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중이라도 국솥의 불은 꺼지지 않아야 한다”
“상중이라도 국솥의 불은 꺼지지 않아야 한다”
  • 유성문(먼빛)
  • 승인 2020.05.2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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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음식노포2-해장국의 원조 청진옥

지난해 일이다. 청진옥은 정초부터 자고나니 졸지에 ‘예전 맛을 잃은 식당’이 되고 말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을지면옥과 양미옥이 포함된 지역의 재개발 중단 방침을 밝히면서 하필 예를 들어 “청진옥도 재개발로 자리를 옮긴 뒤 맛이 달라졌다”고 말한 때문이다. 청진옥은 개업 71년 만인 2008년 7월 청진동이 재개발되면서 원래의 자리에서 80m쯤 떨어진 르미에르빌딩으로 옮겼다가, 2016년 인근에 독립 건물을 마련해 두 번째로 이전했다.

“박원순 시장께서 2011년 지방선거 때 저희 가게에 오셨는데 오랜만에 오셔서인지, 아님 바쁜 일정 때문인지 그때 맛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신 것 같네요.”

당시 최준용 대표는 담담하게 웃어넘겼다. 청진옥은 서울 음식 노포(老鋪)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다. 1937년 문을 열어 창업주의 손자인 최 대표가 3대째 이어오고 있다. 그는 “저희 가게 단골손님의 평가는 ‘옛 맛 그대로’라는 분들과 ‘예전만 못하다’는 분들이 늘 엇갈린다”며 “예전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운영할 때도 그랬다”고 했다. 그러면서 “음식 맛이야 누구나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이지만 청진옥의 맛은 예전과 다름없이 유지되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덧붙였다.

1937년 처음 문을 연 청진옥은 2008년 청진동 재개발에 따라 옛 피맛골에 들어선 르메이에르빌딩(왼쪽)으로 옮겼다가 2016년 지금의 건물(오른쪽)로 두 번째 이전했다. 여전히 손님들은 ‘예전 청진옥’을 그리워한다. 그래도 온전하게 남은 것은 ‘서민들이 허기를 메워주던 청진옥의 마음’이다.
1937년 처음 문을 연 청진옥은 2008년 청진동 재개발에 따라 옛 피맛골에 들어선 르메이에르빌딩(왼쪽)으로 옮겼다가 2016년 지금의 건물(오른쪽)로 두 번째 이전했다. 여전히 손님들은 ‘예전 청진옥’을 그리워한다. 그래도 온전하게 남은 것은 ‘서민들이 허기를 메워주던 청진옥의 마음’이다.

최 대표는 2008년 가게를 옮길 때 전에 쓰던 집기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새 식당으로 옮겨왔다. ‘이사 가더니 변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나름 신경을 기울인 것이다. 그럼에도 ‘새 청진옥’을 찾는 손님들도 여전히 ‘예전 청진옥’을 그리워한다. 르메이에르빌딩으로 가게를 옮겼을 때는 2, 3년이 지나도 옛 장소를 찾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한동안 예전 ‘그 장소’에 안내인을 세워두기도 했다. 최 대표가 “오래된 가게가 없어지게 되면 추억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에 노포를 보존하자는 주장에 일부 공감한다”는 것도 그런 경험에서 연유한다.
청진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해장국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에는 해장국집이 아닌 국밥집이었다. 전날 마신 술을 해장하는 것이 아닌 첫새벽부터 서민의 주린 배를 채워준 식당이었던 셈이다. 손님들은 새벽 일찍 나물이나 땔감 등을 운반하던 일꾼이 대부분. 이른 아침 주린 배를 채울 국밥을 먹으면서 막걸리 한두 잔쯤 기울였을 것이다. 지금도 청진옥은 24시간 문을 연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른 새벽부터 힘들게 일하는 이들의 주린 속을 채워주던 그 마음이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청진옥의 2대 주인이었던 최 대표의 아버지는 “상중(喪中)이라도 국솥의 불은 꺼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청진옥은 연중무휴로 24시간 영업한다. 80여 년 동안 숱한 이들이 해장국 한술에 숙취를 깨끗이 씻었다. 해장국에 내포 한 접시를 시켜놓고 대낮부터 차가운 소주를 들이키는 이들도 제법 많다. 이런 풍경은 새벽녘까지 이어진다.
청진옥은 연중무휴로 24시간 영업한다. 80여 년 동안 숱한 이들이 해장국 한술에 숙취를 깨끗이 씻었다. 해장국에 내포 한 접시를 시켜놓고 대낮부터 차가운 소주를 들이키는 이들도 제법 많다. 이런 풍경은 새벽녘까지 이어진다.

청진옥의 대표 메뉴는 선지와 양, 우거지를 푸짐하게 넣고 끓여낸 선지해장국이다. 선짓국은 일반적인 해장국과 달리 맑고 깔끔한 국물이 특징이다. 얼큰한 맛을 원한다면 고추장으로 만든 다진 양념이나 고춧가루를 넣어 먹을 수 있다. 싱싱하고 큼지막한 선지와 내장이 듬뿍 들어있어 건더기 맛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콩나물과 우거지는 시원한 국물 맛과 식감을 풍부하게 해준다. 반찬은 깍두기와 고추장아찌만으로 단출하게 내놓지만 맑은 국물과 꽤 잘 어울린다. 술안주로는 내포가 있다. ‘내포(內包)’는 내장 수육을 뜻한다. 말랑한 수육이 입안에 넣자마자 고소한 육즙을 뿜어낸다. 든든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다.
‘해장국(解腸-)’은 이름처럼 ‘꼬인 장을 풀어준다’는 의미를 지녔으며, 해장국의 원래 이름이라는 ‘해정국(解酊-)’은 ‘숙취를 풀어준다’는 뜻이다. 술로 시달린 속을 풀기 위해 먹는 국물음식으로, ‘술국’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해장은 꼭 술을 먹지 않았더라도 이른 아침 배배 꼬인 장을 시원하게 풀어준다는 일상적 의미로 쓰인다. 해장국은 지방에 따라 재료와 끓이는 방법이 달라 제각기 특유한 맛을 낸다. 서울지방의 해장국은 소의 뼈를 푹 고아서 끓인 국물에 된장을 삼삼하게 풀어 넣고 콩나물·무·배추·파 등을 넣어 끓이다가 선지를 넣고 다시 한번 푹 끓인 일종의 토장국이다.

청진옥은 선지와 양, 우거지를 푸짐하게 넣고 끓여낸 선지해장국이 대표 메뉴다. 뻑뻑하고 잡다하게 많은 것이 들어간 게 아니고 선지 한 덩이와 내장고기 몇 점이 들어있어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대파 이외엔 특별히 넣은 것도 없지만 국물은 첫맛부터 뒷맛까지 시원함을 강조한다.
청진옥은 선지와 양, 우거지를 푸짐하게 넣고 끓여낸 선지해장국이 대표 메뉴다. 뻑뻑하고 잡다하게 많은 것이 들어간 게 아니고 선지 한 덩이와 내장고기 몇 점이 들어있어 시원하고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대파 이외엔 특별히 넣은 것도 없지만 국물은 첫맛부터 뒷맛까지 시원함을 강조한다.

서울의 해장국은 예로부터 청진동의 것이 유명했다. 동네 구석마다 해장국을 파는 가게들이 스며있게 마련이지만 종로 청진동은 그야말로 ‘해장국의 메카’였다. 이 땅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거리에 청진동이 있었다. 육의전거리 종로와 광화문을 지척에 두고 있는 까닭에 종로 시장통에 새벽일을 나온 장사치도, 밤늦도록 야경을 돌고 그제야 집에 가는 이들 모두가 청진동에서 해장국 한 뚝배기로 속을 풀었다. 청진동 해장국골목이 전국적으로 얼마나 유명했던지 골목이 있던 ‘피맛골(避馬-)’이 선짓국이 맛있다는 ‘피맛골(血味-)’로 잘못 이해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경복궁이 들어서고 종로가 나라 제일의 번화가가 되었을 때 서민들에게 그 길은 피하고 싶은 길이었다. 무시로 말이나 가마를 탄 양반들의 행차가 지날 때마다 엎드려 머리를 조아려야 하니, 그 죽을 맛을 피해 뒷골목으로 스며든 것이 ‘피맛골’의 유래가 되었다. 피맛골이 서민들의 전용로가 되면서 골목에는 그들을 상대로 한 저렴한 음식점들이 자연스레 밀집되었고, 그 명맥은 근대화와 도심팽창의 와중에서도 연면히 이어져왔다. 하지만 말은 피할 수 있어도 세상의 변화는 끝끝내 피할 수 없었던 것일까. 600년 서민의 애환이 담긴 골목길은 2012년 종로3가 일부구간만을 남겨 특화거리로 조성한다는 계획 발표와 함께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이 되고야 말았다. 하지만 청진옥 같은 노포들의 추억이 있는 한 피맛골은 여전히 ‘서민들의 땅’으로 살아남아 있으리라.

청진옥 인근의 청진공원에 조성된 ‘시간의 주춧돌’. 조선시대 시전행랑의 정초석을 이전 전시했다. 마을 입구에 위치해 출입과 화재를 감시했던 정자의 초석이다. 재개발로 숱한 추억들이 사라졌지만 청진옥은 ‘늘, 여전한 음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청진옥 인근의 청진공원에 조성된 ‘시간의 주춧돌’. 조선시대 시전행랑의 정초석을 이전 전시했다. 마을 입구에 위치해 출입과 화재를 감시했던 정자의 초석이다. 재개발로 숱한 추억들이 사라졌지만 청진옥은 ‘늘, 여전한 음식’으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 애플경제 = 유성문(먼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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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지서(위영) 2020-06-05 09:26:17
살다보니 형편상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 홀로 산지가 13년 째다. 점심과 저녁은 매일 사먹는다. 그러니 즐겨 찾는 집이 1인분을 파는 집이다. 혼자가서 먹을 수 잇는 음식이 재한적이다. 그 중에서 해장국, 설렁탕, 추어탕, 냉면, 짜장 등은 1인분을 팔기에 자주 이용한다.

종로 피맛골 식당은 서울에 있을 때나 지방(인천)에 살 때에도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 들리면서 가던 음식점이다. 지금은 르미에르 빌딩이 들어서 옛날 음식점이 사라지고 없으니 아쉬울 때가 많다.

청진옥도 몇 번 가 보았으나 지금의 맛은 옛 맛이 아닌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나 . 유작가의 글을 보니 내 입맛이 변했나 보다.

세월이 변해도 변함없이 그대로 있는 집도 필요하다. 이런 집은 더욱 애용해 주고 정부에서도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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