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영국의 저널리스트 칼 오너리는 ‘느린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뭘 하려고 그렇게 빨리 가는지를 돌아봐야 한다는 얘기다. 소유보단 존재의 삶에 대한 천착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IT와 디지털화가 대세인 지금 세상에선 자칫 ‘한가한 소리’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과속에 중독된 나머지, 나들목(IC)에 접어들기라도 하면 참을 수 없는 것과도 같다. 

지금의 모든 산업 생태계는 디지털로 성형되고 있다. 마치 빛의 속도에 도전이라도 하듯, 이진법적 디지털 코드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그 마저도 답답해서 앳지 클라우드니 쿠버네티스니 하며 초스피드의 희한한 유통 기술까지 창안했다. 그야말로 속도적응(Velocitization)의 시대다. 속도에 익숙하고 중독되면 일단은 빠르고 지배적이고, 공격적이다. 남보다 빠르기 위해 서둘러 분석하고, 동적이며, 질보다 양을 추구한다. 당연히 과열되고, 고장이 날 수 밖에 없다. 

애플이 아이패드로 파란을 일으키던 시절, 초조해진 구글은 서둘러 태블릿 PC에 최적화된 ‘안드로이드 3.0 허니콤’을 공개했다. 안드로이드가 ‘큰 화면’으로 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나름대로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새로운 R&D에 최적화된 환경도 구축하지 못했고, 그 핵심이라고 할 개발자들은 정작 뒤늦게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결국 애초 신제품을 통해 구현하려는 비전은 실종되었고, 개발과 업그레이드를 위한 집중력도 급격히 떨어졌다. 안드로이드 태블릿은 이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구닥다리’로 전락할 수 밖에 없었다. 경쟁사를 지나치게 의식한 나머지 과속이 부른 패착이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 경쟁의 결정타로 여겨졌던 삼성 갤럭시 5G폰도 마찬가지다. 인터넷 상에선 갤럭시5G폰에 대한 이런저런 불만과 민원이 아직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개중엔 이유없는 발열현상이나, 화면 깜빡임, 통화 끊김 현상을 호소하는 사용자도 있고, 폰이 너무 커서 불편하다는 볼멘 소리도 있다. 물론 소비자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라고 간단히 치부할 수도 있지만, ‘삼성’이라는 글로벌 기업이 갖는 무게감에 비춰 결코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돌아보면 애플, 화웨이 등과 벌였던, ‘5G’ 고지 선점 경쟁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빨라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고 ‘슬로(Slow)’가 항상 느린 것만은 아니다. 차분하고 신중하고, 여유롭고, 반성적이며, 양보다 질을 추구하므로 더 실속이 있다. 오히려 주어진 과제를 슬로 방식으로 수행할 때 더 빠르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클라우드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소비자들은 특정 클라우드 업체에 종속되는 것을 싫어한다. 이런 소비자들의 욕구를 헤아리며, 장고 끝에 내놓은 구글의 워크로드 관리형 쿠버네티스인 ‘안토스’는 아직도 명품으로 꼽힌다. 시장과 소비자의 욕구를 세심하고 신중하게 반영한 첨단 클라우드 제품으로 주목받고 있다. 아마존 AWS나 MS 애저도 서둘러 유사한 제품을 내놓았지만, 구글 안토스엔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때 경영학 교과서의 단골이었던 19세기말의 경영 컨설턴트 프레데릭 테일러의 무덤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정해진 시한에 주어진 과업을 기계처럼 해내야 했던 테일러 시스템은 스피디하고 정밀하게 쪼개진 시간에 ‘사람’을 맞추었다. 결국 스트레스와 과로, 실수, 오작동으로 노동생산성이 형편없어지고, 테일러 시스템은 폐물로 버려졌다. 애초 14세기 공용시계가 등장하면서 시계시간(Clock Time)이 자연 시간(Natural Time)보다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현대에 이르러선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참지못해 스마트폰이라도 봐야 하는 ‘멀티태스킹’으로 비화하고 있다. TV나 인터넷에선 패스트 싱커(fast thinker) 강사도 등장한다. 오랜 숙고와 사유가 필요한 인생 현안조차 패스트 푸드 자판기마냥 단 1~2초만에 현답(?)을 하사하는 신적 인간들이다. ‘인간은 시간을 재고, 시간은 인간을 잰다’는 이탈리아 속담이 딱 들어맞는 풍경들이다.

독일어로 ‘아이겐자이트(eigenzeit)’는 모든 생명체, 사건, 과정, 대상에는 그것만의 고유한 시간이나 속도가 있다는 뜻이다. 자신만의 능력과 성능에 맞는 시간, 즉 ‘템포 기우스토’와도 같은 말이다. 빠른 것이 반드시 빠른게 아니다. ‘슬로섹스’가 강렬한 섹스보다 낫다는 얘기도 있다. 속도가 생명이라는 디지털 시대에 새겨둘 만한 얘기들이다. 애초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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