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의 스토리와 창조적 자본주의의 미래

 

빌 게이츠가 은퇴를 선언했다. 빌 게이츠는 이를테면 미국식 성공스토리의 첫 현대적 모델이다.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197519세에 마이크로소프트(MS)를 설립해 이미 40세쯤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소프트웨어 시장을 개척한 그의 인생은 세계 컴퓨터 산업의 역사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에게 빌 게이츠는 시대의 아이콘이다.

빌 게이츠의 은퇴 선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가 드디어 경영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기업가로서의 삶에 작별을 고했다. 그는 313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링크드인에 올린 게시글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를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퇴 이유는 전 세계 보건과 개발, 교육, 기후 변화 등 자선사업에 전념하기 위해서다. 그가 1975년 친구 폴 앨런과 함께 회사를 설립한 지 45년 만의 일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개인용 컴퓨터(PC) 산업의 형성과 성장에 엄청난 역할을 했다. 소프트웨어를 거대 산업으로 만든 것도 그와 마이크로소프트였다. 게이츠가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에서 떠난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의 역사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인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은 어린 시절 친구였다. 그들이 함께 어울리던 60년대 후반부터 두 사람은 이미 컴퓨터 마니아였다. 1973년 앨런은 한 잡지에 실린 신형 컴퓨터 기사를 복사해서 게이츠에게 보여줬다. 당시 게이츠는 하버드대학에서 응용수학을 공부하던 학생이었다. 앨런은 허니웰이라는 회사의 프로그래머였다. 기사를 본 게이츠는 기사에 등장한 컴퓨터 제작사에 전화를 걸어 베이직 프로그래밍 언어를 개발해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고 컴퓨터회사는 그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배포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이 일이 시작이었다. 2년 후인 19754월 두 사람은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했고, 게이츠는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약에는 20세기 기업사의 최대 실수가 자리잡고 있다. 당시 컴퓨터 시장의 최강자는 IBM이었다. 1980년 여름, IBMPC를 개발하고 있었고, 이를 구동시킬 운영체제가 필요했다. IBM은 운용체제를 스스로 만들 생각은 하지 않고 마이크로소프트에 운용체제를 만들 것을 제안했다. MS DOS가 나왔다. 이 과정에서는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산업 역사상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결정을 했다. IBMMS DOS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주장하지 않도록 요구한 것이다. 저작권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당 사용권을 받는 방식을 요구했다. IBM은 이 요구를 받아들였다. 계약은 이후 수십 년간 마이크로소프트가 PC 시장을 지배하게 한 근간이 됐다. IBM 경쟁사들은 IBM PC와 유사한 컴퓨터를 금방 만들어냈고, IBM과 마찬가지로 운영체제가 필요했다. IBM과 비슷한 컴퓨터를 만드는 모든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이 같은 계약은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본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됐다. 당시 애플도 독자적인 운영체제를 만들었다. 그러나 애플은 소프트웨어를 별도로 판매할 계획이 없었다. 자신들이 만든 운영체제는 자신들이 만든 컴퓨터에만 사용됐다. 이 결정적인 차이로 인해 애플은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서지 못했다. 드디어 윈도 95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됐고, 게이츠는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됐다. 하지만 이 때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 시장 독점에 대한 논란이 커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결국, 2000년 빌 게이츠는 친구인 스티브 발머에게 CEO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CEO에서는 물러났지만, 게이츠의 경영 참여는 유지됐다. 그 뒤 애플의 도약과 구글의 등장으로 가려지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영광은 빛을 잃는 듯 했다. 하지만 2014년 사티아 나델라 CEO가 부임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부활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기업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게이츠 재단과 창조적 자본주의

사실 빌 게이츠는 애플의 창업주인 동갑내기 스티브 잡스보다 스토리가 화려하지는 않다. 웹브라우저 끼워팔기에 대한 반감도 여전하다. 'SW 황제'라는 말에서 떠오르듯 그는 혁신적인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잔혹한 자본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자선사업가 빌 게이츠의 활약은 기업가 빌 게이츠못지않다. 재산 99%를 기부하고, 3명의 자녀에게 나머지 1%만 남겨주겠다는 발표도 했다.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하던 1994년 아내 멜린다 게이츠와 함께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빈곤, 질병 퇴치 등 글로벌 난제 해결에 목적을 두고 있다. 미국 경제지 포천에 따르면 이 재단은 19951월부터 2017년 말까지 455억달러를 기부했다. 대부분의 금액이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등 질병을 예방하고 퇴치하는 데 쓰였다. 2017년에는 세계 각지의 자선단체들과 손잡고 전염병 대비 혁신 연합(CEPI)’도 출범시켰다. 올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리자 21억 달러를 기증했고 가정용 코로나19 진단 키트 보급 운동에도 나섰다.

2008년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 게이츠는 이런 자신의 구상을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로 명명했다. 자본주의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혁신하자는 취지였다창조적 자본주의의 기본이념은 자본주의가 가난과 불평등을 극복하는 방향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자본주의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드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지속가능성이 없다는 점에서 자본주의가 빈곤계층을 가난에서 탈출하도록 돕는 시스템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정부가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빈곤과 불평등이라는 문제 해결에 기업도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창조적 자본주의는 아직 일부 혁신적 기업인 출신 자선사업가들의 실천 활동의 일환으로 전개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 시스템 덕분에 국가보다 더 큰 부와 영향력을 갖게 된 초국적 기업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들의 역할에 대한 논란은 빌 게이츠의 문제 제기가 없었다면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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