡, 이문세 노래 <광화문 연가> 중에서

정동 길에 시월이 깊어간다. 서울시는 10월 한 달 동안 ‘시간을 넘다, 시월을 걷다’를 주제로 정동 곳곳에서 ‘시월정동’ 축제를 연다. 대한제국 선포일(1897년 10월 12일)을 기념해서다. 고종은 정동의 덕수궁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했다. 기실 정동 길엔 조선의 시작과 끝이 담겨있다. ‘정동’이란 이름부터가 조선 개국 후 최초로 조성된 왕릉인 정릉이 애초 위치한 데서 비롯한다. 그리고 조선이 막을 내리고 대한제국이 태어나는 어간에서 정동은 저물어가는 역사의 현장이었다. 굳이 역사적 의미가 아니래도 좋다. 정동 길의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고, 그 잎들 흩날리면 우리들의 추억도 시나브로 깊어만 간다. 

지난 주말 정동공원에서는 '가배정동'이 열렸다. 고종황제가 즐겼다는 가배(커피의 옛 이름) 향 속에 역사와 시간의 의미를 반추하는 행사였다. 행사는 끝났지만 정동 길엔 여직 가배의 여운이 가득하다. ‘마음을 내려드린다’는 한 카페의 간판 문구가 향그럽다.
지난 주말 정동공원에서는 '가배정동'이 열렸다. 고종황제가 즐겼다는 가배(커피의 옛 이름) 향 속에 역사와 시간의 의미를 반추하는 행사였다. 행사는 끝났지만 정동 길엔 여직 가배의 여운이 가득하다. ‘마음을 내려드린다’는 한 카페의 간판 문구가 향그럽다.

정동 길 산책은 경향신문사 쪽 입구에서 시작한다. 경향신문사를 지나 처음 만나는 곳이 프란치스코교육회관. 1988년 개원한 프란치스코교육회관은 1923년 무렵 경성외국인학교가 이전한 곳이기도 하다. 가톨릭 신자들의 피정과 각종 모임을 위한 도심 속의 영성 쉼터로 제공되고 있다. 다음으로 캐나다대사관 옆 골목을 오르면 언덕바지에 자리한 구 러시아공사관을 만난다. 조러통상조약 체결에 따라 1890년 이곳에 들어선 러시아공사관은 을미사변으로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이 급히 피신하였던 이른바 ‘아관파천(1896)’의 현장이다. 현재는 3층 탑부만 남아있으며, 이곳에서 덕수궁으로 이어지는 길은 ‘고종의 길’로 명명되었다. 

왼쪽/프란치스코교육회관의 성 프란치스코 상. ‘가난한 성자’는 넉넉한 가을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한 쌍은 4월 꽃피던 그날, 이곳에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오른쪽/구 러시아공사관 탑부. 사적 제253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구한말 역사의 한 장면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왼쪽/프란치스코교육회관의 성 프란치스코 상. ‘가난한 성자’는 넉넉한 가을햇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떤 한 쌍은 4월 꽃피던 그날, 이곳에서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으리라. 오른쪽/구 러시아공사관 탑부. 사적 제253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구한말 역사의 한 장면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이번에는 중명전이다. 덕수궁 외곽에 위치한 중명전은 1901년 지어진 황실도서관으로, 고종의 집무실이자 외국사절 접견실로 사용되었다.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체결되고, 1907년에는 황태자(순종)와 윤비의 가례(嘉禮)가 거행된 역사적 장소다. 1925년 화재로 전소된 후 재건되어 지금과 같은 2층 벽돌건물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다. 2003년 정동극장에서 매입한 뒤 문화재청에 관리 전환하여 2007년 사적 제124호로 덕수궁에 편입되었다. 2009년 복원을 거쳐 전시관(‘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덕수궁 중명전’)으로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가까이 정동극장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의 명맥을 잇고 있는 곳으로, 전통 상설공연과 창작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중명전은 덕수궁 내에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나 지금은 덕수궁 밖에 위치해 있다. 러시아공사관을 설계하기도 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의 작품이다.
중명전은 덕수궁 내에 최초로 지어진 서양식 건물이나 지금은 덕수궁 밖에 위치해 있다. 러시아공사관을 설계하기도 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틴의 작품이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 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한국 최초의 기독교 감리교 교회당인 정동교회는 건물 자체의 건축적 의미도 있지만 미국공사관, 이화여고, 배재학당과 인접했던 곳으로 미국문화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중심지였다는 건축 외적 의미도 간직하고 있다. 개신교가 우리 땅에 처음 소개된 것은 1884년으로, 천주교보다 150년이 늦은 뒤였다. 1885년 선교를 위해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인 아펜젤러 목사는 활동무대를 정동으로 정하고, 1897년 배재학당의 설립과 함께 정동교회를 세웠다. 정동교회 건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빅토리아식 예배당으로, 붉은 벽돌을 사용한 비교적 간결하고 중후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남쪽 모퉁이에 솟은 사각의 종탑은 첨탑이 아닌 평탑으로 이 건물의 특색을 잘 보여준다. 사적 제256호.

정동교회가 특히 사랑스러운 것은 노래 <광화문연가> 때문이다. <광화문연가>에 나오는 ‘눈 덮인 조그만 예배당’의 모델이 바로 정동교회다. 정동교회 맞은편에는 <광화문연가>를 작사·작곡한 이영훈의 노래비가 서있다. 2008년 타계한 그를 기리기 위해 가수 이문세를 비롯한 지인들이 2009년 세운 기념비다. “이제 우리 인생에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영훈 씨의 음악들과 영훈 씨를 기억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당신의 노래비를 세웁니다.” 경향신문은 10월 12일(15:00-17:00) 일대에서 옛 정동의 모던가요를 현대가요로 리메이크한 ‘2019 정동연가’ 무대를 선사한다.
정동교회가 특히 사랑스러운 것은 노래 <광화문연가> 때문이다. <광화문연가>에 나오는 ‘눈 덮인 조그만 예배당’의 모델이 바로 정동교회다. 정동교회 맞은편에는 <광화문연가>를 작사·작곡한 이영훈의 노래비가 서있다. 2008년 타계한 그를 기리기 위해 가수 이문세를 비롯한 지인들이 2009년 세운 기념비다. “이제 우리 인생에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영훈 씨의 음악들과 영훈 씨를 기억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당신의 노래비를 세웁니다.” 경향신문은 10월 12일(15:00-17:00) 일대에서 옛 정동의 모던가요를 현대가요로 리메이크한 ‘2019 정동연가’ 무대를 선사한다.

배재학당역사박물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잠시 들렀다가 이내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다. 시월을 걷는다. 이 사붓한 돌담길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추억들이 깔려있는 것일까. 높다란 담장 위로 담장보다 더 키 큰 나무들이 푸르름을 다하고, 서서히 붉고 노란 빛으로 갈아입는다. 어느덧 그 빛마저 지고나면 저 담장 위로, ‘조그만 교회당’ 위로 눈은 내려 덮이리라. 그렇게 세월이 간다한들 우리의 추억마저 덮이고 사라질까. 아니 그런다한들, 그럴 때까지라도 걷고 또 걸으리라. 마지막 빛 한 줌조차 다 사라져 이윽히 어둠으로 덮일 때까지. ‘시월의 마지막 밤’까지.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덕수궁 돌담길에 옛 추억들이 모였다. 그들이 처음 이 길을 걸은 것은 언제였을까. 세월은 덧없이 흘러 추억으로만 남았고, 그 추억의 길 위에서 또 다른 추억 하나를 사진으로 남긴다.
덕수궁 돌담길에 옛 추억들이 모였다. 그들이 처음 이 길을 걸은 것은 언제였을까. 세월은 덧없이 흘러 추억으로만 남았고, 그 추억의 길 위에서 또 다른 추억 하나를 사진으로 남긴다.

√정동전망대, 그리고 정동야행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동 13층에 위치한 정동전망대는 덕수궁과 성공회서울성당, 서울시청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전망대 안에는 ‘다락’이라는 카페가 있어 음료를 즐기면서 유리창을 통해 정동 일대를 관람할 수 있다. 카페 벽면에는 정동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전망대 입장은 무료이며,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토요일 및 공휴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된다. 

정동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시청과 서울광장.
정동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서울시청과 서울광장.

10월 25~26일 덕수궁 돌담길 등 정동 일대에서 ‘정동의 시간을 여행하다’를 주제로 ‘2019 정동야행’이 열린다. 근대 역사의 시작이자 근대문화유산 1번지, 정동을 거니는 ‘시간여행’이다. 덕수궁 대한문 옆에 위치한 ‘시간의 문’을 지나면 근대의 역사가 태동하던 개화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덕수궁 돌담길을 거닐며 ‘미드나잇 인 정동’을 즐겨보자.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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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지서(위영) 2019-10-18 12:42:36
이성계는 경처(서울 부인: 2부인)인 강씨가 죽자 4대문 안인 정릉에 묻었다. 첫 부인 향처인 한씨보다 끔직히 사랑했나 보다. 나중에 정릉은 이방원에 의해 파괴되고 옮겨지는 수모를 당지만 말이다.

정동길에 한국 예술의 메카인 예원학교(음악,미술,무용)도 있고 유서갚은 이화여고도 있다. 연극을 하던 정동극장도 있었다.

어리석은 임금인 고종은 세계의 시대상황을 몰라서 청나라. 러시아. 일본에 붙다가 결국 망했다. 그 때 영국이나 미국에 의지했다면 역사가 달라졌울까?
언제나 최고 통치자의 결정은 중요하다는 걸 다시 배운다.

소련과 국교 회복 후에 러시아 공관이 소련 소유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 기억이 있다.

정동 축제가 있다니 참가하여 보고 싶다.
항상 유려한 필치의 유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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