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없이는 1등도 사라진다

블랙베리 실패의 교훈

블랙베리 스마트폰이 사라진다. 블랙베리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위탁 생산해왔던 TCL과의 계약이 오는 8월로 종료되면서다. 블랙베리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올해 8월31일 TCL과의 파트너십 계약이 끝난 이후 더 이상 스마트폰의 제조와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기존 블랙베리 스마트폰을 구입한 고객에게는 오는 2022년 8월31일까지 기술 지원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계약 종료는 블랙베리의 스마트폰 사업 철수 수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블랙베리가 또 다른 업체와 계약을 맺고 자체 브랜드 스마트폰을 생산할 가능성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조한 블랙베리 스마트폰 판매 실적과 치열한 시장 상황을 생각하면 사업에 새로 뛰어들기가 쉽지 않다.

스마트폰의 효시

한때는 스마트폰의 효시로 불리기도 했다. 디자인과 뛰어난 보안 등에 힘입어 한때 소비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처음에는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전송에 맞춰진 무선호출기 형태로 출발했으나 이후 휴대폰을 거쳐 스마트폰으로 진화를 거듭했다. 블랙베리 브랜드가 붙은 제품이 처음 나온 건 1999년이다. 무선호출기(일명 삐삐)의 일종인 ‘블랙베리 850’을 출시했다. 메시지를 받을 수만 있었던 기존의 삐삐와 달리 메시지 전송이 가능했고, 이메일 기능도 들어간 혁신적 제품이었다. 블랙베리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화면 아래의 ‘키보드’도 이 제품에 장착됐다. 키보드 모양이 검은나무딸기(블랙베리)와 닮았다고 해서 이와 같은 브랜드명이 탄생했다. 이후 RIM은 전화 기능까지 넣은 스마트폰의 원조 격인 휴대폰을 잇달아 출시했다. 고가였지만 이동 중에 이메일을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과 데이터를 암호화해 별도 서버에 저장하는 강력한 보안성 덕분에 불티나게 팔렸다. 지금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블랙베리 자체의 메신저 기능도 인기 배경 중 하나였다. 블랙베리는 이후 일반인으로 판매처를 확대했다. 경쟁자가 없는 절대강자였다. 키보드를 통해 일정관리와 함께 이메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고 미국 국방부의 승인을 받을 정도의 뛰어난 보안성도 강점으로 꼽혔다. 그러면서 성공한 직장인과 전문직 종사자들의 사랑을 받았고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에는 '오바마폰'으로 불리기도 했다. 블랙베리는 2008년까지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약 20%를 점유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같은 해 미국시장에서는 점유율이 44.5%에 달할 정도로 독보적인 1위였다.

영원한 1등은 없다.

발목을 잡은 것은 성공에 안주했던 것이었다. 자체 운영체제(OS)와 쿼티 키보드를 고집한 게 독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블랙베리의 운명을 바꾼 것은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한 것이었다. 이어 구글이 이듬해 스마트폰용 운영체제 안드로이드를 무료로 배포한 뒤 블랙베리 스마트폰은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기 시작했다. 자체 운영체제(OS)에서 여러 차례의 오류가 발생하고 애플리케이션이 부족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구글, 애플이 새로운 스마트폰 생태계를 만들며 영역을 확장하는 것과 달리 자체 OS의 경쟁력 확보에 실패했다. 한 때는 혁신적이었던 키보드도 터치스크린이 도입된 후로는 시데에 뒤떨어진 유물처럼 인식되었다.

블랙베리가 자랑하던 이메일, 자체 메시지 기능은 더 이상 블랙베리만의 특별한 기능이 아니었다. 터치 스크린이 보편화되면서 블랙베리의 키보드도 ‘애물단지’가 됐다. 블랙베리 휴대폰은 키보드가 전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화면이 여전히 작았다. 블랙베리는 자체 OS를 사용해 iOS와 안드로이드용 앱을 쓸 수도 없었다. 실적 부진에 시달리던 블랙베리는 뒤늦게 2013년부터 안드로이드 앱도 사용 가능한 OS를 출시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선택이었다.

뒤늦은 모방은 혁신이 아니다.

블랙베리는 변신해야했다. 그러나 너무 늦었고 게다가 혁신이 아니라 따라가는 것 뿐인 선택이었다. 뒤늦게 모방에 나섰지만 혁신은 없었다. 변신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블랙베리는 지속된 적자로 자체 생산을 중단하고 자체 OS를 포기해야했다. 자체 생산도 중단하기로 하고 2016년 스마트폰 생산을 중국 TCL에 넘겼다. 중국 TCL은 블랙베리 스마트폰 개발·생산·마케팅 권한을 제공하고 대신 블랙베리는 스마트폰 앱과 보안 등 소프트웨어 서비스에 주력하기로 했다. TCL은 나름대로 블랙베리 부활에 총력을 기울였다.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블랙베리 키1'과 '블랙베리 모션', '블랙베리 키2' 등을 출시했다. 키패드 대신 터치스크린을 적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는 이미 달라져있었다. 블랙베리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품질로도 가격으로도 경쟁력이 있다고 하기 어려웠다. 애플과 삼성뿐 아니라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도 뒤지면서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 새롭게 내놓은 블랙베리 제품에 혁신은 없었다. 뒤늦게 따라온 모방만 있을 뿐이다. 혁신도 없고 가격 경쟁력도 없는 제품이 환영받을리 없다.

혁신이 없으면 1등도 사라진다

블랙베리는 1984년 캐나다에서 설립된 회사 리서치인모션(RIM)이 만든 휴대폰 브랜드다. RIM은 2013년 사명을 아예 블랙베리로 변경했다. 블랙베리는 애플과 구글이 주도한 '스마트폰 혁명'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혁신에 실패하면 1등도 사라진다. 올해 8월 TCL과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 21년을 이어온 블랙베리 휴대폰의 역사는 마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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