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신종 코로나 사태가 언제 잦아들지 예측하기 어렵다. 중국 후베이성에서 국내로 입국한 사람들의 행방이 묘연한 경우도 있고, 2차 감염, 3차 감염, 나아가선 지역 감염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흉흉한 시나리오가 떠돌기도 한다. IT와 디지털 기술이 극한을 달리는 작금의 문명이 무색할 지경이다. 인공지능이니 합성생물학이니 하며, 인간을 신적 경지로 끌어올리고, 기계와의 융합을 꿈꾸는 트랜스휴머니즘이나 포스트휴먼의 이데올로기도 맥없어 보인다. 그러나 상상력 과잉이라고 할까. 그 와중에도 막연한,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떠올려본다. 역병이 창궐하는 중세적 현상과 21세기 IT문명이 어쩌면 새로운 조우를 이뤄낼 수도 있지않을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딥러닝과 같은 첨단 알고리즘이 신종 코로나의 현실과 접속하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딥러닝의 경지에선 더 이상 인간이 기계에게 “세상은 이렇고 저러하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세상에 관한 엄청난 빅데이터를 그냥 집어넣기만 한다. 딥러닝은 ‘자신’이 알아서 자체 인공신경망 구조로 데이터를 분석, 채굴(마이닝)하고, 그 통계학적 정보를 점점 압축된 표현으로 바꿔나간다. IBM 왓슨과 같은 경우, 이미 데이터 마이닝에 의해 의사보다 정확히 종양 여부를 정확하게 짚어내기도 한다. 수많은 환자들의 검사 결과를 근거로 한 데이터 모형을 토대로 족집게 같은 명의가 된 것이다. 신종 코로나 와중에 벌어진 크고 작은 사건과 해프닝, 에피소드 하나하나도 역시 딥러닝의 소중한 ‘데이터’가 될 수 있다. 장차 또 다시 반복될지도 모를 역병에 대처할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무심히 본능적으로 움직이는 인간의 원초적 지능 활동이다. 무심코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타고 간다든지, 개와 고양이를 구분한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신종 코로나의 와중에 불특정 감염자가 확진 이전까지 수많은 사람과 장소를 섭렵하며 돌아다닌 행위도 이와 비슷하다. 그 동선을 어떤 규칙으로 설명하며, 적확(的確)하게 짚어내기 어렵다. 종전의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은 어떤 공식으로도 이를 설명할 수 없었다. 이른바 ‘폴라니의 역설’이다.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가 말했듯이, “인간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것”, 즉 ‘암묵지’(暗默知 tacit knowledge)의 소유자다. ‘암묵지’를 규칙이나 논리로 프로그래밍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딥러닝은 이런 ‘폴라니’를 가볍게 뒤집어버렸다. 개의 충동적 반응을 실험한 파블로프 법칙과도 같은, ‘깊은 수준의 보상학습’(deep Q-network)으로 미래 결과를 예측하며 최적화된 선택을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자기 주도의 학습으로 판단하며 세상의 카오스적 질서와 규칙을 계열화, 선형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마치 아기가 말문이 터진 것과도 같다. 데이터만 있으면 그 데이터로 학습하는 능력, 즉 코딩을 통해 아예 인간이 찾아내지 못하거나 표현하지 못했던 규칙이나 패턴을 찾아내기도 한다. 마치 시, 소설을 쓰는 것처럼 非유형적이고 임의적이며 창의적인 것이다. 인간이 온갖 정보를 규합해서 분석해본들, 미처 규칙화할 수 없었던 ‘규칙’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이제 딥러닝은 예측키 힘든 인간의 온갖 애드리브나 질병 현상, 확진 환자를 둘러싼 경로 추적은 물론, 장래 또 다른 전염병 출몰 시기와 가능성도 예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새로운 하이퍼텍스트 세상과도 맞닿는다. 디지털 두뇌(腦)는 사건과 이야기, 인간세의 플롯 등을 스스로 빈칸이나 ‘괄호’의 여지가 있는 ‘모듈’로 만들고, 그 빈칸에 실시간으로 대체 가능한 무한한 입력값을 채워넣는다. 그래서 경우의 수를 무한하게 생성하며, 용한 점쟁이처럼 미래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게 된다. 그 어떤 혼란한 현실의 조각들 역시 빠짐없이 ‘모듈화’된다. 그렇게 ‘모듈’ 형태로 분절되어있는 현실과 현상에 대해 동 시대의 참여자들은 능동적으로 변용을 가하며, 필요한 경우 치유와 교정도 반복하는 것이다. 딥러닝에 대한 성급한 기대를 갖는 것도 그래서다. 확진자가 백화점, 극장, 식당, 어떤 누구와 몇 명을 몇 시에 만났고, 그가 만났던 수 백, 수 천의 사람들은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를 ‘빈칸’의 입력값으로 모듈화함으로써 즉각적인 규명과 추적과 대처가 가능해진다. 

그래서 고도의 딥러닝은 마술사와도 같다. 부처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지금 이 순간 ‘코로나’의 현상을 꿰뚫어보고, 실시간 선제적으로 역병을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과연 인간에게 유익할 것인가라는 질문과는 별개의 것이다. 인간 존재의 본질과도 흡사한 인공지능, 스스로 설계하고 존재론적 사유를 하는 인공생명에 대한 의구심은 물론 타당하다. 최근엔 그런 특이점(singularity)에까지 내달려선 안 된다는 사변가들의 경고도 끊이질 않는다. 모두 합당한 성찰이며, 묵직하게 경청할 만한 문명론적 질문이다. 그럼에도 당장은 급한 마음이다. 오로지 역병으로부터 인간을 지켜줄 딥러닝의 출현이 간절할 뿐이다. ‘코로나’ 포비아가 극심하다보니 이런 공상 아닌 공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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