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공소와 카페 사이
철공소와 카페 사이
  • 유성문(먼빛)
  • 승인 2020.01.10 14: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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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래창작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늪지대였다. 일제강점기 이곳에 방직공장이 들어서면서 ‘사옥동(絲屋洞)’이라 불리었다. 해방 후 마을이름이 ‘문래동(文來洞)’이 된 것도 ‘물레’라는 방적기계의 발음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1960년대 들어 방직공장 노동자들이 살던 영단주택을 중심으로 인구가 늘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크고 작은 기계·금속 공장들이 입주하면서 서울 최대의 소공단지를 형성했다. 바둑판 같이 일정한 간격의 공장골목이 반경 1km 이내로 빽빽이 엉켜있는 곳, 영등포구 문래동이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다. 한동안 철공산업이 전성기를 누렸지만 1990년대 IMF를 기점으로 활기를 잃었던 골목은 2000년대 들어 새 입주민들을 맞이하면서 아연 활기를 되찾고 있다. 

문래창작촌의 역사는 오랜 세월에 걸쳐 오밀조밀 들어선 기계·금속공장 밀집지역에서 시작되었다. 국내 최고의 금속 시제품을 만들어내는 소규모 공장 장인들은 오랜 세월 기술을 연마하며 꿋꿋하게 한자리에서 버텨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산업화로 달라진 유통구조, 상업시설 유입 등 문래동을 둘러싼 외부 변화와 함께 인력 부족, 소규모 생산 등 내부적 한계로 점차 활력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젊은 예술가들. 철공산업이 하락세를 탈 때 홍대, 대학로 등지에서 밀려난 예술가들이 문래동으로 유입된 것이다. 예술활동을 하기 위해선 공간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경제력이 떨어지는 예술가들은 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사용 가능한 공간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찾은 동네에서 예술활동을 이어가면 그곳은 점차 활성화되고 발전한다. 동네가 발전하면 그곳을 찾는 유동인구도 늘어나 예술가로선 제 작업을 선보이기 수월해지겠지만, 그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다. 지역이 활성화되면 다시 임대료가 치솟고, 언제 그곳에서 또 밀려나야 될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다. 어쨌든 문래동으로 들어온 예술가들은 빈 공장을 개조하여 공방을 차리고 스튜디오를 열었다. 골목이 활기를 되찾자 맥주집, 카페도 듬성듬성 생겼다. 이름하여 ‘문래창작촌’의 탄생이다.

문래동의 한 철강업체에 켜켜이 쌓인 철관들. 크고 작은 원들이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그래픽을 만들어낸다. 마치 오래된 철공소 장인과 잚은 예술가의 터가 공존하는 지금의 문래창작촌처럼.

하지만 변화는 항상 또 다른 불편과 불만을 낳는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문래동은 원래 40년이 넘도록 철공산업으로 중심을 이루어온 곳이었다. 이곳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려온 철공소 공인들에게 문래동 골목은 그들의 자긍심이었고 삶 자체였다. 그런 그들의 입장에선 새로이 비집고 들어오는 젊은 예술가들을 고운 시선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었다. 단순히 외지인에 대한 배타심이 아니라 서울시의 지원을 등에 업은 그들의 유입으로 기존의 원주민들이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다. 거리가 활기를 되찾고 유동인구가 늘어나는 것은 분명 마을의 발전을 의미하지만, 그는 곧 임대료의 상승을 내포한다. 게다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기침체로 하나둘 철공소의 셔터가 내려졌다. 오랜 세월 동안 동고동락하던 이웃가게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거나 터를 옮긴 것은 원주민인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변화를 곱게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다. 어쩌면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가 또 다른 젠트리피케이션의 원인이 되는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문래동 철공단지의 야경. 신도림역 일대의 휘황한 불빛과는 대조적으로 철공소 골목은 기괴하다 싶을 정도로 어둑하기만 하다. 

하지만 반대로 새로 입주한 예술가들의 입장 또한 억울하기만 하다. 돈이 없는 젊은 예술가들은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것일까. 어렵게 문래동에 터를 잡기는 했지만, 예술작업만으로는 생계를 잇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대부분 작업실 겸 카페나 숍을 운영하는 등 사이드잡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 또 다른 핫플레이스로 유명세를 타면서 사람들이 몰려드는 현상이 단지 그들의 탓만은 아니지 않은가. 그들은 기존 주민인 철공소 상인들의 입장을 이해한다. 동시에 그들의 입장도 이해해달라고 호소한다. 나아가 패기 넘치는 젊은 예술가들은 그러한 현실을 예술로 승화시키며 공존을 위한 손을 내밀었다. 문래동을 대표하는 철공산업의 상징물을 제작하는가 하면, 칙칙한 골목 시멘트벽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곳곳에 자리 잡은 예술가들의 흔적은 철공산업을 존중하며 그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에 다름 아니었다. 

문래창작촌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조형물들은 낡아가던 철공소 골목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던 골목들이 ‘뜻밖의 예술’을 만나 새롭게 재탄생되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어냈다. 문래창작촌 골목을 찾은 도시여행자들은 철공소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맛집과 분위기 좋은 카페, 상점들을 보물찾기하듯 찾아내는 재미에 푹 빠져든다. 주말이면 데이트족과 출사객들로 제법 붐비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기존 공장 곳곳에 ‘사진촬영 금지’ 팻말이 나붙는 부작용이 생겨나기는 했지만.
 

서울시에서도 ‘문래창작촌 지원사업 MEET’ 등을 통해 문래창작촌을 소공인과 예술인들이 어우러지는 공생의 공간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사업은 2010년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올해 10주년을 맞아 회화, 설치, 연극, 음악 등 지역축제와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문래동의 특성을 활용한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문래동 철공소 노동자들이 삶을 대하는 방식과 흔적을 시각적으로 해석한 전시나 철공소 골목에서 수집한 철로 만든 조각 등을 전시하며 예술가와 철공산업인들이 공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지역 소공인 지원을 위한 문래소공인특화지원센터나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문래예술공장 등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 과연 문래창작촌이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벗어나 기존 산업인들과 젊은 예술인들이 행복하게 공생하는 공간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 답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곳을 찾는 우리들에게도 달려있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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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정 2020-01-12 20:20:26
이 동네가 이렇게 변할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예쁜 카페도 많이 생겨나고.
원래 동네 모습도 유지하면서 예술 거리로 변해가는 걸 보니 좋네요

심강지서(위영) 2020-01-10 20:33:16
서울에 30년 이상을 살아서 고향에서보다 더 오래 살았지만 사실 문래동은 잘 알지 못한다.
문래동 철공소 거리를 가 보지 못해 상상만 할 뿐이다.

도시의 어느동네건 발달이 되면 지가가 오르기 마련이라 원래부터 있던 업종은 지대가 싼 지역으로 옮겨가게 되는 것이 자본주의 생리같다. 이러한 Gentrification(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서는 고유한 업종을 보호하는 사회적 정책이 필요할 것 같다.

도시도 생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하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도시의 고유성을 보존하여 가치를 높이는 것은 마을 공동체가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한 것같다.

문래동의 고유한 철공소 거리와 생동적인 젊은 예술가 거리가 공존하는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유 작가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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