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커지는 메신저사업자의 책임

 

 

 

조주빈이 만든 박사방과 갓갓이 만들고 와치맨 등이 운영해온 ‘n번방으로 아동 성착취 범죄 등 디지털 성범죄의 온상지가 돼버린 메신저 프로그램 텔레그램이 주목을 받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텔레그램 등 보안이 강화된 메신저에서 반복되고 있다. n번방 사건은 플랫폼 사업자의 의무와 플랫폼에 대한 사회적 통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서버에 기록은 남는다

디지털 장의사는 온라인 흔적을 지워주는 일을 한다. 디지털장의사들이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불가능한 의뢰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을 통해 불법 성착취 영상을 관람하던 이들이 신상이 드러날까 두려워 흔적을 지워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조주빈이 검거되고 경찰이 영상 소지·유포자와 가담자도 수사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최근 텔레그램 흔적을 지워달라는 문의가 늘고있다.

업계 종사자들은 정상적인 업체라면 영상물 구매자나 관련자의 의뢰는 받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범죄의 증거인멸을 도와 공범이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관련 업계에 따르면 초기화를 반복하는 방식을 통해서 개인의 스마트폰 내부에 남아있는 기록을 지우는 것까진 가능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텔레그램 서버에 남아있는 기록까지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입자가 탈퇴하더라도 대부분 회사 서버에는 로그 정보와 활동내용들이 저장된다. 디지털 성착취 범죄의 활동 공간이 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에 대해 법적 책임을 강화하자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메신저 사업자들은 아동 음란물이 신고되면 삭제하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 때문에 비슷한 범죄가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메신저 사업자의 책임

디지털 성범죄가 텔레그램 등 보안이 강화된 메신저에서 반복되고 있다. 하지만 메신저 사업자에게 부과된 관리 책임은 크지 않다.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의 관한 법률에 따라 아동·청소년을 이용한 음란물을 즉시 삭제하고 전송 방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법에 따르면 최고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수 있다. 이 때문에 카카오톡은 오픈 채팅방을 만들 때 금칙어를 두고 이용자가 대화 메시지를 신고하면 계정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라인 메신저도 신고 제도를 운영한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아동 성범죄나 폭력 등 콘텐츠를 이용자가 신고하면 이를 삭제하고 계정을 차단하면서도, 수사기관에 아동 음란물 등을 유포한 사용자 정보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n번방 사건처럼 이용자의 데이터가 사업자 서버를 거치지 않는 텔레그램의 비밀방을 이용하면 이용자와 사업자가 법적 책임을 피하게 된다는 것이다. 텔레그램 메신저는 개인 신원과 대화 내용 같은 정보 보안을 최우선으로 한다. n번방 사건에 대한 입장 같은 것도 없다. 텔레그램은 아동 성학대 신고 채널인 stopCA@telegram.org 를 운영하기는 한다. 날마다 삭제 조치한 숫자도 올린다. 이에 따르면 텔레그램은 하루 250~300개의 아동 성학대 채널을 삭제하고 있다. 방심위가 할 수 있는 건 불법 촬영물을 지워달라고 텔레그램 앱의 신고 창구에 요청하는 것뿐이다. 지난 1월에는 198건을 방심위가 요청해 삭제됐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답을 하지는 않는다. 삭제됐는지, 방심위가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텔레그램은 디지털성범죄의 온상?

n번방 사건은 플랫폼 사업자의 의무는 어디까지인지, 범죄 소굴로 이용되는 플랫폼을 사회는 어디까지 통제할 것인지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방심위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 심의물의 99%가 외국 서버 및 플랫폼에서 유통된다. 인터넷 사업자는 불법 정보를 유통하지 않을 의무가 있지만(정보통신망법 44), 해외 사업자는 적용받지 않는다. 그나마 트위터·페이스북·구글은 성범죄 신고 전담 창구가 있고 국내 지사를 통해 협조하고 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국내 사업자가 없다. 텔레그램 서버와 본사가 어느 나라에 있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이 국제 공조를 통해 텔레그램 본사 위치를 찾아내야 한다. 텔레그램은 익명성과 사적 공간을 중시한다. 텔레그램의 설립 목적 자체가 검열받지 않을 자유창업자 파벨 두로프(36)러시아의 저커버그라 불린다. 반정부 인사의 텔레그램 정보를 달라는 러시아 당국의 요구를 거부한 뒤, 국외 망명 중이다.

텔레그램은 한때 IS 테러범의 소통 창구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당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텔레그램을 범죄자의 둥지라고 불렀다. 그러나 창업자 두로프는 개인 사생활 권리가 (테러) 위협보다 더 중요하다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텔레그램은 IS 채널을 자체 삭제했지만, 테러범 정보는 외부에 제공하지 않았다. 물론 텔레그램의 협조가 없어도 잠입취재나 함정수사, 내부고발로 잡을 수는 있다. 그러나 오래 걸린다. 경찰은 CCTV 분석과 가상화폐 추적 등 6개월간의 수사 끝에 일명 '박사' 조주빈(25)씨를 지난 17일 검거했다해외에서도 텔레그램 범인은 어렵게 잡는다.

 

텔레그램과 보안

텔레그램은 도대체 어떻게 국내에 알려졌을까. 우리나라에 텔레그램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는 지난 2014년 박근혜 정부 시절로 올라간다. 그해 9월 검찰이 서울중앙지검에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전담수사팀을 꾸린 이후, 사생활 침해를 우려한 사람들이 러시아 개발자가 만든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으로 대거 갈아타기 시작했던 것이다카카오톡 등 국산 메신저와 SNS에 남긴 글들이 나중에 혹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한 한국인들이 보안성이 높은 텔레그램으로 갈아탔던 것이다. 당시 텔레그램은 카카오톡을 제치고 애플 앱스토어 무료 애플리케이션 부문 1위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텔레그램은 종단간 암호화 기술로 유명해진 메신저 앱으로, 2013년 처음 출시됐다. 다른 메신저 앱들처럼 개인 채팅과 단체 채팅을 지원한다. 하지만 그 모든 대화 내용들이 암호화된다는 게 텔레그램만의 차별점이다. 보안성이 강화되어 비밀 채팅 기능을 설정하면 모든 메시지를 암호화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락처가 저장된 상대만 연결되며, 대화 내용도 서버에 남지 않고 자동 삭제되는 것이 특징이다. 텔레그램이 다른 메신저 프로그램들을 제치고 사이버 망명지로 주목받은 이유다. 보안성과 익명성을 무기로 국내에서 가입자 수를 늘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징이 각국 수사기관이나 정부기관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나 사이버범죄자들이 테러나 범죄를 모의하는 플랫폼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다른 메신저 프로그램에서는 이나 그룹에 해당하는 것이 텔레그램에서는 채널로 불린다. 디지털 성범죄자들의 범죄 현장이 된 박사방이나 1번부터 8번까지의 ‘n번방도 각각의 채널이었다. 범죄용 채널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다.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기술과 앱을 오히려 범죄자들이 누리는 상황이다. 특히 텔레그램은 앱을 설치해서 채널을 개설하거나 채널을 검색해 가입하거나 탈퇴하면 그만이라서 사용성이 더욱 높기도 하다물론 텔레그램의 높은 보안성과 익명성은 언론 검열, 사상 통제가 심한 국가에서 개인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온 측면도 있다물론 본질은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이 가진 특징보다는 사실 성범죄자들의 왜곡된 성의식과 범죄행위다. 프라이버시의 보호와 사회적 통제 사이에서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