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사람은 태우는 거고, 나머지 사물/물건은 싣는 거다.
물론 그 심정, 이해는 간다. ‘안건을 싣는다’고 하자니 이상한 거다.

그러나, 명절 때만 되면 귀성객을 그렇게 실어 나른다고 하더니만, 이제 와선 왜 그깟 종잇조각을 태운다고 부산 떨며 난데없는 의인화/배려 언어에 나서는가.

정리하면, ‘태우다’는 틀리고 ‘싣다’는 어색한 것이다. 그러면 대안은?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했다.”가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고유어를 고집한다면 "패스트트랙에 올렸다."고 괜찮을 듯싶다.

갈아치우다?

순우리말 강박에 사로잡힌 우愚라고 본다. 간결미가 떨어지고 곱지 않은 뉘앙스라면 고유어도 신중히 골라 써야 마땅하다. “종전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느낌이 좋은가? 종전 기록을 달성한 사람한테 너무 매정하고 야멸치지 않나? '종전 기록'을 앞세우니, 자꾸 이리 되는 거다.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아니면 ‘종전 기록을 경신했습니다.’가 더 낫다. ‘갈아치우다’는 ‘바꾸어서 버리다/정리하다’는 의미다. 이전 기록도 대단하고 소중할진대 이러면 너무한 거다.

몇일?

몇년/몇월/몇일, 이러면 딱 떨어지고 참 좋으련만 ‘몇일/몇 일’이 아니라 ‘며칠’이 맞는다.

‘몇일’은 불행하게도(?) [며칠]로 소리 나지 않는다. [면닐]로 발음된다. [ㅣ] 모음의 존재감 때문이다. 깻잎[깬닙] 뒷일[뒨닐] 베갯잇[베갠닏]처럼 ‘ㄴ’소리가 꼭 덧나게 되어있는 것이다. ‘몇일’이 ‘몇년’ ‘몇월’과 마찬가지로 한 단어가 아닌 점도 시사점을 준다. 

 원래 ‘몇일’이란 단어가 있었던 같지만, 조선 중기 어느 고문집古文集에 ‘며츨’이 나온다. 그것이 변해 ‘며칠’이 된 것이다.

그러니 정확한 쓰기는 ‘몇 년, 몇 월, 며칠’이다. 이상해도 할 수 없다. 때로는 상식, 예측과 反하는 것이 매력적이지도 하지 않은가?

자정子正을 어떻게 할 것인가.

뉴스에서 ‘자정’을 잘못 쓰는 경우가 너무 많다. 예컨대 20일 밤 8시에, “우리 시각 오늘밤 자정, 한독 정상회담이 열립니다.”하면 오류다. 

자정을 한밤중으로 생각해 하루를 마무리 짓는 즈음으로 여기는 데서 기인한다. 자정子正은 하루의 시작이다. 자정은 곧 0시다. 십이간지十二干支에서도 자시子時(23시~01시)가 제일 먼저 나오지 않던가? 자시子時의 한가운데가 바로 밤 열두 시, 자정의 실체인 것이다. 

곧, 앵커가 말하는 오늘밤 자정(오늘 자정)은 20시간 이상 지난, 과거의 어느 시점이 되어 버린다. 20일 자정은 그 전날인 19일 밤 24시와 겹치는 시각인 것이다. 결국 “내일 밤 자정, 회담이 열립니다.”가 옳겠지만, 그러면 또 다시 시청자는 헛갈린다.

따라서 이럴 땐, “우리 시각 오늘밤 12시, 한독 정상회담이 열립니다.”로 하는 게 적절하다.

KBS 강성곤 아나운서는 1985년 KBS입사,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위원, 미디어언어연구소 전문위원,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건국대, 숙명여대, 중앙대, 한양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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