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고유어식 표현이 언제나 좋은 건 아니다. 더 큰 가치는 정보의 정확성/명료성이다. ‘두어’는 얼마를 말하는가? 적지 않은 국민들이 2~3으로 알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그러나 두어는 ‘그 수량이 둘 쯤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곧, 약 2, 2 남짓, 2 정도다. 3에는 못 미친다. 그러니 헛갈림을 유도하는 게 목적이 아닌 바에야 ‘약 2주 안에’가 훨씬 낫다.

달포도 섞갈려 하는 것 같다. 달포를 한 달 보름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있다. 곧 45일 정도. 어떤 부류는 보름과 혼동해 15일, 즉 한 달의 반쯤으로 여기기도.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이 달포다. 그러니까 31~35일 어름이다.

워싱턴 조야?

이 말뜻을 정확히 알고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조야朝野는 어렵고 모호하며 무엇보다 봉건적이다. 조선시대 조정에서 신하들이 노론/소론, 시파/벽파 갈려 '마마' '통촉' '성은' 하는 장면이 어른댄다.

봉건왕조에서 ‘조정과 민간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 조야朝野다. 이는, 곧 온 백성/국민을 일컫는다. 그러니 정치 기사에서 여태 자주 쓰는 조야와는 거리가 있다. 더구나 외신外信과 조야는 결이 당최 안 맞는 것이다.

워싱턴 조야? ‘워싱턴 정계/정가’ ‘워싱턴의 주된 여론’ 정도가 적절해 보인다.

신문 속 문장

“그 모든 감정의 극한을 문학 속에서 올올이 경험한다면, 우리는 실제 삶 속에서 더 아름다운 사랑을, 더 눈부신 열정을, 더 뜨거운 고통을 견뎌낼 힘을 얻을 수 있기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글 말미다. 이분도 때로 이런 실수를 하는구나. 아마도 마감에 쫓겼으리라. 그런데 우리도 보통 이런 잘못을 하곤 한다. 꾸미는 말만 신경 쓰다가, 정작 꾸밈을 받는 말은 한몫에 몰아버리는 우愚 말이다.

뒤의 ‘견디다’는 '사랑'과 '열정'까지 견뎌낼(?) 순 없다. ‘고통’만 받아들인다. 그러니 사랑과 열정은 따로 꾸밈 받는 말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실제 삶에서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나누고), 더 눈부신 열정을 쏟으며(품으며), 더 뜨거운 고통을 견뎌낼 힘을 얻을 수 있기에.”

‘NO재팬’ 현수막

현수막懸垂幕이 아주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현懸은 구체적으로 세로로 늘어진 형태라야 한다. 좌우로 걸거나 매다는 것은 늘어짐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다. 그래서 보다 정확히는 펼침막이다. 이것이 좌우로 거는 플래카드의 우리말에 해당된다. 국민 공모에 의해 생겨난 말로 알고 있다.

함바식당에서의 함바는 はんば[飯場]라는 일본말에서 온 것이다. 건설/토목 공사나 광산 등의 현장에 있는 노무자 합숙소를 [한바]라 불렀는데 이것이 [함바]로 변한 형태. 순화어는 ‘현장 식당’이지만 잘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내 생각엔 그저 단출하게 ‘식당’, 혹은 ’급식소‘가 어떨까 한다.

‘현해탄’은 일본말

<현해탄은 알고 있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다. 한국 남자와 일본여자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원래는 KBS의 라디오 드라마였다. 이렇게 이미 굳어진 제목 같은 것은 예외다.

그러나 현해탄玄海灘은 이젠 쓰지 말아야 할 단어다. 우리말로는 ‘대한해협’, 일본 쪽으론 ‘쓰시마해협’이다. 일본에서 쓰시마해협은 동수도東水道와 서수도西水道로 나뉘는데 바로 일본쪽에 붙은 동수도, 그 중에서도 일본 본토와 가까운 바다를 가리켜 겐카이나다げんかいなだ[玄海灘/玄界灘]라고 한다. 그러니 현해탄은 우리식 한자음에 불과한 것이다.

탄灘은 여울을 말하며, 대개 수심 50-60m로 바닥이 얕고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일컫는다.

아울러 Japan의 외래어 표기는 ‘저팬’이 아니라 ‘재팬’이다. 영어 표기는 [dƷəpǽn]으로 저팬이 가까우나, 토마토/라디오/바나나처럼 이미 굳어진 관용 표기에 속한다.

KBS 강성곤 아나운서는 1985년 KBS입사,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위원, 미디어언어연구소 전문위원,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건국대, 숙명여대, 중앙대, 한양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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