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로

후분양을 검토하는 단지가 늘고 있다. 분양 시점을 늦출수록 가격을 올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서다. 상한제 유예기간 안에 분양이 불가능한 서울 강남권 재건축조합과 대규모 민간개발 사업장들이 후분양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신천동 진주아파트재건축조합은 분양 방식을 후분양으로 잡고 조합원들에게 예상 분양가를 통보했다. 2021년 선분양을 할 경우 일반분양가는 3.3㎡당 평균 3495만원으로 예상되지만 2023년 후분양을 하면 3.3㎡당 3815만원을 책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경우 조합의 분양수입은 8043억원에서 8744억원으로 700억원가량 늘어난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 때문이다. 진주아파트는 이미 이주를 마쳤지만 건축계획을 바꾸는 과정에서 서울시 지침에 따라 설계와 인·허가를 다시 진행해야 해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상한제 유예시한으로 잡은 4월까지 입주자모집공고를 낼 수 없다. 상한제를 적용받으면 택지비와 건축비, 적정 이윤을 따져 분양가를 정한다. 여기서 택지비의 비중이 가장 높다. 후분양을 한다면 분양 시점인 2~3년 뒤의 땅값을 분양가에 반영할 수 있다. 정부가 공시가격 현실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앞으로 땅값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분양원가가 달라지는 것이다. 결국 선분양대신 후분양으로 가닥을 잡게 된 이유다.

잠실진주 인근 미성·크로바조합도 같은 이유로 후분양을 검토하고 있다. 철거를 진행 중인 이 단지가 상한제를 피해 4월 전에 분양에 나설 경우 3.3㎡당 3000만원을 넘을 수 없다.

시공사 교체를 위해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반포동 신반포15차조합도 총회에서 후분양을 의결했다. 인근 ‘아크로리버파크’는 매매가격은 3.3㎡당 1억원을 기록했지만 신반포15차가 선분양을 한다면 절반 수준으로 분양가를 책정해야 한다.

서울 도심 개발사업들도 후분양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아졌다. 용산 유엔사부지와 여의도 MBC부지, 뚝섬4구역 개발사업 등이다. 자체 개발을 진행 중인 이들 사업은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장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상한제 대상이다. 하지만 땅을 사들인 가격이 워낙 높아 분양가가 제한될수록 손해가 커진다. 유엔사부지의 경우 일레븐건설이 지불한 땅값만 1조원이다. 이 때문에 후분양 또는 임대후 분양 등의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분양업계의 관측이다.

뚝섬4구역을 개발하는 부영주택은 이미 지난해 착공승인을 받아 공사를 시작한 상태다. 여의도 MBC 부지를 개발해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짓는 복합개발사업은 지난해 오피스텔만 분양을 끝냈다. 이미 선분양을 포기하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후분양 방식이 더 큰 이익을 남길 것이란 보장은 없다. 택지비 산정의 기준이 되는 감정가격은 한국감정원의 검증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조합이 초기에 부담해야 할 사업비도 늘어난다.

이 같은 이유로 후분양 바람이 서울 전역으로 번지긴 힘들 것으로 내다보는 사람도 많다. 후분양은 강남권 재건축 등 자금력이 있는 조합이나 사업자들만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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