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매각 계약 마무리

아시아나항공이 창립 31년 만에 금호를 떠나 범현대가(家)의 품에 안긴다.

2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현산 컨소시엄)은 이날 금호산업이 보유한 아시아나항공 구주 6868만8063주(지분율 30.77%)를 3228억원(주당 4700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2조1772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한다.

현산 컨소시엄과 금호산업은 각각 이날 오전 이사회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의결하고 아시아나항공 매각 관련 계약을 마무리했다.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HDC는 61.5%, 미래에셋은 14.99% 가량을 각각 보유하게 된다. 미래에셋은 4900억원을 투입했다.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되면서 1988년 2월 창립돼 대한항공과 함께 국내 양대 항공사로 자리매김해온 아시아나항공은 창립 31주년인 올해 '주인 교체'라는 전환기를 맞이하게 됐다.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체제를 졸업한 지 5년 만이다.

아시아나항공이 주축이었던 금호그룹은 박삼구 전 회장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이 글로벌 금융위기와 겹치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2009년 12월 산업은행 등 채권단과 구조조정 방식의 일종인 자율협약 절차를 밟았다. 그룹 차원의 경영 정상화 노력으로 아시아나항공은 2014년 자율협약을 졸업했지만, 차입금 규모가 크고 부채비율이 높아 시장에서는 여전히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아시아나항공이 매물로 나오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올해 3월 감사를 맡은 삼일회계법인이 재무제표 등을 신뢰할 수 없다며 ‘한정’ 의견을 내면서다. 그리고 회계법인이 한정 의견을 내는 데에는 2018년 말 현재 아시아나항공 한 회사에서만 6조1700억원에 달했던 부채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3월22일 아시아나항공이 제출기한을 하루 넘겨 공시한 감사보고서가 감사의견 '한정'을 받으며 시장의 우려를 키웠고 결국 박 전 회장은 같은달 28일 그룹 내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4월23일 아시아나항공의 정상화를 위해 모두 1조73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금호산업은 7월25일 아시아나항공 매각 공고를 내고 지난달 12일 매입가로 2조5000억원을 적어낸 현산 컨소시엄을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한달 넘게 구주 가격과 우발채무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한도를 놓고 협상을 벌여온 금호산업과 현산 컨소시엄은 구주 매입가 3천228억원과 '통합' 손해배상한도 9.9%에 각각 합의하고 이날 주식매매계약(SPA) 체결까지 마치며 마침내 아시아나항공 매각 협상도 마무리됐다.

HDC현대산업개발은 인수금액 2조5000억원 중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할 약 2조원을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개선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실탄’ 투입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자본은 올해 3분기 말 기준 1조1000억원에서 3조원 이상으로 늘어나고 현재 660%에 달하는 부채비율도 300%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HDC는 인수 자금 가운데 3000억원은 아시아나항공 자산을 기초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할 계획이다. EB는 발행 기업이 자기 회사가 아닌 다른 기업 주식과 채권을 나중에 바꿔주겠다는 조건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것이다. HDC가 인수 과정에서 확보한 아시아나항공 주식과 자산을 이용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얘기다. 이 밖에도 HDC는 4000억원 가량은 아시아나항공 지분을 다른 회사에 매각해 조달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현대백화점, 현대오일뱅크 등 범(汎)현대가 기업들을 대상으로 지분 투자를 받는 대신 항공유·면세점·기내식 등의 사업권을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도한 재무적 부담과 경영 정상화 지연에 따른 지속적인 자금 투입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HDC그룹이 과연 성공적인 인수가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HDC로 ‘주인’이 바뀌고, 2조원인 넘는 자본금을 수혈 받게 됐지만 경영 정상화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다는 게 항공업계의 중론이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의 100% 자회사인 에어서울과 달리 지분 44%를 보유한 에어부산은 분리매각 가능성이 남아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노선 경쟁력과 비용 효율성 등을 높여 수익성을 개선하는 작업도 게속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은 인천~리스본, 인천~카이로, 인천~멜버른 등 직항 부정기 항공편을 띄우면서 장거리 노선 강화에 나섰다. 다만 내년 3월부터 45일간 샌프란시스코 노선 운항을 정지해야하는 점은 리스크다. 회사 측은 해당 노선 45일간 운항정지로 매출 110억원 감소를 예상하고 있다 노후 항공기 교체도 숙제다. 아시아나항공의 추가 구조조정 가능성도 있다. 이미 아시아나항공은 매각을 앞두고 비용절감을 위해 지난 5월에 이어 이달 20일에도 15년 이상 근속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아 인력조정에 나섰다. 내년 1월12일까지 소속 부서장의 결재 없이 인사팀에 바로 신청하면 인사팀의 심의를 거쳐 희망퇴직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아시아나그룹 고유의 빨간색 ‘날개’ 모양의 CI(기업이미지)도 교체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아시아나그룹 통합 CI 소유권을 가진 최대 주주인 금호산업과 상표권 계약이 내년 4월30일에 만료된다.

무엇보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강한 의지를 보인 정몽규 현산그룹 회장의 행보가 주목된다. 정몽규 회장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이다. 현대차그룹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그룹·현대백화점그룹 등 현대가의 폭넓은 지원을 통해서 아시아나항공이 도약할 수 있을지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로 현대백화점·현대오일뱅크·KCC 등이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한편 금호아시아나그룹은 그룹의 살림을 책임졌던 아시아나항공을 현대에 넘기면서 사세가 급격히 쪼그라들게 됐다.

한때 재계 7위를 기록했던 그룹의 위상도 아시아나 자회사까지 모두 통매각하고 나면 사실상 금호산업과 금호고속 등 2개 계열사만 남게 돼 재계 60위 밖으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그룹명부터 바꿔야 할 처지다. 또 아시아나항공의 매각 대금도 당초 주장했던 4000억원대보다 적은 3200억원에 불과해 내년 3월 말 만기가 돌아오는 산업은행 대출 1300억원을 포함해 차입금 상환 등에서 여전히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향후 금호가 어떤 식으로 그룹 재건에 나설지에도 업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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