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착기? 굴삭기?
굴착기? 굴삭기?
  • 강성곤
  • 승인 2019.12.27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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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강성곤 현 KBS아나운서실 방송위원 겸 방송통신심의원회 방송언어특별위원회 위원.

결론부터 말하면 굴착기掘鑿機가 바르다. 이 중기계重機械는 어디까지나 착鑿, 뚫고 파는 것이 본래 목적이다. 그러므로 굴착기다. 삭削은 ‘깎다’의 의미다. 이 기계의 본기능이라 할 수 없다. 그런데 중기법重機法 등 관련 법규는 굴삭기로 되어 있으며 현장 근무자들도 굴삭기를 여전히 많이 쓴다.

왜? 일본말에서 유래됐고, 일본 법률을 따왔기 때문이다. 일본 어문 법령에는 상용한자常用漢字라는 게 있다. 말 그대로 일상에서 주로 쓰는 한자로 1945개를 추렸다. 착鑿이 복잡하니 당연히 그 범주에 없었고, 대신 音이 [さく사쿠]로 같고 의미도 얼추 가까운 삭削을 거기다 넣은 것이다. 그래서 굴삭기가 탄생했고, 그걸 부끄럽게도 우리가 따라한 결과다.

굴삭기, 이제는 버려야 한다. 참고로 해당 영어 포클레인poclain은 원래 제품명이었으나 이제 보통명사가 되었다. 그보다 이제야말로 굴착기로 바로 세워야 한다.

알고리즘? 알고리듬? 알고리슴?

**알고리즘, 맞는다. 그러나 알고리듬도 맞는다. algorism/algorithm, 복수 표기가 가능해서다. 단, 알고리슴은 틀린다. ‘th’가 여기선 [θ]가 아니라 [ð]가 때문.

내친김에 orgasme은 오르가즘이 아니고 오르가슴이다. orgasme이 원래 프랑스어이기 때문에 프랑스어 표기법이 우선한다. 영어로는 orgasm/orgasme, 두 표기가 가능하지만 발음은 [ˈɔː(r)ɡæzəm]으로 오르개즘으로 소리난다. 그러나 오르개즘/오르가즘은 표준 표기가 아니다. 외려 기억하기 쉽지 않나? 가슴이 개즘/가즘보다 한국인에겐 여러모로 익숙하니까.

책 속에서 내겐 생각 속에만 머물던 것이 누군가에 의해 정돈된 주장과 이론으로 말끔히 돼있음을 발견하게 될 때, 한펀으론 허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뿌듯해진 경험 있으리라.

인성구기因聲求氣, 즉 “소리로 인해 기운을 구한다./소리를 타야 기운이 찾아진다.” 무릎을 쳤다!

책은 성독聲讀, 즉 소리 내어 읽어야 여러 효과가 난다는 말이다. 학창 시절, 어학 과목은 무조건 외우라는 선생님들의 주문은 당시로서도 다분히 억압적이고 수긍하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청나라 문호 요내姚鼐(1731-1815)는 진즉, 소리가 의미에 선행하며 소리를 고르게 내어 반복적으로 책을 읽으면 그 뜻이 어느 새 자기 안에 맺힌다는 이론을 설파한 것이다.

신속/편의/재미만을 좇는 터치와 클릭의 시대. 앞 사람, 옆 사람하고도 그저 문자만으로 소통하고 도무지 말을 안 하는 세상이다. 말하기가 자꾸 싫어지는 것은 그 내용의 적절성/부실함을 걱정하는 이유도 있겠으나, 입술/혀/주변 근육을 놀리고 부리는 행위 자체가 낯설고 귀찮은 탓이 더 크다는 생각이다.

텍스트를 작게라도 소리내어 읽어 보자. 자기만의 리듬이 생긴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움이리라. 읽다보면 그 다음엔 말하고 싶어진다. 저절로 표현력이 강화된다. 소리의 신통한 힘이요 기운이다.

KBS 강성곤 아나운서는 1985년 KBS입사, 정부언론외래어공동심의위위원, 미디어언어연구소 전문위원, 국립국어원 국어문화학교 강사를 역임했으며 건국대, 숙명여대, 중앙대, 한양대 겸임교수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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