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 유성문(먼빛)
  • 승인 2019.11.14 10:3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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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장충단공원

안개 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 한 번 어루만지며 떠나가는 장충단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주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있는데/ 외로움을 달래가면서 떠나가는 장충단공원 –배호 노래 <안개 낀 장충단공원> 

허스키한 그의 목소리는 안개처럼 자욱하게 깔린다.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를 기억하라고.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 있는데. 

2018년 세상을 떠난 가수 최희준은 생전 배호에 대해 “타고난 가창력은 두려울 정도였다. 그가 죽지 않았더라면 남진과 나훈아의 라이벌 시대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배호는 중국 산둥성 제남시 태생이다. 아버지는 대한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였으며, 3살 때 광복이 되자 부모를 따라 한국에 돌아왔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공부에는 영 흥미를 붙이지 못해 중학교를 중퇴하고 악단생활을 하던 삼촌들의 손에 이끌려 음악활동을 시작한다. 오랜 무명생활 끝에 1967년 발표한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의 히트로 1960년대 최고의 인기가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이미 병마가 자리 잡고 있었고, 건강이 채 회복될 틈도 없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갔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방송출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비를 맞게 되고, 이로 인한 감기몸살에다 지병인 신장염 합병증까지 겹쳐 끝내 쓰러지고야 만다.

1971년 11월 7일, 허스키보이스는 세상을 떠나갔다. 향년 29세. 떠나가도 너무 일찍 떠나갔다. 안개 낀 장충단공원만 남겨두고.

장충단공원에 가을이 깊어간다. 그는 이 화려한 가을을 남겨두고 어떻게 떠나갈 수 있었을까.
장충단공원에 가을이 깊어간다. 그는 이 화려한 가을을 남겨두고 어떻게 떠나갈 수 있었을까.

장충단공원은 명성황후가 시해당한 을미사변(1895) 때 목숨을 잃은 대신들과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사당인 장충단에서 유래한다. 그러나 사당은 일제강점기에 사라지고 지금은 비석과 터만 남아있다. 일제는 이곳에 벚나무를 심고 이름을 '장충단공원'으로 바꾼 뒤 인근에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라는 절을 지었다. 해방 이후 박문사는 철거되었으나, 장충단은 여전히 복원되지 않았다. 장충단공원은 우리 근현대 정치사의 현장이다. 1957년 이곳에서 이승만 독재를 성토하는 시국강연회가 열려 서울시민 20만여 명이 모였는데, 여당과 결탁한 폭력배들이 정치테러를 일으켰다. 1971년에는 대통령선거에서 맞붙은 김대중과 박정희가 각기 100만여 명을 모아놓고 유세대결을 펼치기도 했다. 지금은 역사의 굴곡을 뒤로하고 새롭게 조성된 공원이 도심 속 휴식공간이 되어주고 있다.

남산자락에 자리한 장충단공원은 생각보다 괜찮은 공원이다.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져 제법 숲을 이루고, 한켠으로는 개울물도 흐른다. 왼쪽/순종이 황태자 시절 썼다는 비석의 글씨만이 이곳에 장충단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오른쪽/1959년에는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조선시대 청계천의 수위를 재던 수표교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바로 ‘거지왕’ 김춘삼의 영원한 고향, ‘청계천다리’다.
남산자락에 자리한 장충단공원은 생각보다 괜찮은 공원이다. 오래된 나무들이 우거져 제법 숲을 이루고, 한켠으로는 개울물도 흐른다. 왼쪽/순종이 황태자 시절 썼다는 비석의 글씨만이 이곳에 장충단이 있었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오른쪽/1959년에는 청계천 복개공사를 하면서 조선시대 청계천의 수위를 재던 수표교를 이곳으로 옮겨왔다. 바로 ‘거지왕’ 김춘삼의 영원한 고향, ‘청계천다리’다.

“전국에 계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서울 장충체육관입니다.”

40대 이상이라면, 누구인들 이 아나운서 오프닝 멘트를 떠올리며 가슴 울렁이지 않는 이가 있을까. 이곳에서 대한민국 최초의 복싱 세계챔피언이었던 김기수의 타이틀 매치가 열렸고, ‘박치기왕’ 김일이 일본의 안토니오 이노키를 쓰러트렸다. 1980년대에는 천하장사 이만기가 모래판 위에서 포효하던 ‘민속씨름의 성지’이기도 했다. 대학가요제가 이곳에서 열렸고, 마당놀이가 이곳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그늘도 있었다. 유신개헌 이후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세 대통령이 연속적으로 선출된 이른바 '체육관선거'의 현장도 바로 이곳이었다. 장충체육관은 1963년 처음 문을 연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체육관으로,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경기장이자 공연장이었다. 하지만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거치면서 새로운 경기장이 속속 생겨난 뒤로는 옛 영광을 잃고 추억으로만 남았다. 그렇게 잊혀져가는 듯했던 장충체육관은 2012년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 2년 8개월 만에 새 단장을 마치고 2015년 다시 문을 열었다. 이를 두고 누구는 ‘새로워진 추억’이라고 했다.

장충체육관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큰 물체의 부피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장충체육관의 몇 배’라는 관용적 표현이 쓰일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매머드 경기장으로 명성이 드높았다. 하지만 나이 들어 다시 마주하는 체육관은 실망스러울 만치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넓은 줄 알았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몇 십 년 만에 다시 찾아보니 ‘고작 이 정도였나’하던 때처럼.
장충체육관은 19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큰 물체의 부피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장충체육관의 몇 배’라는 관용적 표현이 쓰일 만큼 한국을 대표하는 매머드 경기장으로 명성이 드높았다. 하지만 나이 들어 다시 마주하는 체육관은 실망스러울 만치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넓은 줄 알았던 초등학교 운동장이 몇 십 년 만에 다시 찾아보니 ‘고작 이 정도였나’하던 때처럼.

50여 년 전, 장충체육관이 처음 생기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일대의 선술집들도 덩달아 바빠졌다. 그 중 ‘만정빌딩’이란 건물에 자리한 한 선술집에서 좀 특이한 안주를 내놓았다. 이 집의 주인아주머니는 평안북도 곽산 출신의 실향민으로, 어릴 적 고향에서 젖이 부족한 산모에게 돼지 족을 끓여먹이던 기억을 되살려 속이 든든하면서도 값이 싼 안주로 족발을 개발해낸 것이다. 한 해 터울로 역시 실향민 출신의 아주머니가 바로 옆에서 족발집을 열었고, 이후 족발이 술안주로 큰 인기를 끌자 줄지어 족발집들이 문을 열면서 ‘장충동 족발골목’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저마다 ‘원조’니 ‘시조’니 유서를 내세우고 있지만, 일대의 집들이 모두 수십 년 이상 족발 한 가지를 팔아온 집들이니 굳이 원조를 따질 것 없이 여러 군데 맛을 보고 자기 입맛에 맞는 곳을 찾아가면 그만이다. 개인마다 입맛과 취향이 다르고, 추억마저 다 다르지 않은가. 오히려 나 같은 주당에다 족발애호가로서는 처음 싸게 먹을 수 있는 안주로 제공되었던 족발이 갈수록 비싼 고급안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더 큰 근심거리다.  

같은 돼지고기지만 살코기와는 씹히는 맛이 전혀 다른 것이 족발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새우젓을 살짝 찍어 상추에 싸 먹는 족발 한 점은 애주가들의 구미를 꼼짝없이 사로잡는 안주이며, 사시사철 출출한 저녁이면 생각나는 각별한 먹거리다. 쫀득쫀득 씹히는 족발 특유의 맛은 껍질과 관절 내의 연골을 구성하고 있는 젤라틴 덕분이다.
같은 돼지고기지만 살코기와는 씹히는 맛이 전혀 다른 것이 족발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새우젓을 살짝 찍어 상추에 싸 먹는 족발 한 점은 애주가들의 구미를 꼼짝없이 사로잡는 안주이며, 사시사철 출출한 저녁이면 생각나는 각별한 먹거리다. 쫀득쫀득 씹히는 족발 특유의 맛은 껍질과 관절 내의 연골을 구성하고 있는 젤라틴 덕분이다.

1969년 11월 2일 밤 7시, 장충동의 경동교회에서 특별한 예배가 열렸다. ‘새로운 리듬의 밤’이라 이름 붙은 예배에는 각기 다른 교회의 신자인 500여 명의 젊은이들이 몰려들었고, 조영남, 송창식, 최영희, 윤형주 등 통기타가수들이 나서서 예배를 이끌었다. 먼저 팝송이자 미국 흑인민요인 <목화밭>을 부른 다음, 찬송가인 <샤론들에 핀 백합화> <주여, 기억하소서> 등 10여 곡을 통기타 반주로 불렀고, 청중들은 숨죽이며 듣고 있다가 노래가 끝날 때마다 열광적으로 박수를 보냈다. 이날의 예배는 거센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보수적인 기독교계에서는 ‘사탄의 음악으로 교회당을 나이트클럽으로 만든 처사’라고 강력 비판했다. 이른바 ‘경동교회 통기타예배 사건’이다. 지금이야 교회에서 대중음악 악기인 기타와 드럼, 그리고 건반을 이용하여 CCM을 부르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지만, 당시 보수적이었던 한국교회 풍토에서는 그만큼 충격이 컸던 모양이다. 이날 예배를 주최한 강원룡 목사는 1970년대 반유신,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교회 경건주의의 벽을 허물고 대중문화와 소통하고자 했다. 2006년 세상을 떠난 그의 정신은 경동교회 내 문화공간인 여해관으로 이어져 지금껏 각종 문화예술공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해 강원룡 목사는 경동교회를 창립하고 평생을 헌신하고 명예목사로 종신했다. 세상을 향해 교회 문을 활짝 열었고, 삶의 전 영역에서 복음을 심었다. 광야에서 외치는 예언의 함성이었던 그는 예레미야를 흠모하여 질곡 속의 백성에게 위로와 비전을 선포했다. 앞길을 밝힌 등불이자 희망의 종소리인 그의 설교가 못내 그립다. -동역자 조향록 목사(여해관 기념동판)

경동교회는 1981년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에 의해 수도원 형식으로 건축되었다. 경동교회 건물은 겉으로는 굉장히 과묵하고 약간 돌아선 듯 배타적인 모습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시를 향해서 굉장히 따뜻한 공간을 배려하고, 또 혼란스러운 도시풍경에서 다분히 정제된 건축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교회건축이 가지는 상징성은 그 자체로서 신도, 비신도를 가리지 않는다.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마음의 근원을 기억하게 해주는 형태 자체에 독자성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김수근 <하늘로 열리다>).”
경동교회는 1981년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에 의해 수도원 형식으로 건축되었다. 경동교회 건물은 겉으로는 굉장히 과묵하고 약간 돌아선 듯 배타적인 모습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시를 향해서 굉장히 따뜻한 공간을 배려하고, 또 혼란스러운 도시풍경에서 다분히 정제된 건축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교회건축이 가지는 상징성은 그 자체로서 신도, 비신도를 가리지 않는다. 그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마음의 근원을 기억하게 해주는 형태 자체에 독자성이 부여될 필요가 있다(김수근 <하늘로 열리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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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숙 2019-11-18 08:44:58
로드서울에는 유래가 있고 역사가 있다. 나는 그냥 다녔던 추억의 장소며 길이었는데 우리가 기억해야할 이야기들이 있었다. 60년대 초등학교 시절 장충단공원의 유래도 모른채 여름방학만 되면 장충단공원 수영장에서 더운 여름을 보냈고, 이모가 미스코리아 출전을 하게되어 운동경기만 할거 같은 장충체육관 관람석에서 그 선발전을 본 적도 있다. 10년뒤 70년대말쯤 배구가 한창 인기 있을때 한때는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여 체육관을 다녔고, 기독교 신자였던 친구가 동국대에 입학하며 무척 힘들어 하여 위로를 한답시고 만나 장충동 족발을 뜯은후 남산을 걸어본적도 있었다. 불과 며칠전에도 장충동에서 시작하는 남산둘레길을 걸었다. 돌아보니 장충단은 세월이 흘러도 다시 걷게 되는 몇안되는 곳중 하나이다

심강지서(위영) 2019-11-17 08:47:21
나는 한국의 기존 기독교에 비판적이다. 언제가 장문의 글을 쓰려고 준비중이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기득교(예수의 가르침)의 본질을 너무 왜곡하고 있다.
하기야 기독교(바울 교라고 본다) 자체가 예수 가르침을 너무나 동떨어지게 왜곡해 온 것이 기독교의 역사이다.

안병무 목사는 민중신학을 한국에 도입했다. 교회에서 피아노 대신에 장구와 북으로 예베를 드렸다. 기존 교회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으신 분들이다.

안병무 교수는 부모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나도 이 이론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부모제사가 우상숭배라는 기독교인과는 몇 시간이고 평행선을 걷게지만 논쟁할 수 있다.

심강지서(위영) 2019-11-17 08:22:47
삼각지역에 가도실내에 배호의 작은 기념관이 있다. 어려서 초등학교 때 스피커를 통해 배호의 노래를 들었다. 삼촌들과 고모들이 무척 좋아하셨다. 아련한 추억이다.
장충단에 가면 유림의 파리장서 사건 기념비가 있다. 둘러볼 가치가 있는 비이다. 조선 500년간 지배한 주자학의 틀을 깨고 혁신 유림이 자유세계를 향한 외침이다.

1971년 중학교 때 신문을 통해 박정의 대 김대중 연설을 보았다. 장춘당 공원에 100만명이 모였다는 것은 과장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원에 100만명이 들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장충단 공원도 중학교때는 신비의 장소였다. 커서 가보니 초라하다. 유작가 말대로 초등 운동장이 손바닥만하게 느끼는 감정이다. 장충단 족발은 1년에 1번은 간다. 강원룡 목사는 존경스럽다. 종교를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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