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AI는 인간의 지식이나 판단력이 필요한 작업까지 자동화한다. 웬만한 인간의 정신적, 물리적 작업을 자동화하며, 노동의 가치를 감소시키고, 일자리를 위협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선택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가. 결국 AI에게 밀려나 거리로 내쫓겨야 할 것인가. 그러나 그건 너무 조급한 생각이다. 인간은 AI와 병존하거나, AI가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인간만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런 인간 조건을 경제적 함의로 치환한 것 중 하나가 ‘감성경제’다. AI가 대체할 수 있는 인지적 능력이 아닌, 창의력이나 감성 역량이 작동하는 경제적 가치사슬인 것이다.

이는 사고적 또는 물리적 직무가 아닌, 감성적 직무가 그 핵심이다. 보통의 상식과 직관을 요구하는 일은 흔히 그렇듯, AI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서정적 정취나 정서, 미묘한 공감능력이 뒷받침된 감성적 직무는 기계가 쉽사리 감당할 수 없다. 풍부한 사회성, 고도의 감성지능과 인지력, ‘타자’를 내면화하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가슴-. 이는 사람과 많이 대면하고 소통하거나, 소비자의 감성과 역지사지의 감정이입 등이 필요한 감성적 직무일수록 필수적인 덕목이자 필요조건이다. 그런 것들을 요구하는 경제적 모델이나 현상이야말로, 인간이 여전히 주인 행세를 할 수 있는 공시태(共時態)적 4차산업혁명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AI로부터 가장 안전한 직무나 역량은 감성과 공감의 영역이다. 기술만능의 쓰나미 앞에서 상대의 마음을 읽어내고, 상대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십분 알아내는 능력이 필요한 분야다. 서로의 생각과 느낌에 대해 민낯의 적절한 감정으로 공명해야 하는 직무는 AI가 함부로 비집고 들어오기 어렵다. 이런 감성적 행위는 때론 전략적이고 즉흥적인 창의력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그래서 흔히 소셜-크리에이티브(social-creative)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렇다고 단선적인 ‘창의’나 ‘창발 능력’과는 또 다르다. AI로선 그야말로 흉내내기도 어려운 ‘타자’의 내면화가 필요한 극히 ‘인간’다운, 인간만의 본성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국 등지에선 이미 탈(脫)인간적 기술 역량에 매몰된 인재 채용 못지않게 소셜-크리에이티브 역량을 갖춘 ‘인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물론 딥러닝의 경우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인간의 그것과 유사한 감정을 학습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 서비스, 무인 자동차, 고객 경험 및 판촉전략 등이 그런 것들이다. 심지어는 정서 분석과 감정 인식, 즉 감성지능을 갖춘 디지털 비서도 출현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과 인지를 주고받는 공감과 감성적 서사능력을 기계가 쉽게 복제해낼 것 같진 않다. 감성경제 속 기업과 소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기업과 상품에 대한 자신의 내적 경험에 기초한 공감적 반응을 표출하고, 다시 그것에 의해 기업이 일련의 기업행위를 결정하게 한다. 그래서 공감이 습관화된 기업이라면 소비자가 느끼는게 뭔지 인식하고, 그것을 체내화하며, 자신의 경험으로 치환해낼 줄 안다. 그럴 때 최적의 생산과 마케팅 등 기업행위가 가능해지며, 그것이 감성경제의 공식이다. AI에겐 벅찬 인간적 솔루션이다.

감성경제의 또 다른 작동 원리는 비선형적 사고와, 대상에 대한 추상화다. 사고를 정교하게 하고, 서로 무관한 개념이나 발상을 유기적으로 엮어 새롭게 추상된 의미를 연역해내는 능력이다. 그렇지 않고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하는 선형적 사고는 위험하다. 그런 사고 수준의 일자리는 AI에게 금방 빼앗길 소지가 크다. 흔히 말하는 창의력, 설득력, 리더십 기술 등도 그런 것들이다. 분명 감성 능력은 미래의 가장 유효한 대물림 유전자다. 그러기 위해선 AI가 모방하기 힘든 감성적 역량을 갖춰야 하고, 그에 맞는 일이나 직무를 찾고 만들어야 한다. 이는 미래에 인간의 영역을 지키고, 일자리를 보장하는데 머무르지 않는다. 자칫 비인간적인 미래사회를 인간의 얼굴을 한 문명사회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도구가 될지도 모른다. 나아가선 비정한 디지털혁명이 인간의 표정을 짓도록 하는 문명 기호가 될 수도 있다. 감성경제는 그래서 디지털 휴머니즘의 또 다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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