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최근 교황이 인공지능에 찬성한다고 했다. 세계식량농업기구에 대해 가난한 이들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비록 윤리도덕문제가 있지만 인공지능을 활용해도 좋다고 했다. 다만 식품사슬 최적화나 수자원관리, 해충과 질병퇴치, 종 식별, 재난재해 예측과 대비를 위해서라고 범위를 한정했다. 그럼에도 이는 이성 너머 영적 완성체로서 인간의 유일무이함을 신봉해온 종교와 그 수장으로선 매우 파격적이다. 기계와 기술이 인간의 대체재냐 보완재냐 하는 논쟁에 한 획을 그을 만한 ‘관용’으로 해석될 만하다.

사실 자동화와 인공지능에 의해 일자리가 많이 대체당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인간이 기계에 밀려 만물의 2인자로 추락할 것이란 ‘기우’아닌 기우가 팽배해있다. 디지털혁명을 향한 보폭이 빨라질수록, 목적 아닌 수단으로 타자화될 인간의 운명을 걱정하며, 기술과 기계와 사람의 실존적 불일치에 당혹해하는 목소리도 높다. 그 바람에 ‘인간’을 재발견하려는 조바심도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4차산업혁명기의 자동화와 로봇, 사물인터넷 등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작동하고, 일과 사람의 선순환이 이뤄지게 할까. 교황의 인공지능 ‘승인’은 그런 선순환의 문법을 어느 정도 엿보게 한다.

교황의 너그러운 언명이 있은 다음 FAO는 “식품 시스템 전환 관점에서 우리는 디지털화, 빅데이터 및 인공지능을 희망의 원천으로 본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식량증산과 품질 개선을 위해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위성 이미징, 원격센서, 모바일, 블록체인 응용프로그램을 포함한 새로운 기술을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교황도 ‘지속 가능한 식품시스템을 보장’하기 위해 인공지능을 포함한 고도로 지속가능한 접근을 허용했음을 분명히 했다. 다만 “디지털시대의 변화의 범위와 가속화는 실제로 우리들이 예상치 못한 문제와 상황에 직면케했다.”고 비인간적 기술과잉에 의한 경계는 늦추지 않았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기계 사이의 바람직한 상호 작용을 촉진하며, 기술을 사용하는 궁극적 목표를 인간의 발전에 맞춘 것이다.

교황이 말한 인공지능의 ‘조건’은 구체적으로 빈곤퇴치, 분배정의, 인간평등이다. 그에 따르면 인공지능은 이윤 지상주의나 슈퍼리치들만의 ‘잔치판’의 도구가 되어선 안 된다. 기술과 인간을 배타적 ‘소유’관계로 놓는게 아니라, 인간 내면의 삶의 방식이 되는 ‘존재’적인 관계로 융합하는 무기다 되어야 한다. 인간보다 월등한 기계의 물리적 기능을 인간친화적 용도로 치환하고, 보잘 것 없는 인간의 근육질적 능력을 거대한 이성적․영적 지평으로 확장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곧 인간 이성과 ‘인간다움’의 무한한 시너지를 유발하는 엔진으로 작동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인공지능에 대한 교황의 ‘승인’은 ‘기술 따로 인간 따로’가 아니라, 기술과 인간, 그 둘 사이의 소통과 협동, 균형있는 작동에 대한 승인이다. “어떻게든 많이만 팔면 그만”이란 정글 본능을 떨치고, 제품의 수명을 좌우하는 사용자들의 공감 요소, 사용하는 의미, 다양한 욕망의 형태를 먼저 고민하는 적정기술에 대한 장려다. 좀더 확장하면, 만인이 ‘접속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허용하고,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인 근대적 재산소유 개념이 아니라, 공유와 상생의 인간자본주의을 권면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의 윤리도덕관련 우려에도 불구하고, 혜택이 많음을 교황조차 인정했다”는 FAO 책임자들의 해석은 조악하기 짝이 없다. 분명 교황은 ‘혜택이 많음’에 주목하지 않았다. 대신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제한해서 그 임무를 부여했다. 마치 ‘전자발찌’를 채우듯, 인공지능과 디지털기술의 활동 영역을 제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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