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이젠 얼굴이 그 사람의 신분증이자 명함인 시대가 오고 있다. 길에 지나가는 아무나 사진을 찍어 안면인식 소프트웨어와 소셜미디어를 결합하면 주민등록번호는 물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안면인식기술은 그렇게 우리의 삶과 체험 방식을 송두리째 뒤엎으며, 일상의 필수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런 기술을 가장 극성스레 개발해 써먹는 곳 중 하나가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에선 이미 가입자의 얼굴을 태그하는게 새로운 것도 아니다. 요즘엔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들 속의 사람들을 태그하여 그 사진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를 즉각 알아내는 기술도 추가했다. 그 숫자가 몇 조나 될지 모를, 페이스북에 올라있는 사진 속 얼굴들의 신상정보를 손 안에 쥐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에 가입한 전지구적 시민들이 이제 이 회사가 짜놓은 판옵티콘에 갇힌 셈이다.

안면인식에 의한 실시간 신상털이는 곧 돈으로 연결된다. 광고주들과 또 다른 목적의 앱 개발자들에게 제공할 만한 정보가 많아질수록, 페이스북의 매출도 늘어난다. 돌이켜보면 페이스북은 수시로 개인정보를 악용해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 전과가 있는 페이스북인데, 억만금의 돈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판에 프라이버시 따위를 안중에 둘리 만무다. 그간 축적하며 꼼꼼하게 태그된 사진들을 언젠가는 노다지를 안겨주는 수단으로 써먹을 것이다.  태그된 사진들은 또한 탐욕스런 해커들의 먹잇감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안면인식기술은 비단 돈벌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 FBI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치안당국은 이 기술로 사진속 인물들의 정보를 파악하는 작업을 합법화하고 있다. 용의자의 사진은 있지만, 신원 파악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얼굴 사진만 보고도 단박에 범인의 모든 것을 알아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안면인식기술은 필수라고 한다. 문제는 그렇게 선한 동기가 아닌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이다.

신용카드나 QR코드도 필요없이, 안면인식기술로 특정인의 24시간 동선이나 평소 습관을 ‘부처님 손바닥’처럼 들여다볼 수 있다. 더욱이 카메라와 컴퓨터만 있으면, 시위군중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원을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런 식이라면 지난 촛불시위처럼 수 십, 수 백만의 군중이 밀집해도 그 많은 사람들의 신상을 모두 파악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가히 한 국가 사회의 데이터 프라이버시를 무색하게 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의 작동조차 위협하는 기제로 지목될 만하다.

본래 네트워크와 SNS가 지배하는 현실을 두고 혹자는 단속(斷續)사회라고 했다. 차단하고(斷) 접속한다(續)는 의미의 결합이다. 타인과의 진실한 만남이나 부딪침을 피하기 위해 거리를 두고 자신만을 단속(團束)한다는 의미도 있다. 그 와중에 타자와의 소통도 없고, 그렇다고 온전한 ‘나홀로’의 침잠도 없다. 품위있는 ‘고독의 자유’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지금의 접속시대이자 단속사회다. 안면인식기술은 그렇게 한 인간의 은밀한 경험세계를 만천하에 드러냄으로써 그런 단속사회의 비극을 현대인의 일상으로 만들고 있다.  

그렇잖아도 디지털사회는 각 개인의 삶과 실존적 경험이 현실과 가상세계에서 수많은 대본으로 번역되어 유통된다. 극히 개인적인 관심과 체험도 ‘돈’으로 치환되는 공유의 쳇바퀴를  맴돌 수 밖에 없다. 살아가는 방식과 매순간이 만유의 텍스트로 읽히며, 경제적 재화로 교환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장차 안면인식의 판옵티콘 세상은 어떠할까. 결국 인간의 모든 것이 극단적인 접속의 재료가 될 것인가. 개개인의 삶과 체험이 모조리 시장이 될 것인가. 안면인식 내지 생체인증기술은 그런 심란한 인문학적 질문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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