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에 오라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에 오라
  • 유성문(먼빛)
  • 승인 2019.12.06 09: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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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과 청담동

파주에서 서쪽으로 시오리 임진강가에 반구정(伴鷗亭)이라는 작은 정자가 있습니다. 세종조의 명상(名相)이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 황희 정승의 정자입니다. 18년간의 영상직을 치사(致仕)하고 90세의 천수를 다할 때까지 이름 그대로 갈매기를 벗하며 그의 노년을 보낸 곳입니다. 당신은 아마 똑같은 이름의 정자를 기억할 것입니다. 서울 강남의 압구정(狎鷗亭)이 그것입니다. 압구정은 세조의 모신(謀臣)이던 한명회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정자입니다. 반구정의 ‘반(伴)’과 압구정의 ‘압(狎)’은 글자는 비록 다르지만 둘 다 ‘벗한다’는 뜻입니다. 이 두 정자는 다같이 노재상이 퇴은하여 한가로이 갈매기를 벗하며 여생을 보내던 정자입니다만 남아있는 지금의 모습은 참으로 판이합니다. 반구정이 지금도 갈매기를 벗하며 철새들을 맞이하고 있음에 반하여, 압구정은 이미 그 자취마저 없어지고 현대아파트 72동 옆의 작은 표석으로 그 유허임을 가리키고 있을 따름입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두뭇개에서 강 건너편에 그리 큰 동산은 아니지만 강가쪽으로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를 이룬 언덕이 있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말하자면 동호(東湖) 가에 있는 명소의 한 곳이었다. 한강물이 발 아래로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 북쪽으로 도성의 여러 산과 저 멀리 북한산 연봉과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이 바라보이고, 동남서쪽으로 강 건너 살곶이벌과 그 뒤의 아차산, 남한산, 청계산, 관악산 등이 두루 바라다 보이는 뛰어난 터전이었다. -김영상 <서울 600년> 중에서

압구정은 이미 사라졌다. 따라서 압구정에 노닐던 갈매기들도 자취가 없다. 다만, 동명(洞名)으로 남았고, 이제 갈매기를 대체하는 것은 ‘오렌지’거나 하다못해 ‘낑깡’일 뿐이다. 겸제 정선의 산수화에 남겨진 압구정은 흔적도 없건만, 그 수려하던 풍경은 또 다른 수묵으로 번져간다. 가뭇없는.

자, 오관으로 느껴보라, 안락하게 푹 절여진 만화방창 각종 쾌락의 묘지, 체제의 꽁치통조림 공장, 그 거대한 피스톤이, 톱니바퀴가 검은 기름의 몸체를 번득이며 손짓하는 현장을
 왕성하게 숨막히게 숨가쁘게
 그러나 갈수록 쎅시하게
 바람이 분다 이곳에 오라
 바람이 분다 이곳에 오라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이곳에 오라
 -​유하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2> 중에서 

왼쪽/한 시절 권세의 상징이던 정자는 허물어지고, 그 자취는 아파트 그늘에 ‘의문의’ 유적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본질마저 다 사라졌다 할 것인가. 오른쪽/압구정 현대백화점의 시계판은 톱니바퀴를 드러낸다. 그 바늘은 9시 55분을 넘기고 있다. 자정이 되려면 아직 2시간 몇 분이 남았다. 저물 무렵이면 별걸 다 헤아리게 된다.
왼쪽/한 시절 권세의 상징이던 정자는 허물어지고, 그 자취는 아파트 그늘에 ‘의문의’ 유적으로 남았다. 하지만 그 본질마저 다 사라졌다 할 것인가. 오른쪽/압구정 현대백화점의 시계판은 톱니바퀴를 드러낸다. 그 바늘은 9시 55분을 넘기고 있다. 자정이 되려면 아직 2시간 몇 분이 남았다. 저물 무렵이면 별걸 다 헤아리게 된다.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로 영화감독으로까지 데뷔한 시인 유하는 2014년 <강남 1970>을 연출한다. 호적도 제대로 없는 고아로, 넝마주이 생활을 하며 친형제처럼 살던 종대(이민호 분)와 용기(김래원 분)는 우연히 1970년대 강남개발의 한복판으로 들어서며 미친 세상을 향해 질주한다.

 “땅 종대, 돈 용기! 끝까지 한번 가보자!”  

‘영등포의 동쪽’이래서 ‘영동’으로 불렸던 강남 일대는 1970년대 들어 대대적인 개발이 시작된다. 한강변을 따라 아파트가 줄지어 들어섰으며, 영동지구 주택건립계획의 발표로 압구정동과 청담동 등지에 단독주택단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78년 완공된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당시 최고급 대단지 아파트로, 권력층 특혜분양과 천문학적 프리미엄으로 인해 한순간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압구정동과 청담동 주변이 ‘고급’ 주거지로 자리매김하면서 자연스레 ‘고급’ 소비수요도 증가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1980년대 중반 현대백화점이, 1990년대에는 갤러리아백화점이 개점한다. 이로 인해 압구정동과 청담동 일대가 ‘고급’ 쇼핑문화의 중심지로 급부상하게 된다. 

1995년 개관한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은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가장 대표적인 공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들을 한자리에서 비교 구입할 수 있다. 프라다, 루이비통, 아르마니, 페라가모, 구찌, 베르사체 등 최고급 브랜드 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1995년 개관한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은 압구정 로데오거리의 가장 대표적인 공간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품들을 한자리에서 비교 구입할 수 있다. 프라다, 루이비통, 아르마니, 페라가모, 구찌, 베르사체 등 최고급 브랜드 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압구정 로데오거리는 한국의 ‘유행1번지’란 말로 대표된다. 과거 비벌리힐스의 로데오거리를 표방하면서 부유층 자녀들이 외제차에 고급브랜드 옷을 입고 활보했던 곳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다양한 젊음의 문화를 대변하는 곳으로, 첨단 유행을 대표하는 곳으로 발전했다. 골목마다 명품브랜드상점, 구두가게, 속옷가게, 액세서리가게 등 패션관련 매장이 들어서 있으며, 피부과, 성형외과, 헤어숍들도 성업 중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패션에 관한 모든 것이 한곳에 모여 있는 셈이다. 로데오거리는 2000년대 말부터 젠트리피케이션이 본격화되면서 서서히 쇠락길에 들어섰지만, 최근 들어 일대 상권에 변화의 조짐도 보이고 있다. ‘안다즈 서울 강남’ 호텔이 압구정역 인근에 들어서고, 이와 함께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다양한 브랜드의 상점들도 새롭게 선을 보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로데오거리의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의외로 소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여느 유명 거리와 다를 바 없는 요식업소며,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비교적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보세옷가게나 액세서리상점들도 많다.
로데오거리의 골목 안쪽으로 들어서면 의외로 소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여느 유명 거리와 다를 바 없는 요식업소며, 독특한 디자인의 제품들을 비교적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보세옷가게나 액세서리상점들도 많다.

청담동 명품거리는 압구정 로데오거리와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패션과 문화의 거리이다. 갤러리아백화점을 기점으로 청담사거리까지 대로변에 형성되어 있으며, 40여 개의 플래그십 스토어(특정 상표의 홍보효과도 겨냥한 상품매장)와 편집매장(신발, 의상, 액세서리 등 다양한 패션아이템을 한곳에 모아놓은 상품매장)이 밀집되어 있다. 1994년 조르지오 아르마니 매장을 시작으로 삼성로 대로변에 잇달아 들어선 명품숍들은 눈에 띄는 독특한 형태의 외관을 갖고 있어 청담동의 주요 경관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다. 비싼 임대료와 소비침체로 공실이 늘었던 청담동 명품거리 역시 최근 활기를 되찾고 있다. 올해 2월 프랑스 브랜드 끌로에가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 데 이어, 3월에는 샤넬이 국내 최초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선보였다. 루이비통 플래그십 스토어도 리뉴얼을 거쳐 새롭게 문을 열었다. 

청담동 명품관들은 판매목적의 공간이기보다 홍보목적의 플래그십스토어(Flagship Store)에 더 가깝다. 즉, 하나의 건물을 하나의 상호가 사용함으로써 특정 브랜드의 개성과 가치를 공간형태로 옥외 광고하고, 브랜드의 특성을 미학적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청담동 명품관들은 판매목적의 공간이기보다 홍보목적의 플래그십스토어(Flagship Store)에 더 가깝다. 즉, 하나의 건물을 하나의 상호가 사용함으로써 특정 브랜드의 개성과 가치를 공간형태로 옥외 광고하고, 브랜드의 특성을 미학적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다.

물건에도 격이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최고급 물건들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렵게 알아가는 내밀한 즐거움을 모른다. 격이 있는 물건에 도달하기까지 겪는 수많은 일들, 그것이 내 삶의 내용이고 역사가 된다. -윤광준 <생활명품산책> 중에서

-샛길로 : 신사동 가로수길

압구정 로데오거리나 청담동 명품거리에 비해서 신사동 가로수길은 훨씬 인간적(?)이다. 그 태생부터가 그렇다. ‘가로수길’이란 명칭은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를 통해서 얻게 되었다. 이들 은행나무는 1980년대 중반 새마을 지도자들이 자발적으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신사동은 1970년대 건설사들이 강남구를 고층아파트 단지로 개발하는 동안 공간적 지체를 겪었다. 강남개발은 1965년 제3한강대교(현 한남대교)의 착공과 경부고속도로 계획의 발표가 맞물리면서 빠른 속도로 진척되었다. 초기에는 압구정을 포함하여 단독주택 중심의 도시개발계획이었지만, 강남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아파트지구를 신설하고 반포지구·압구정지구·청담지구·도곡지구 등 4개 지구를 포함한 11개 지구를 지정하였다. 이후에 압구정로 가로를 중심으로 상가가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과정은 신사동 가로수길이 형성하게 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갤러리는 신사동 가로수길 형성과정에서 문화적 이미지와 활성화에 촉매 역할을 했다. 1982년 인사동에 있던 예화랑이 신사동에 이전해 오면서 강남지역 최초의 상업화랑이 되었다. 이어 박려숙화랑이 개관하는 등 화랑들이 하나둘 강남지역으로 모여들었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강남개발이 1980년대 서서히 마무리되어 가면서 서울의 화랑가도 일대 변화가 찾아왔다. 미술품의 향유세력이던 부유층이 강남지역으로 대거 이동함에 따라, 인사동지역의 여러 화랑들이 강남으로 터를 옮겼기 때문이다. 당시 신사동 가로수길은 조용하고 쾌적한 이미지와 비교적 저렴한 임대료로 많은 작가들이 화실을 열게 되었고, 이들 화실은 미술교육의 공간 역할을 했기 때문에 학생을 비롯한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졌다. 이에 따라 속속 갤러리가 문을 열면서 신사동 가로수길이 문화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예술가의 거리’라 불리는 신사동 가로수길 주위로는 아기자기한 커피숍과 맛집, 디자이너들의 옷 매장들이 즐비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러한 가로수길만의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평일에도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가을에는 낙엽 지는 거리를 보러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며, 젊은이들의 입소문으로 유명세를 탄 이후 많은 영화의 배경지로 나오기도 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압구정 로데오거리, 청담동 명품거리처럼 문화와 쇼핑이 어우러져 지역의 장소성을 형성해 가며 활성화되고 있는 거리라 할 수 있다. 특히 가로수길은 계획 가로에 의한 인위적인 물리적 공간 조성이 아닌 갤러리와 패션, 디자인 관련 시설에 의해 자생적으로 성장해온 상업가로로서, 이러한 특징은 지금도 가로수길만의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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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지서(위영) 2019-12-08 22:44:58
압구정동과 신사동은 구정고등학교 앞 사거리에서 갈린다. 서울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한 곳이 신사동이다.그러나 생활권은 압구정이라 30대 초반 몇 년을 두 동네에서 살았다.

압구정 현대아퍼트나 서초동 삼풍아파트가 최고가를 날리던 시절이 1990년대 초이다. 그 당시 두 아파틀 분양받아 입주한 세대들이 지금은 70~80대가 되고 보니 두 동네도 덩달아 노년층이 많은 동네가 된 것같다.

한국을 대표하던 두 아파트가 재건축을 하면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을 해 보곤한다. 잠실이나 잠원동 15평 연탄때던 서민 아파트가 지금은 30~40층으로 재건축되는 것을 보면 도시도 생명체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압구정과 신사가 1990년대초 누렸던 화령한 명성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유 작가 때문에 과거를 회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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