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 유성문(먼빛)
  • 승인 2020.06.20 11: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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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음식노포·5-마포최대포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전차
비에 젖어 너도 섰고 갈 곳 없는 나도 섰다
강 건너 영등포에 불빛만 아련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기다린들 무엇하나
첫사랑 떠나간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
하나둘씩 불을 끄고 깊어가는 마포종점
여의도 비행장엔 불빛만 쓸쓸한데
돌아오지 않는 사람 생각한들 무엇하나
궂은 비 내리는 종점 마포는 서글퍼라

-은방울자매 노래 <마포종점>

1968년 발표된 은방울자매의 노래 <마포종점>에는 마포종점, 영등포, 당인리발전소, 여의도비행장 등의 지명이 등장한다. 지금은 차를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 여의도를 지나 영등포로 가지만 당시에는 배로 건너다녔고, 서울 도심을 누비던 전차의 종착역은 마포였다. <마포종점>이 발표된 1968년은 서울의 전차가 운행을 중단한 해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마포종점>은 서울 도심에서 사라진 추억의 교통수단, 전차에 대한 향수를 담은 애틋한 노래인 셈이다. 또 2절에 등장하는 여의도비행장은 1963년 김포공항이 개장하면서 한동안 군사 비행장으로만 사용되다가 1971년 폐장된 국내 최초의 비행장이며, 1930년 문을 열어 열병합발전소로 서울을 밝히고 데웠던 당인리발전소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머지않아 그 용도를 달리할 예정이다.

마포대교에 서면 멀리 당인리발전소가 아련하다. <마포종점>에도 나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인 당인리발전소(서울화력발전소)는 이제 문화창작발전소로 거듭나게 된다. 서울시는 지난 3일 제8차 도시계획위원회를 개최하고 마포구 당인동 문화공간 조성사업에 대한 계획안을 수정 가결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지하에는 여전히 화력발전 설비를 갖추고, 지상은 자연공원에 종합문화센터로 조성한다.
마포대교에 서면 멀리 당인리발전소가 아련하다. <마포종점>에도 나오는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인 당인리발전소(서울화력발전소)는 이제 문화창작발전소로 거듭나게 된다. 서울시는 지난 3일 제8차 도시계획위원회를 개최하고 마포구 당인동 문화공간 조성사업에 대한 계획안을 수정 가결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지하에는 여전히 화력발전 설비를 갖추고, 지상은 자연공원에 종합문화센터로 조성한다.

마포에는 유난히 돼지고기구이집이 많다. 근처에 도축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고기문화와 관련한 내력도 없는데 어인 까닭일까. 한강 남쪽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 마포는 서울의 끝이었다. 일제강점기부터 1968년까지 운행되던 전차의 종착역이자 시내버스 종점이었고, 6·25전쟁 이전까지는 서울로 올라오는 배들과 물산의 집산지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강화만이 막혀 한강으로 들어오는 배가 끊기면서 마포나루는 쇠락하기 시작한다. 뱃길이 끊긴 마포는 강이 가로막은 땅의 끝일 뿐이었다. 뱃사람과 장사꾼의 빈속을 채워주던 해장국집과 설렁탕집도 덩달아 사라졌다. 그러나 마포는 여전히 서울 중심가와 가까웠다. 전쟁 끝나자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공덕동과 만리동, 염리동 일대에 새로이 터를 잡았다.
자연스레 인근에 시장이 들어섰고, 만리동 고개에는 소위 ‘텍사스촌’으로 불리는 미군을 상대로 한 사창가가 형성되기도 했다. 하긴 원래 마포는 ‘삼주’의 고장이었다. 마포나루에 물건이 모이니 ‘객주(客主)’가 서고, 객주가 서니 돈이 돌고, 돈에 술과 여자가 따르니 ‘색주(色酒)’가 섰다. 배가 모이니 그 안녕을 빌어줄 무당이 필요했고, 그래서 ‘당주(堂主)’도 여기저기 솟대를 올렸다. 특히 ‘삼개의 색주’가 유명했다. ‘삼개’는 마포의 옛 이름이다. 여하튼 전쟁 이후 공덕동에 들어선 한흥시장은 1958년 당시 점포가 600여 개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고, 돼지고기를 파는 식당도 여럿 생겨났다. 이를 시작으로 돼지껍데기, 주물럭 같은 음식이 마포에서 처음 생겨나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1968년 전차가 끊기고 1970년 마포대교가 놓였다. 그즈음 마포대교 건너 여의도가 개발되었다. 마포도 그 개발 혜택을 입고 오피스타운을 낀 상업지구로 재정립되었다. 이와 함께 지하철 5, 6호선이 마포를 지나게 되었다. 낮고 낡은 건물은 헐리고 새로운 고층건물이 속속 들어섰다. 조선의 물류중심지였던 마포나루가 그 옛 영화를 다시 이루려는 것일까.
1968년 전차가 끊기고 1970년 마포대교가 놓였다. 그즈음 마포대교 건너 여의도가 개발되었다. 마포도 그 개발 혜택을 입고 오피스타운을 낀 상업지구로 재정립되었다. 이와 함께 지하철 5, 6호선이 마포를 지나게 되었다. 낮고 낡은 건물은 헐리고 새로운 고층건물이 속속 들어섰다. 조선의 물류중심지였던 마포나루가 그 옛 영화를 다시 이루려는 것일까.

외식메뉴의 하나로 돼지갈비라는 이름이 만들어질 즈음인 1974년 마포 텍사스골목이 헐리면서 일대의 돼지고기집들이 공덕동사거리 쪽으로 이전했다. 이른바 밝은 곳으로 나온 것이다. 당시 텍사스골목에는 색시집이 스무 곳 정도 있었고, 돼지고기집이 다섯 곳 있었다. 이 중 두 곳이 자리는 옮겼어도 지금까지 영업 중이다. 두 집 다 최대포라는 이름을 쓰면서 서로 원조임을 내세운다. ‘마포진짜원조최대포본점최대포’. 두 곳 모두 돼지갈비 원조임을 자처하지만, 한흥시장에는 두 집 이전에 유대포라는 돼지갈비 전문점과 광천옥이라는 쇠갈비, 돼지갈비 전문점이 있었다. 이 두 집은 오래전 사라졌다. 오늘날 마포를 넘어 돼지갈비 대명사가 된 두 최대포집1950년대 중·후반에 창업했다.

마포의 고기문화는 6·25전쟁 이후 본격화된 대한민국 도시형 육식문화 성장의 압축모델이나 다름없다. 그 시작점에 돼지갈비가 있다. 당시 돼지고기 가격이 싸서 서민이 먹기에 부담 없다는 점이 한몫했고, 갈비라는 그럴싸한 이름도 거들었다. 최대포집에 이어 1966년에는 마포의 서민적 선술집을 대표하는 원조할머니돼지껍데기가 문을 열었다. 돼지껍데기를 처음 미식 차원으로 끌어올린 이 가게는 2012년 재개발에 밀려 문을 닫았다. 1971년에 문을 연 원조주물럭집은 돼지고기 일색이던 마포에 쇠고기 요리인 주물럭을 등장시킨다. 등심에 양념을 하며 주물럭거리는 모습에서 이름이 붙은 주물럭은 1970년대 여의도와 강남 등의 개발붐을 타고 본격적인 고급고기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마포에 어둠이 내리면 돼지갈비집이 불을 밝힌다. 마포에는 돼지갈비골목뿐만 아니라 갈매기골목도 있고, 공덕시장 먹거리촌을 전골목과 양분한 족발골목도 생겨났다. 독특한 부위에 새로운 조리법을 적용한 고기음식들이 수십 년 사이 몇 가지나 탄생한 것이다. 마포옥의 양지설렁탕이나 역전회관 바싹불고기의 명성도 여전하다. 서울의 팽창과 외지인들의 정착, 외식시대의 본격화에 맞춰 마포의 고기문화가 태어나고 성장하며 번성해왔다.
마포에 어둠이 내리면 돼지갈비집이 불을 밝힌다. 마포에는 돼지갈비골목뿐만 아니라 갈매기골목도 있고, 공덕시장 먹거리촌을 전골목과 양분한 족발골목도 생겨났다. 독특한 부위에 새로운 조리법을 적용한 고기음식들이 수십 년 사이 몇 가지나 탄생한 것이다. 마포옥의 양지설렁탕이나 역전회관 바싹불고기의 명성도 여전하다. 서울의 팽창과 외지인들의 정착, 외식시대의 본격화에 맞춰 마포의 고기문화가 태어나고 성장하며 번성해왔다.

마포최대포는 1956년 개업 당시엔 간판이 없었다. 주인의 성이 최씨이니 자연스럽게 ‘최대포집’이라 불렸고, 그게 상호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로부터 60여년, 공덕동사거리 일대는 큰 빌딩들이 들어서면서 거대한 오피스타운이 형성되었다. 마포최대포는 그 빌딩숲 아래  나지막이 몸을 웅크리고 있다. 예전 큰길가의 쪽문은 닫혔고, 골목으로 들어가야 식당 출입문이다. 기억 속의 최대포는 고기 굽는 연기와 냄새로 가득하고 손님은 늘 만원이었다. 늦게 가면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합석을 감수해야만 했다. 그래도 손님들은 다시 몰려들었다. ‘원조’를 먹는다는 위안이 그런 불편을 상쇄하고도 남았던 것일까.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진짜원조’를 내세워도 쇠잔한 기운이 역력하다. 돼지갈비라도 든든히 먹고 다시 기운을 차렸으면 좋으련만.
마포최대포는 소금구이와 돼지갈비, 돼지껍데기 등을 낸다. 애초 최대포가 유명해진 것은 소금구이 덕이다. 두툼한 돼지고기에 왕소금을 뿌려 숯불에 구워먹는 것으로 시작해 1980년대 중반부터 간장 양념을 한 돼지갈비를 선보였다. 이후 돼지갈비가 단연 강세였다가 최근 다시 소금구이가 약진해 현재는 소금구이와 돼지갈비가 반반 정도 나간다. 이 집 단골이라면 놓치지 않는, 특히 마지막에 먹는 음식이 돼지껍데기다. 암퇘지 배 부분의 껍질을 양념에 재어놓았다가 불판에 구워먹는다. 그 생김새와는 달리 부드럽고 고소하기 그지없다. 음식은 맛이 순한 순서대로 먹어야 뒤에 먹는 것도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법. 마포최대포의 음식을 골고루 맛보려면 소금구이, 돼지갈비, 돼지껍데기 순으로 먹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다.

1956년에 개업해 지금까지 영업하는 마포진짜원조최대포. 연탄불에 구워먹는 양념 돼지갈비를 서울에서 처음 선보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메뉴인 돼지갈비는 달지도 짜지도 않은 균형 잡힌 양념이 고기 안에 잘 배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암퇘지의 배 껍데기만을 이용해 정성스레 애벌구이한 부드럽고 고소한 껍데기도 인기메뉴 중 하나. 지하철 5, 6호선 공덕역 4번이나 5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1956년에 개업해 지금까지 영업하는 마포진짜원조최대포. 연탄불에 구워먹는 양념 돼지갈비를 서울에서 처음 선보인 곳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메뉴인 돼지갈비는 달지도 짜지도 않은 균형 잡힌 양념이 고기 안에 잘 배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이 특징이다. 암퇘지의 배 껍데기만을 이용해 정성스레 애벌구이한 부드럽고 고소한 껍데기도 인기메뉴 중 하나. 지하철 5, 6호선 공덕역 4번이나 5번 출구로 나오면 된다.

여행작가 유성문은 길에서 길의 내력을 들춰왔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새겨왔다. 그 내력과 사연은 먼빛이 되어 다시 그를 길로 내세운다. ‘길에서 길을 묻다’(경향신문), ‘사람의 길’(주간경향) 등 오랫동안 길과 사람 이야기를 써왔다. 문학관기행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를 펴내기도 했다.

 

 

[ 애플경제 = 유성문(먼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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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지서(위영) 2020-06-26 06:34:39
사람이 모이고 사무실이 들어서면 뒤따라 가게가 들어오며 음식점과 술집이 생긴다. 물로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자들도 따라온다. 옛말로 색주라한다.

마포에 오래 거주하는 친구들 이야기로는 마포대교 옆 공영주차장이 마포 역전이었다고 한다.

마포의 유명한 돼지갈비는 몇 번 시식을 못 해 보았다. 고기야 맛으로 치면 돼지고기가 최고이다. 중국과 독일이 세계 최고 소비국인 것도 돼지고기 맛 대문이다. 물로 순대도 만들어 먹는다.

당인리 발전소는 지하에 발전소를 만들고 지상 건물은 생태박물관으로 변했다고 한다. 1970년대 친구가 있어 종종 가 본 곳이다. 그 때는 완전 서울 외곽이었는데 지금은 중심이 되었다. 세상이 변하기 때문이다.

유작가의 수고에 오늘도 서울의 진면모를 보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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