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정수빈이 새앨범을 내고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뉴트로트 바람 대열에 합류했다. 데뷔 10년 차의 트로트 가수로 ‘어머니의 굳은살’과 ‘늦기 전에’등 히트곡을 발표한 바 있는 그녀는 올해 가을에 ‘꽃비’와 ‘고장난 사랑’등을 타이틀곡으로 한 4집 앨범을 내놨다.  
 
‘꽃비’(김연경 작사, 한승훈 작곡)는 님을 향한 애절한 마음을 담은 국악발라드곡으로 조만간 사극 주제가로도 삽입될 예정이다. ‘고장난 사랑’(손화자 작사, 김인철 작곡)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빠른 템포의 트로트곡이다.    
 
‘어느 별에서 오셨는가/ 이름 없는 사람아/ 차 한 잔 하자하면 술 한 잔 하자하고/ 가라하면 다가오고 미움인지 사랑인지/ 모르는 사람, 그 사랑은 고장난 사랑.’
 
노랫말에서 알 수 있듯이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일회성 사랑이 판치는 세상을 풍자하면서도 사랑에 대한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을 표현한 노래다. 슬로우 템포의 ‘꽃비’는 애절한 민요를 연상케 하는 창법으로 듣는 이의 가슴을 뒤흔든다. 
 
누구보다도 구김살 없는 얼굴과 밝은 성격을 가진 정수빈이지만 그동안 유방암 선고를 받고 항암제 주사 치료와 수술 등을 거치면서 생과 사를 넘나드는 시련을 겪었다. 2017년 건강검진을 받다가 유방암 3기 진단을 받게 된 정수빈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노래를 향한 열정을 불태워 보지도 못한 채 가수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다.

유방암 3기 선고 받고 고통스런 항암치료

5개월에 걸쳐 3주마다 한 번씩 항암제를 투여받고, 마침내 암세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게 됐다. 항암주사를 맞는 동안 서서히 탈모가 진행됐으며, 날씬하던 몸매는 늘어만 가는 체중으로 망가졌다. 외모가 생명인 가수로서 치명적이었다. 괴물처럼 변해가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몇 번씩이나 세상을 포기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극심한 구토로 먹지도 못하는데 얼굴과 손발은 부어올랐다. 다 빠진 머리 때문에 한여름에도 가발과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예전에 입던 옷들은 한 벌도 맞지 않았다.   
 
죽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를 일으켜 세운 건 창(唱)을 가르쳐주신 선생님들의 격려와 질책이었다.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이수자인 정수빈은 창을 가르쳐주신 선생님들로부터 귀가 따갑게 노래는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라고 배웠다. 그 때문에 민요를 부를 때나 트로트를 부를 때면 늘 평생 해야할 일이라고 여겨왔다. 투병 중에도 노래만 부르면  힘이 났다. 그럴 때마다 빨리 병을 털고 일어나 노래하리라 다짐하곤 했다. 
 
마침내 발병한 지 1년여 만에 정수빈은 의사로부터 유방암이 완치됐다는 판정을 받았다. 꾸준하게 건강관리를 한 결과 다시 머리도 자라났고, 외모도 예전의 그녀로 돌아왔다. 의사는 본인의 의지가 대단해서 예상보다 빨리 회복됐다면서 칭찬했다. 이번 앨범은 ‘죽다 살아와서 만든 앨범’인 셈이다. 스스로도 예전에 만들던 앨범보다 훨씬 더 공을 들여서 신명을 다해 불렀다.  

송가인 덕분에 유튜브서 인기 스타 
 
요즘 정수빈은 유튜브에서 때아닌 인기를 얻고 있다. 트로트계 신 3인방이 부른 우리 민요 ‘뽕 따러 가세’의 뮤직비디오가 인기를 얻으면서 많은 팬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트로트계의 별로 떠오른 송가인과 정수빈, 유지나 등 젊고 힘이 넘치는 여가수들이 부른 ‘뽕 따러 가세’는 세 여가수가 뿜어내는 개성 때문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송가인의 인기에 힘입은 바 크지만 정수빈이 누구인지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정수빈의 후배인 송가인은 남도창을 전공하여 남성적이고, 굵은 창법을 구사한다. 그에 비해 경기창을 전공한 정수빈은 여성스러우면서 굴림소리가 있는 창법으로 노래를 소화한다. 송가인과 정수빈이 대칭을 이루고 그 사이에 유지나가 있는 셈이다. 정수빈은 트로트의 새바람을 불러온 후배 송가인이 너무 고맙다.
 
그녀가 1년 여의 투병생활 끝에 배운 것은 매일매일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모든 가수가 그러하듯이 정상에 올라가 별을 따고 싶은 꿈이 있지만 그 일이 억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많이 비우고 많이 내려놨기에 어떤 무대가 주어줘도 기쁘고 행복하다. 단 한 명의 관객이 눈 앞에 있어도 기꺼이 즐겁게 노래할 준비가 돼 있다는 가수 정수빈. 그녀는 “늘 즐겁게 욕심 버리고 배풀면서 살겠다”면서 “다시 태어나서 부른 새노래를 사랑해 달라”고 말했다.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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