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화상회의로 인한, 이른바 ‘줌 피로(Zoom fatigue)’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줌’으로 화상회의를 하면서 느끼는 피로감과 심리적 불쾌감, 스트레스 등을 일컫는 말이다. 회의 도중 대화가 끊겨 불편하거나 혼선을 겪기도 하고, 화면에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비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혹자는 화상회의에 참여한 모두가 자신만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다고 하고, 영상통화 내내 화면에 시선을 고정해야 해서 심한 압박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는 ‘줌 피로’라기보단, 화상회의가 주는 피로라고 해야 맞다. 때론 현대인에게 절실히 필요한 ‘고독할 자유’조차 주지 않는 접속시대의 피로감과도 닮았다. 하긴 화상회의나 영상통화 뿐 아니다. 접속사회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페이스북은 더하다. 말 그대로 ‘페이스 vs 페이스’에서 오는 긴장과 피로감이 대단하다. 한 단어, 한 구절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기도 하고, 댓글 한 토막이 천 갈래 만 갈래의 구설수를 낳는다. 그럴 때마다 당사자가 느끼는 상처나 고통은 말할 것 없다.

그럴 때면 “나와 똑같이 생긴 누군가가 나를 대신할 수 없을까” 싶다. 온갖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공간에서 ‘아바타’가 있어 내 대역을 했으면 싶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공상이 페이스북에 의해 가장 먼저 현실화되었다. 페이스북은 미국의 사용자들이 페이스북 메신저와 스토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바타 만드는 법을 내놓았다.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아바타를 통해 스티커를 보내거나 댓글에 사용할 수 있게 했고,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할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아직은 캐리커춰를 조금 업그레이드한 초보 수준이다.

이에 질세라 화상채팅과 회의에선 제대로 된 아바타가 마침내 등장했다. 미국의 한 스타트업 회사가 화상회의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아바타를 생성할 수 있도록 해주는 앱을 개발한 것이다. 애플은 아예 화상회의를 오로지 아바타들로만 채울 요량으로 앱을 개발했다. 애플은 온라인 회의에서 3명의 미모지(Memoji) 캐릭터가 맥북 앞에 앉아있는 광고 이미지를 공개했다. 미모지는 애플 사용자가 애플 메시지 앱에서 생성할 수 있는 아바타다. 피와 근육질이 생동하는 인간은 그 자리에 없다.

바로 실용화에 들어간 화상채팅 아바타는 ‘줌 피로감’에 찌든 사람들에겐 참으로 요긴하고 기특한 녀석이다. 내 표정과 몸짓을 실시간으로 흉내 내주고, 대신 회의에 참여해서 대화 상대방을 식별하며, 몇 시간이고 카메라 앞에 있어준다. 내 음성을 빌려 대화를 하고, 나의 표정을 상대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하며 카메라를 주시하는 동안, 나는 유유자적 커피를 마시면서 딴 짓을 하든 뭘 하든 상관없다.

그러나 아바타는 어디까지나 아바타일 뿐이다. 가상의 나(Imaginary Self)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를 두고 마냥 허상이나 가상의 것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디지털 사회와 ‘가상 현실’의 현실에선 실제보다 더 쓰임새가 있는 가상적 현존이라고 할 만 하다. 모든 것이 접속과 접속으로 이어지는 세상에선 욕망과 소유를 위한 모든 처절한 노력들이 네트워크상의 표정없는 무심한 접속으로 대체된다. 사이버와 가상공간이 현재적 삶의 무대가 되며, 그에 맞는 가상의 주역들이 무대를 채우며, 삶을 이어가는 것이다. 아바타는 그에 맞게 생성된 ‘존재’다. 그렇다고 ‘인간’자체가 배제되었다고 단언하긴 어렵지만, 가상의 공간과 가상의 언어와 존재들이 실상의 ‘인간 관계’를 뛰어넘는 현실을 이젠 순순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디지털혁명은 사이버 세상과 무한기술의 천국이다. 마침내 이젠 ‘나’라는 실존을 가볍게 복제하는 가상의 것들에게 세상의 열쇠를 맡기기에 이르렀다. 본질적으론 이는 만물에 대한 기존의 관념을 깨는 노력, 즉 ‘A=B’를 부정한 탈유형화가 생산한 또 하나의 기묘한 서사다. 하긴 실존적 삶 자체가 힘겹다보니, 그간의 세상 자체도 온통 아바타였다. 거기에 더해 디지털 세상은 진솔하게 아바타를 형상화했다. 실제 인간 대신 아바타를 디지털 세상의 주역으로 등극시킨 것이다. 그 옳고 그름은 두고 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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