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분석 “민간 ‘스테이블 코인’, 중앙은행 ‘CBDC’ 발행 촉진”

사진은 한 기업체의 암호화폐 채굴 시설로서 본문 기사와 관련없음.
사진은 한 기업체의 암호화폐 채굴 시설로서 본문 기사와 관련없음.

‘코로나19’ 사태 이후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나 민간의 스테이블 코인 등 디지털 화폐 발행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현금이나 플라스틱 카드를 기피하는 비대면 거래로 인해 세계 주요국에선 디지털 화폐의 제도권 도입이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반면에 장기적 경기침체 우려나 디지털 소외계층의 저항으로 CBDC 제도화가 늦춰질 가능성도 병존한다”며 이같이 전망했다. 연구원은 25일 ‘글로벌 기업과 주요국의 디지털 화폐 발행 현황과 시사점’이란 장문의 연구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과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의 실태와 함께 ‘코로나 19’ 이후의 동향을 면밀히 분석, 전망해 눈길을 끌고 있다.

디지털 화폐 도입 또는 공용화 기정사실로 
연구원은 따르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중국 등 세계 주요국은 디지털 화폐를 이미 도입했거나, 공용화를 기정사실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암호화폐는 애초 지나치게 가격 변동폭이 크고, 교환, 가치, 회계단위 등 화폐의 기본 기능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암호화폐의 불안정성을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이 등장했다. 지난해 6월 페이스북이 세계적으로 통용 가능한 스테이블 코인(Stablecoin)인 리브라(libra)를 발행하기로 하면서 기존의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와 스테이블 코인, CBDC의 세 가지 디지털화폐 개념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스테이블 코인은 그 발행 주체가 민간이라는 점이 취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에 각 중앙은행이 나서 현금 대신 결제를 간소화할 수 있는 디지털 화폐인 CBDC를 본격 도입하거나, 계획하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가 덮치기 직전인 지난 1월 현재 이미 캐나다, 영국, 일본, 유럽연합, 스웨덴, 그리고 스위스를 포함한 6개 중앙은행이 CBDC 연구그룹을 구성한 것도 그런 흐름의 일환이다.

테더, 리브라 등 스테이블 코인 광범위한 보급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민간 발행 디지털 화폐는 기존 화폐 및 자산과의 연결성에 의한 가격의 안정성이 주요 기준인 반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는 정보의 추적 가능성에 따른 안정성을 주요 기준으로 분석, 조사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민간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 리브라, JPM 코인 등이 그 대상이며, 각국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이와 비교해 현황과 향후 추세를 조사하고 전망했다.
이에 따르면 현재 가장 유통량이 많은 글로벌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Tether)는 가격 변동성이 큰 다른 암호화폐와 달리, 발행한 디지털 화폐를 법정 화폐에 페그(peg)함으로써 안정적 자산 가치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전체 스테이블 코인 중 80%가 넘을 정도로 가장 널리 쓰이는 스테이블 코인 중 하나다. 더욱이 미국 달러화에 페그됨으로써 USD₮로 표시되며, 1USD₮=1USD의 가치를 지니고 법정 화폐와 1:1로 교환될 정도다. 2020년 3월 16일까지 발행된 USD₮는 46억 달러로 스테이블 코인 중 가장 많이 유통되고 있으며, 암호화폐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다. 그러나 보고서는 “그처럼 많은 공급량과 거래량에도 불구하고 유통과 운영의 투명성과 지급능력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는 지적”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스테이블 코인의 원조격인 페이스북의 ‘리브라’는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화폐의 정석이라고 할 만하다. 애초 페이스북은 “은행 없이도 빠른 사용자간 송금과 일반 화폐와 같은 물품 구매가 가능한 ‘글로벌 디지털 화폐’ 및 금융인프라를 구축할 것”이라고 리브라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페이스북에 따르면 리브라는 여러 통화 가치에 바스켓 형태로 고정된 스테이블 코인(Libra Coin(≋LBR)) 뿐만 아니라, 각국 법정 화폐와 1 : 1로 연동되는 다수의 스테이블 코인과 연계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현재 리브라(≋LBR)의 바스켓은 미국 달러(50%), 유로(18%), 엔화(14%), 영국 파운드(11%), 싱가포르 달러(7%)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비록 테더보다 거래량은 적지만, 테더가 주로 암호화폐 거래용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전 세계 24억 명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페이스북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자 무기로 꼽힌다. 또 페이스북의 자회사인 칼리브라가 개발 중인 전자지갑 칼리브라 월렛(Calibra wallet)에 리브라가 거래‧저장되고, 세계 각국의 사용자들이 페이스북 메신저와 왓츠앱 등을 통해 손쉽게 리브라를 거래할 수 있다는 점도 테더와는 다른 차별화 포인트다.
그러나 리브라도 허점이 있긴 마찬가지다. 디지털 화폐로서 국제 통화 및 금융 시스템에 위험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어 각국이 적절한 규제와 감독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기관 간 거래 국한 ‘JPM 코인’도 등장
한편 미국의 JP모건도 멤버십이 제한된 기관간 거래를 목적으로 한 ‘JPM 코인’을 준비하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미 시범적으로 송금 테스트까지 마친 상태인 것으로 알려진 JPM 코인은 출시 단계부터 달러에 페깅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특히 기관만을 멤버십으로 제한한 프라이빗 코인인란 점이 특징이다. 즉, 전 세계 JP모건의 회원사 및 제휴 은행들이 기업‧기관 간 대금 결제나, 증권 거래, 국가간 송금을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발행 주체는 물론 중앙관리자인 JP모건이며, JP모건이 거래를 승인하고, JPM 코인 발행 권한을 갖는다. 이는 그래서 일반 대중이 아니라 기관회원 간 거래에만 사용될 예정이다. 고객이 계좌에 예치한 액수만큼 고객에게 JPM 코인이 전송되며, 1달러당 한 개의 JPM 코인이 발행되거나 상환된다. 발행된 코인은 블록체인상에서 다른 JP모건 회원사와의 거래에 쓰인다. 그 발행자로서 JP모건은 발행량과 동일한 액수의 달러화 현금을 보유해야 하는데, JP모건체이스가 미국 최대 규모의 은행인 만큼 다른 스테이블 코인 발행기관에 비해 안정적인 현금 보유와 지급이 가능할 것이라는 평가다.
연구원은 이런 이유로 “JPM 코인은 기존 암호화폐의 익명성 및 탈중앙화의 특성과는 달라서, 암호화폐로 분류될 수 있을지 논란꺼리”라며 “향후 개인회원에게도 사용 범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어 추이를 지켜볼 만 하다.”고 했다. 반면에 보고서는 “기존의 은행서비스와 비슷해 디지털 인증서(digital certificate)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므로 탈중앙화된 블록체인과 기존의 중앙화된 은행 간의 타협이 어떻게 구현될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가장 적극적으로 CBDC 도입 박차
이같은 민간의 스테일블 코인과는 다른 중앙은행에 의한 디지털화폐도 한층 활성화될 전망이다. 특히 중국이 가장 적극적이다. 중국은 2020년 이른바 ‘CBDC 시범운영계획’을 발표하였고, 유럽도 CBDC 도입을 전제로 한 검토와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은 이미 지난 2014년 디지털 화폐 발행 연구를 시작한 이래 CBDC 발행을 적극 추진해왔다. 다만 중앙통제 방식의 디지털 화폐로서 기존의 블록체인 기술과는 차별화된 기술을 사용할 전망이다. 보고서는 “그러나 중국 CBDC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관련 법제의 정립과 금융리스크 관리기제의 마련, 프라이버시에 대한 사용자 우려 불식 등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현금 사용량이 줄고 있는 북유럽 국가의 경우 소액결제용 CBDC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유럽 전체 국가들도 한층 안전하고 효율적인 금융 거래를 위해 거액결제용 CBDC에 대한 검토와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스웨덴의 경우는 이미 ‘e-krona(e 크로나)’를 시범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한국은행도 TF구성, 본격 연구 돌입
그렇다면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 역시 지난 2018년 1월 한국은행이 가상통화 및 CBDC 공동연구 TF를 출범시킨 후 도입과 실용화를 위한 연구와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
TF는 가상통화가 지급결제 시스템 및 금융시스템 전반에 미치는 영향과 함께 CBDC 발행 문제도 심도있게 논의해왔다. 그 결과 지난 4월 한국은행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파일럿 테스트를 추진할 것으로 공개했다. 보고서는 “당시 한국은행은 국내의 현금 수요 및 높은 수준의 금융포용도를 고려할 때 CBDC 발행 필요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하였으나, 민간부문의 사장 확장성에 대한 예측 불가능성이 존재하므로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 및 테스트를 실시했다”고 전했다. 현재는 한국은행 금융결제국 디지털 화폐연구팀 및 기술반이 CBDC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원은 이번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 코인과 CBDC는 그 정의와 설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그 파급효과에 대한 정확한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스테이블 코인 및 CBDC을 도입하면 은행시스템 붕괴 우려에 따른 금융 불안정성도 존해한다”고 신중한 결론을 내렸다.
일단 피상적으로는 ‘코로나 19’에 의한 비대면 결제의 대중화로 디지털 화폐 도입이 촉진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충격으로 인한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거나, 특히 디지털 소외계층에 대한 우려가 존재할 경우 디지털 화폐 대중화가 지체될 수도 있다”고 부정적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인터넷이나 모바일 핸드폰을 이용한 거래나 배달시스템이 매우 활성화되어 있어 당분간 디지털 화폐가 크게 주목받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는 시각이다.

류정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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