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ㆍ칼럼니스트
시인ㆍ칼럼니스트

지난 주말, 문학회 동인들과 박경리 문학공원을 찾았다. 서울을 벗어나 원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는 차갑게 느껴지는 초겨울비가 가늘게 흩뿌리고 있었다. 숨 막힐 듯 이어지는 도시의 팍팍한 삶에서 벗어난, 필자로서는 오랜만에 누려보는 참으로 소중한 여행이었다. 전국 각지에 문학관이 여럿 건립되어 있지만 직장생활에 얽매어 산다는 핑계로 계속 미루어 왔던 터라 들뜬 기분을 쉽게 가눌 수 없었다.
 
박경리 문학공원은 선생의 옛집과 뜰, 집필실을 원형대로 보존하고 있고 주변엔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3개의 테마공원(평사리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으로 꾸며져 있었다. 선생은 이 옛집에서 18년간 머물며 『토지』의 4부와 5부를 완성했는데 입구에는 손주들을 위해 손수 만든 연못, 마당 한 쪽에는 손수 가꾸던 텃밭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마치 토지의 주인공들처럼 각고의 인내, 용기와 집념의 역정을 살아온 선생은, 1980년 서울을 떠나 이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텃밭을 가꾸며 틈틈이 집필에 몰두, 1994년 8월 15일에 결국 『토지』의 대장정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토지』는 갑오년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등이 지나간 1897년 한가위부터 광복의 기쁨을 맛본 1945년 8월 15일까지의 한국 근·현대사와 광활한 국내외적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무려 26년간에 걸친 집필 기간, 원고지만 3만 매가 넘는 분량인 역작인 동시에 역사와 운명의 대서사시로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현대 한국문단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동행한 문인들이 문학공원 주변을 거닐며 박경리 선생에 관한 일화를 하나씩 꺼내고, 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엔 결국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노벨문학상이 거론되었다. 노벨상의 꽃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아직 한국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현실을 늘 안타깝게 여겨오던 문인들이 급기야 울분(?)을 터뜨리고야 만 것이다. 몇 해 전 유력한 수상 후보자로 고은 시인이 거론되긴 했지만 국민들의 애만 태운 채 무산되고 말았으니 그 안타까움은 문인들에게는 몇 배나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노벨상 수상국에 이름은 올렸지만, 그 이전까지 오랜 동안 한국이 노벨상 여러 분야 중에서 가장 수상이 유망한 분야는 문학상이란 평가를 국내외 문학인들에게서 줄곧 받아 왔다. 그것은 주변 강국들의 숱한 침략 속에서도 면면히 민족의 주체성을 유지해 온 한국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동족상잔의 참상 그리고 이산가족의 비극은 그야말로 문학적 형상화에 더할 나위 없는 값진 소재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를 놓고 문학계에서는 한국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기 위해서는 한국문학을 해외에 더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꾸준히 펴온 바 있다. 작품성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인지도가 떨어지면 수상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 작품을 주요 언어로 번역하고 해외에서 출판하는 데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도 꼬리를 물었다. 따라서 한국적 경험과 정신세계를 대표할 만한 한국문학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영어, 프랑스어 등 노벨상 심사대상 언어로 번역하는 데 주력해야 할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이제 세계 문학계는 더 많은 한국작가들의 작품을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해 소개하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주목받는 작가의 작품 하나로는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없으니 여러 작품을 꾸준히 외국에 소개하라는 주문을 하기도 한다.
 
정부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과 모 기업에서 출연한 대산문화재단의 지원 덕택에 이제는 많은 한국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되고 있으며, 번역의 질적 수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참혹한 민족상잔의 아픔을 딛고, 세계 최빈국에서 10대 교역국이라는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선 것도 자랑할 일이다. 하지만 이웃 나라 일본은 이미 두 차례나 수상한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우리도 누릴 수 있는 날이 앞당겨 지길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소망해 본다.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