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소년이 동대문을 물었다
낯선 소년이 동대문을 물었다
  • 유성문(먼빛)
  • 승인 2019.10.25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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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시장과 DDP

이슬비 오는 날/ 종로 5가 서시오판 옆에서/ 낯선 소년이 나를 붙들고 동대문을 물었다// 밤 열한시 반/ 통금에 쫒기는 군상 속에서 죄 없이/ 크고 맑기만 한 그 소년의 눈동자와/ 내 도시락 보자기가 비에 젖고 있었다 –신동엽 <종로 5가> 중에서

동대문의 서열은 항시 남대문의 다음이었다. 국보 1호 숭례문에 보물 1호 흥인지문이었고, 동대문시장은 오랫동안 남대문시장의 위세에 눌려 있었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동대문시장이 백화점에 대항하고 마침내 남대문시장의 명성까지 누를 줄을. 점포 3만여 개, 고용인구 10만, 하루 유동인구 50만, 연간 해외 바이어 70만, 서울 관광객의 반에 가까운 250만이 쇼핑 겸 관광차 들르는 동네가 될 줄을. 진짜 보물도 이런 보물이 없다. 게다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들어서면서 일대는 단순한 '쇼핑의 거리'에서 세계적 '패션산업의 메카'로 자리 잡았다. 신동엽 시인이 상경 소년을 만나던 예전의 동대문과는 그야말로 상전벽해를 이룬다.

동대문(흥인지문)은 남대문(숭례문)과 더불어 한양 성문 중 가장 규모가 큰 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장행렬과 능행길의 통로로 이용되었으며, 일제 때부터 문 앞으로 전차가 다니기 시작하여 1968년까지 전차종점 차고가 있었다. 교통이 발달하다 보니 주변은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변화하는 동안 옛 모습을 하나둘 잃어가기도 했다. 지금은 일대의 패션타워들과 함께 그야말로 ‘성시(盛市)’에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곳이 되었다.
동대문(흥인지문)은 남대문(숭례문)과 더불어 한양 성문 중 가장 규모가 큰 문이다. 조선시대에는 국장행렬과 능행길의 통로로 이용되었으며, 일제 때부터 문 앞으로 전차가 다니기 시작하여 1968년까지 전차종점 차고가 있었다. 교통이 발달하다 보니 주변은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변화하는 동안 옛 모습을 하나둘 잃어가기도 했다. 지금은 일대의 패션타워들과 함께 그야말로 ‘성시(盛市)’에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곳이 되었다.

1905년 개설된 동대문시장은 처음에는 동부 이현(梨峴)의 예지동에 세워졌다 하여 ‘배우개장’으로 불리다가 같은 해 11월 동대문시장 관리를 위한 광장주식회사가 설립되면서 ‘광장시장’으로도 불렸다. 1911년의 통계에 의하면 점포 수 98개 중 미곡상 31개, 어물상 12개, 청과상 15개, 잡화상 15개, 기타 25개로, 곡물류가 주거래 상품으로 나타나 있다. 6·25전쟁으로 시장은 완전히 파괴되었으나 주로 월남 피난민의 생활터전으로 생활필수품과 군용물자·외래품의 암거래를 포함하는 시장거래가 활기를 띠면서 재발족되었다. 자유당 말기에는 이정재를 수령으로 하는 여당 폭력행동대의 거점이기도 했다. 
1970년에 기존의 동대문시장보다 큰 규모의 동대문종합시장이 생겼으며, 인근에 평화시장이 개설되면서 이곳까지 통틀어 ‘동대문시장’이라 부른다. 1990년대 들어서 거평프레야, 밀리오레, 두산타워(두타) 등 대형 쇼핑몰이 들어서는 등 시설 현대화에 힘쓰면서 재래시장의 이미지에서 벗어나고 있으며, 소비자의 요구에 대응하며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동대문시장은 흥인문로를 사이로 청평화, 동평화, 남평화 등 전통 도매상가가 자리 잡은 동측과, 밀리오레, 두타, 프레야 등 새로운 패션몰이 주류를 이루는 서측으로 나누어 속칭 ‘동편제’ ‘서편제’로 불리기도 한다. 당연히 서편제가 우세하지만.

옛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성된 DDP는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2007년 12월 동대문운동장 철거작업을 시작하면서 매장된 유물들이 출토되어 2008년 1월 문화재 발굴조사에 착수하였으며, 2009년 발굴된 유물을 보존 전시하기 위한 역사문화공원을 DDP 일부에 조성 개장하였다.
옛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조성된 DDP는 역사와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2007년 12월 동대문운동장 철거작업을 시작하면서 매장된 유물들이 출토되어 2008년 1월 문화재 발굴조사에 착수하였으며, 2009년 발굴된 유물을 보존 전시하기 위한 역사문화공원을 DDP 일부에 조성 개장하였다.

동대문시장에는 ‘동대문스타일’이 있다. 혹자는 ‘재래시장을 현대식 건물에 옮겨놓았을 뿐’이라고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 비판 자체가 바로 동대문스타일이다. 비록 싸구려 시장물건에 기반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래서 ‘쇼윈도 형’이 아닌 ‘로드숍 형’이고, ‘아이쇼핑 형’이 아닌 ‘상품터치 형’이다. 바라보면서 군침만 흘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내 것이 될 수 있는, 내 몸에 걸칠 수 있는 스타일, 그것이 바로 동대문스타일의 매력이다. 유명 브랜드가 아니면 어떻고, 고가 명품이 아니면 또 어떠랴. 일본, 중국, 러시아, 베트남, 몽골에서 이미 동대문스타일이 그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는 것을. 패션은 바로 개성인 것을.
동대문시장의 또 다른 매력은 ‘밤새도록 시장’이라는 점이다. 남대문시장이 그런 것처럼 지방 도매상을 위한 서비스 차원에서 시작되어 고유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밤샘시장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비록 지방 도매상들의 발걸음은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그 자리를 외국 보따리상들이 채우고 있다. 유달리 야행족이 많은 우리 생활스타일 때문일까. 동대문 밤샘시장은 또 다른 활력과 재미를 제공하고, 그 활력을 통해서 매일같이 새로워지고 있다. 어쩌면 동대문스타일은 조만간 중국에, 동남아에 또 다른, 새로운 트렌드를 낳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대문시장 패션상가들의 최대 강점은 늘 유행을 의식하면서 그에 맞는 상품을 직접 발주하고 판매도 하기 때문에 고객의 취향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기동력을 갖추었다는 데 있다(모델 김제이).
동대문시장 패션상가들의 최대 강점은 늘 유행을 의식하면서 그에 맞는 상품을 직접 발주하고 판매도 하기 때문에 고객의 취향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기동력을 갖추었다는 데 있다(모델 김제이).

동대문을 '디자인·패션산업의 발신지'로 격상시켜준 DDP는 2014년 개관한 이래 각종 전시, 패션쇼, 신제품발표회, 포럼, 컨퍼런스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진행하면서 글로벌 문화교류의 장으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대 규모의 3차원 비정형 외관을 자랑하며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위대한 작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DDP는 지금은 타계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유작이다, 자하 하디드는 여성 최초로 건축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을 수상하고, 2010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100인’에 선정되는 등 세계적으로 큰 명성을 얻은 이라크 태생의 건축가이다.
건축 컨셉은 '환유의 풍경'이다. ‘환유(換喩)’는 특정 사물을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역사적·문화적·도시적·사회적·경제적 요소들을 환유적으로 통합하여 하나의 풍경을 창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건축물 외부와 내부에 직선이나 벽이 없이 액체의 흐름을 연상시키는 공간적 유연성이 특징이며, 최첨단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ing) 설계기법, 메가트러스(Mega-Truss;초대형 지붕트러스)와 3차원 배열의 스페이스 프레임(Space Frame) 구조 등을 통해 최소한의 실내기둥으로 안전하면서도 우주공간처럼 느껴지는 대규모 공간감을 구현하였다.

왼쪽/DDP는 패션의 거리 '동대문'에 들어선 '디자인 프라자'라는 이름답게 건축물의 외관은 물론 로고, 가구, 유니폼, 리플릿 등 공간 곳곳이 디자인적 요소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도 DDP의 외관은 예술성과 완성도가 상당히 높아 개관 당시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오른쪽/DDP의 주요시설은 알림터·배움터·살림터·어울림광장·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림터는 컨벤션·신제품발표회·패션쇼·콘서트·전시회 등의 장소로 활용된다. 배움터는 디자인박물관·디자인전시관·디자인둘레길과 어린이·청소년 및 가족단위로 디자인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디자인놀이터로 구성되어 있다. 살림터는 디자인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활용되며, DDP의 앞마당 격인 어울림광장은 24시간 개방되는 복합 편집매장인 디자인장터와 유구(遺構) 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왼쪽/DDP는 패션의 거리 '동대문'에 들어선 '디자인 프라자'라는 이름답게 건축물의 외관은 물론 로고, 가구, 유니폼, 리플릿 등 공간 곳곳이 디자인적 요소로 가득 차 있다. 그 중에서도 DDP의 외관은 예술성과 완성도가 상당히 높아 개관 당시 전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은 바 있다. 오른쪽/DDP의 주요시설은 알림터·배움터·살림터·어울림광장·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림터는 컨벤션·신제품발표회·패션쇼·콘서트·전시회 등의 장소로 활용된다. 배움터는 디자인박물관·디자인전시관·디자인둘레길과 어린이·청소년 및 가족단위로 디자인 콘텐츠를 체험할 수 있는 디자인놀이터로 구성되어 있다. 살림터는 디자인 비즈니스가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활용되며, DDP의 앞마당 격인 어울림광장은 24시간 개방되는 복합 편집매장인 디자인장터와 유구(遺構) 전시장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샛길로 : 신당동떡볶이타운
동대문 패션타운 탐방은 그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신당동 패션거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끝은 깜찍하게도 신당동떡볶이타운이다. 6·25전쟁 직후 리어카를 끌고 떡볶이 장사를 하던 마복림 할머니가 신당동에 가게를 연 것이 떡볶이타운의 시작. 현재는 20여 곳의 떡볶이가게가 이곳에 몰려있다. 신당동에서 파는 떡볶이는 여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떡볶이와는 달리 떡이 가늘고 양념 색깔이 검은 것이 특징. 검은 양념 색깔의 비밀은 자장면의 재료인 자장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재료가 많고 양이 푸짐한 것도 이 골목만의 특징. 떡은 물론이고 어묵, 라면, 만두, 삶은 계란, 쫄면, 그리고 양상추가 가득 들어간 2인분 세트가 13,000원. 양이 워낙 많아 점심 대용으로 2인분을 시키면 4명도 충분히 먹을 수 있다.

신당동떡볶이타운의 마복림떡볶이. 현재는 둘째아들 부부가 대를 잇고 있고, 가까이 ‘막내아들’ 떡볶이집도 있다.
신당동떡볶이타운의 마복림떡볶이. 현재는 둘째아들 부부가 대를 잇고 있고, 가까이 ‘막내아들’ 떡볶이집도 있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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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2019-10-31 08:54:37
청계천 책방을 돌고 강릉행 버스터미널이 있었고 동대문은 스케이트장으로 겨울내내 드나들었던곳. 동대문 거리의 변한모습이 그렇게 오래 되었는데도 추억이 하도 깊어 요즘의 모습으로 적응이 안되고 있다.

심강지서(위영) 2019-10-26 23:44:15
1970년대 처음으로 서울에 올라와 지하철 1호선도 타 보고 동대문과 동대문 종합시장 및 이대병원(동대문 근처에 있었으나 지금은 철거되어 서울 성곽이 자리 잡았다) 을 보고 놀랐다.

동대문 근처인 종로구 숭인동과 창신동에서 10여년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동대문시장, 평화시장, 이대병원
중앙시장(황악동)을 자주 가게 되었다.

집안 친척들도 서울에 올라와 동대문, 평화시장에 종사하게 되어 역시 여러 일들이 많이 일어 났다.

시골애서 올라온 서만들이 동대문과 평화시장에서 일하다 보니 가까운 창산동과 숭인동에 살게 된 연휴로 지금도 옛날 일들이.아련하 떠오르는 향수이다.

이런 동대문이 패션의 중심지로 변한 것을 보나 상전벽해의 말이 실감이 된다.

신당동 떡뽁기집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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