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코로나19’는 우리네 삶에 천지개벽 수준의 변화와 변혁을 가져다주고 있다. 원격 IT기술에 의한 시공간의 소멸, AI 내지 IoT에 의한 사물과 인간의 기술인격적 소통, 사람의 육신이 접하지 않는 비대면의 스킨십이 이제 일상의 필수 요소가 될 듯하다. 엘리베이터 버튼이나 문손잡이, 그리고 핸들이나 각종 기계조종장치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 손에 있는 수분의 함량이나 살결의 성질을 센서가 읽어낸다. 손을 1cm 정도만 가까이 대면 문이 열리고,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자동차가 알아서 시동걸고 전진한다. 종래 사람 간에 체취가 오갔던 만남은 사라졌다. 대신 얼굴을 대하지 않고도 상대의 표정과 인격, 심리, 정보를 획득하기 위한 AI, 챗봇 등이 생활 필수품이 되고 있다. 그런 모습이 이제 정상인 세상이 온 것이다.

그야말로 ‘코로나의 역설’이라고 할까. 대부분 산업과 경제가 죽을 쑤는 판인데, 유독 IT기술과 ICT산업은 뜻하지 않은 대목을 만난 듯 하다. 크고 작은 기업들은 인공지능(AI), 머신러닝(ML), 화상 면접, 온라인 기술 심사 등에서 제각기 이제껏 없었던 온갖 기술을 앞다투어 만들어내고 있다.
이들은 날개라도 단 것처럼, 기술 개발 과정에서 망설임도 없다. 결과물의 성공 여부 때문에 개발 단계에서 전전긍긍하던 풍경도 사라졌다. 세상을 덮친 코로나 공포와 절박함 속에 그런 조심성이나 신중함따윈 사치일 뿐이다. 기술 툴의 도입이 빨라졌고 개발을 위한 장벽도 없어졌고, 새로운 툴을 과감히 시험해보며, 영상과 AI를 활용한 도전 정신도 하늘을 찌를 듯하다. 코로나 이전엔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들이다. 정확히 말하면 코로나가 선사한 기술의 황금기요, 본격적인 4차산업혁명기의 개막이다.

애당초 4차산업혁명은 20세기 전자적 산업혁명과는 달리, 하이퍼 링크에 토대를 둔 것이다. 좀 우회적인 표현으로 서사적 선형성(linearity)을 파괴하는 것이다. 무한한 상상력을 빌미로 밑도 끝도 없이 문명 서사의 목차를 조작하는 것이다. 앞서 일어난 어떤 사건이나 법칙이 그 다음 사건의 전 단계가 되고, 또 하나 법칙의 밑돌이 되어온 만사 이치와 고리를 깬 것이 4차산업혁명이다. 발칙하게도 자연법칙의 생성과 소멸, 인간과 생명체의 본질까지도 넘보는 지경이 된게 디지털혁명의 패러독스다. 공상과 가상과 현실이 뒤죽박죽되고, 무와 유가 피드백하며, 경험과 본질이 뒤범벅된다. 예측 불가한 어떤 조건들이 문명의 서사를 뒤틀고 변형시키며, 그렇게 변질된 하이퍼텍스트가 문명을 채워간다. ‘코로나 19’는 어느날 갑자기 그런 돌연변이의 불씨를 점화했다.

“일상이 정상화되면…”이라는 기대가 요즘 많다. 하지만 이젠 과연 ‘정상’이 어떤 것인가를 물어봄직 하다. 그 행간엔 지구를 황폐하게 한 인간의 횡포와, 그악스런 물질문명의 욕망이 되살아나야 하는가라는 물음도 있다. 한켠으론 기술과 인간의 화해에 대한 소망도 들어있다. 기술에 의한 인간성의 배제나, 3차산업혁명 시대에 창궐했던 인간소외는 더 이상 용납해선 안 된다는 되물음이기도 하다.
애초 인간소외는 기술에 의한 불평등에서 심화되었다.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엔 어떨까. 클라우드 컴퓨팅과 사이버보안 같은 신종 화이트컬러 기술직이 떠오르면서 학벌이나 학위는 필요 없게될지도 모른다. 단지 디지털 기술과 역량, 자유로운 상상력의 총량이 중요하다. 기술과 협업하며, 자동화와 AI 등을 인간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활용할 준비와 의사와 능력이 대접받는다. 전(前)디지털 시대의 ‘스펙’이나 인연 따위에 얽매이지 않는다. 세팅된 프레임 대신 프로젝트별 채용이 보편화되고, 수직형 직장문화가 아닌, 재택근무를 통한 탄력적 일상에 익숙한 유능한 자들이 최고의 인재다. 나이나 성별, 인종 따윈 필요없다. 기술은 그렇게 인간 평등의 발판 역할을 하며, 인간성과 기술의 화합을 통해 인간을 존재의 주인으로 승격시킬 수도 있다.

그런 때 아닌 변혁은 ‘경계’의 파괴와도 맞닿는다. 종래 기업들은 흔히 이노베이션을 추구한다곤 했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감정과 욕구에 충실할 때가 많다. 그들 자신조차 별로 사고픈 생각이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곤 “이거야말로 고객들이 원했던 것”이라고 나르시시즘에 취하곤 한다. 그리곤 망해버린다. 소비 대중과 바깥 세상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곳을 자신들과 다른 것들로 가득 찬 별개의 장소로 인식한 탓이다.
최근 IT업계는 ‘코로나’ 와중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런 경계를 해체했다. ‘우리와 그들’, 생산자와 소비자를 일체화하고, 경쟁업체를 포함한 세상과 자신을 구분짓는 경계를 무너뜨린 바람에 신기술과 새로운 상상력이 봇물터지듯했다. 그래서 본격적인 디지털혁명의 뇌관을 건드리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은 그야말로 ‘하이퍼’한 전복과 도치이며, 기술적 특이점(singulariy)의 현실화다. 그 배후에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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