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코로나19’는 사람이 사람을 멀리하게 했다. 타인에 대한 혐오까진 아니더라도, “타자는 나의 지옥”이란 사르트르의 언설을 앞뒤 맥락 잘라낸채 그냥 실감하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 날로 융성하는게 ‘언택트’(Un-Tact) 산업이다. 얼굴을 서로 대하지 않고 IT기술을 빌려 일과 사람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다. 

‘언택트’ 산업은 인간 삶의 태도와 형태를 송두리째 디지털화(化)한 것이어서, 종래 온라인 비즈니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기업문화는 물론, 사람 간의 온갖 모임이나 행사, 레저, 금융, 쇼핑, 교육, 심지어 인간의 정서적 관계까지 비대면으로 바꿔놓고 있다. 작게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손 대신에 센서로 작동하는데서부터, 인재를 선택하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고, 나의 인생 파트너를 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비대면으로 이뤄진다. 최근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 셋 중 하나는 사람을 뽑을 때 직접 면접을 보는 대신 온라인 채용을 하고 있거나, 계획 중이라고 한다.

언택트 세상에선 일단 ‘현장’의 개념부터가 달라진다. 가상과 실제의 경계가 없어지는 것이다. 가상기술이나 증강기술로 현장의 매대나 진열 상품, 가격표, 품질 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둘러보고 주문만 하면 된다. 3차원 공간의 상점이나 매장에 가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박람회나 전시회도 마찬가지다. 굳이 감염병 걱정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밀폐된 전시장에 오게 할 필요가 없다. 그저 VR을 통해 현장 부스를 들여다볼 수 있게 하고, 필요할 경우 VR 투어 파노라마 영상으로 좀더 세세히 살펴보게 한다. 관람객들이나 바이어들은 오히려 실제 공간(Actual Reality)보다 더욱 실제 같은 형질과 형상을 파악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언택트’는 태고 이래의 인류적 삶을 뿌리체 바꿔놓고 있다. 그렇다보니 부정적 측면도 많다. ‘콘택트’(contact, 접촉)를 통해 만끽할 수 있었던 숱한 행복의 조건들을 포기하게 할 수도 있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한자 ‘人’이 상형하는, 사람에 대한 의미의 상실이다. 상호의존성, 인간애, 공감과 신뢰가 그런 것들이다. 그런 기본적인 인간 조건이 행여 실종될까 우려스럽다.

하긴 온라인 대면과 네트워크 상의 실시간 스킨십은 공유경제의 이름으로 이미 낯설지 않다. 코로나 이전부터 언택트의 삶이 실험되고 있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언택트’는 진작에 3차 산업혁명 시절부터 비즈니스의 경로로 작동해왔다. 생전 얼굴 한번 볼 기회없는 지구촌 반대편의 생산자와 소비자가 ‘파트너’가 되었고, 마침내는 사이버 소통과 네트워크로 이어져왔다. 그렇다면 이제 가속화된 언택트한 세상이 돌파해야 할 벽이 있다. 몸이 따로 노는 양자 간, 혹은 다중(多衆) 간의 장벽을 없애는 것이다.

최근 SK텔레콤의 이른바 ‘인(In)텍트’(Interactive Untact) 면접은 그래서 모종의 힌트를 던진다. 이는 비대면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하되, 영상 그룹 방식으로 서로가 소통하는 집단 면접 방식이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어 보일지 몰라도, 여러 명의 ‘타자(他者)’들이 함께 참여하고 소통한다는 점에서 분명 다르다. 멀리 떨어져있음에도 서로가 서로의 안면과 표정을 읽으며 내면세계의 ‘컨택트’가 가능한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그처럼 언택트한 세상일수록 내면의 공간을 공유하는 ‘공감’이 필수다. 3차원의 공간을 격하고 있어도 공감의 유전 인자가 활발하게 공유되면, 삭막한 디지털 사회가 그나마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사회적 이성과 지능, 따스한 감성의 산물이 남아있는 세상이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다. 결코 ‘타자는 나의 적’이 될 수 없다. 사르트르도 애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타자란, 나와 나 자신을 연결해주는 필수 불가결한 매개자’라는게 그의 본심이다. 타자는 나의 존재근거이며, 내가 내면화할 주체성과 자유의 소유자라고까지 예찬했다. 그렇다면 인간인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타자도 아니요, 적도 아니다. 서로에게 꼭 필요한, 가장 소중한 ‘컨텍트’의 대상인 것이다. 그야말로 ‘언택트’ 시대가 던지는 역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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