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탈원전때문인가?

두산그룹은 곧 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요구한 자구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두산중공업에 1조원 규모의 긴급자금을 수혈한 채권단은 두산이 자체적으로 최소 1조원 가량을 추가 마련할 것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1조원의 자금지원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두산의 자구안

두산그룹이 두산솔루스 매각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솔루스는 전기차배터리 핵심소재 동박·전지박과 스마트폰용 OLED소재 등 성장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난해 두산에서 인적분할을 통해 연료전지를 담당하는 두산퓨얼셀과 함께 신설됐다.

시장에서는 두산솔루스 가치를 1조원 안쪽으로 평가하고 있다. 두산이 보유한 두산솔루스 지분율은 오너가 지분까지 합쳐 61.27%에 이른다. 따라서 예상되는 매각대금은 6000억원 안팎인 셈이다. 사업경쟁력이 약화된 두산건설 관련 계열사와 사업부문 정리도 거론되고 있다.

 

두산에 대한 자금지원

두산중공업은 지난 3월26일 장 마감 후 공시를 통해 1조원의 대출 약정을 산업은행 및 수출입은행과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정부가 1조원 규모의 자금을 특정 기업에 지원하도록 한 것은 두 말 할것도 없이 특혜다. 두산중공업 주식 1억1356만주와 ㈜두산 주식 361만주, 부동산 신탁수익권 등 1조2000억원 상당의 담보를 제공한다지만 대주주가 있는 대기업에 대한 지원은 역시 특혜다.

일단 1조원을 수혈 받으면 급한 불을 끄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은행권 대출도 만기연장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정부가 부담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두산중공업의 사업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상당 부분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원전 관련 기기와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이 주력인 두산중공업은 피해가 불가피했다. 지난해 두산중공업은 4952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두산중공업의 위기

두산중공업은 4조9000억여원의 부채를 안고 있다. 이 가운데 4조2000억원은 올해 안에 갚아야 한다. 은행권에서 빌린 단기차입금이 2조6600억원, 유동성 장기부채가 1조5300억원이다. 특히 외화공모사채 5800억원은 당장 4월 안에 상환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탈석탄 정책으로 두산중공업의 경영위기가 가중됐다는 지적은 부분적으로만 타당할 뿐이다. 두산중공업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원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15% 수준에 그친다. 영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두산중공업 매출에서 70%가량을 차지하는 것이 화력발전이다. 상황은 예년 같지 않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시대적 흐름이 달라졌다. 시장 규모가 가파르게 줄고 있다. 실제로 2015년 12월 파리기후변화협약이 채택된 후 세계 화력발전 시장 규모는 눈에 띄게 감소했다. 화력발전소 건설 건수는 2011년 249기에서 2016년 122기로 51%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두산중공업의 매출은 연결 기준으로 21조원대에서 13조원대로 줄었다. 원자력발전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내에서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때문이라고 쳐도 해외 시장이라고 희망적인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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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진의 책임

결국 두산중공업의 문제는 글로벌 발전 시장 침체와 정부의 전력수급 계획의 변화가 모두 겹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 문제는 두산 경영진의 오류에서 더욱 비롯된다. 두산 경영진은 세계 발전 시장의 흐름에 재대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문제를 키웠다. 사실 두산중공업의 경영실적은 오래전부터 좋지 않았다. 당기순이익은 2017년 158억원의 반짝 흑자를 낸 것을 제외하면 2014년 이후 내리 적자를 기록해왔다. 게다가 오너 일가는 스스로 두산중공업의 재무상태를 악화시키는 선택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두산건설 지분을 100% 확보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시켰고 재무부담은 한층 가중됐던 것이다. 두산중공업이 두산건설에 쏟아부은 자금은 1조5천억원 이상이다. 미래사업 투자와 포트폴리오 전환에 사용할 자금을 허비했다.

경영진의 무책임은 비판받을 만하다. 회사 구조조정으로 직원들의 복지는 축소되고 임금은 삭감됐는데도 박지원 두산중공업 회장은 지난해 연봉으로 15억4000만원을 받았고,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은 지난해 상여금까지 합쳐 31억원을 받았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지적은 당연하다. 담보로 잡힌 자산가운데서도 오너일가 32명이 채권단에 내놓은 주식은 지분가치가 123억원에 불과하다.

 

 

어려운 선택

지원금 1조원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경영위기를 불러온 원인은 여전히 남아있다. 두산중공업은 전체 매출의 60% 가량이 발전부문이다. 또한 매출의 70%가 해외시장에서 창출된다. 하지만 세계 발전시장은 이미 수주 감소와 환경규제 강화로 정체기에 접어든 상태다. 두산중공업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해외 원전과 석탄발전 사업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

결국 두산중공업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영진의 사업 포트폴리오 전환 실패와 부실계열사 두산건설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 때문이다. 부실 자회사 두산건설도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정부로서도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발전설비산업은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산중공업은 국내 화력발전소와 원자력발전소 유지·보수의 90%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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