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혁신, 그 한계

문 닫은 싸이월드
싸이월드 사이트는 이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쳐도 로그인이 안 된다. 로그인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메인 페이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메인 페이지가 아닌 클럽홈 주소로 우회하면 로그인이 가능하다지만 서버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지난 5월26일 국세청은 세금 체납을 이유로 싸이월드의 사업자등록을 직권 말소했다. 사실상 강제 폐업이다. 싸이월드 서버는 KT 데이터센터에 위치해 있는데, KT 측에 따르면 서버 계약기간도 지난해 이미 만료되었다고 한다. 서버 비용도 밀려 있는 상태다.

도메인은 올 10월까지 1년 연장했지만 언제 사이트가 없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상황이 악화되어 있다. 대표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폐업 의사가 없다고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는 하다. 여전히 투자처를 물색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싸이월드의 회생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다.

페이스북보다 빨랐지만
국민 1세대 토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싸이월드는 2000년대 한국 인터넷의 한 축이었다.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전 세계 SNS 시장을 독점하기 전, 싸이월드는 '국내 1세대 SNS'로 3000만명의 가입자를 보유한 플랫폼이었다.

온라인 친구격인 '1촌'들과 사진·소식을 공유하는 SNS 플랫폼으로 당시 미니홈피를 꾸밀 수 있는 사이버 머니 '도토리'라는 수익모델도 구축에 성공, 전성기 당시에는 연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싸이월드는 2003년 SK텔레콤의 자회사 SK커뮤니케이션즈에 인수돼 포털 네이트와도 결합했다.

싸이월드를 인수한 SK커뮤니케이션즈(네이트닷컴)는 한때 포털 업계 1위를 넘볼 만큼 급성장했고, 2007년에는 시가총액이 1조3000억 원을 넘기기도 했다. 싸이월드는 벤처 1세대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혔다. 든든한 투자처도 생겼고, 월간 3000만명의 유저를 보유했기에 누구도 싸이월드의 몰락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 뒤 싸이월드는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PC 환경에 최적화된 싸이월드는 모바일 시대에 뒤쳐진 대응으로 이용자에게 빠르게 외면당하기 시작했다.

모바일시대에 뒤쳐지다
싸이월드의 몰락은 이 때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2014년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독립한 이후 2016년 프리챌 창업자인 전제완 대표가 싸이월드를 인수했지만 여전히 서비스 개편은 지지부진했다.

그래도 싸이월드는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등 글로벌 소셜미디어에 왕좌를 내주고도 한동안 명맥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월 접속자도 꾸준히 수백만 명을 넘겼다. 2017년에는 삼성벤처투자가 50억원을 투자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2019년 10월14일 갑자기 ‘접속장애’ 사태가 발생하면서 내부 사정이 드러났다. 도메인(인터넷 주소) 연장 처리를 하지 않아 사이트가 폐쇄된 것이다. 닷컴(.com) 도메인을 연장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고작 2만원 남짓에 불과하다.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인터넷 기업이라면 저지르지 않을 일이었다. 2019년에는 직원들이 임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는 뉴스가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해 전 대표는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클링(CKCT)’으로 돌파구를 찾겠다고 했다. 물론 이 역시 사실상 실패한 시도였다.

클링에 조기 투자했던 투자자들도 사실상 손해를 입었다. SK커뮤니케이션즈도 결국 2017년 상장폐지되어 현재 SK텔레콤 자회사로 편입된 상태다.

시대와 변화
시대에 발맞추지 못한 인터넷 서비스의 파산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2004년 출범한 페이스북는 전 세계 SNS 판도를 변화시켰지만, 그보다 앞서 출범했던 싸이월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싸이월드가 탄생했던 1999년, MP3 플레이어계 아버지 격인 ‘아이리버’도 탄생했다.

싸이월드처럼 아이리버도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때 시대를 풍미했다. 아이리버는 2000년대 초 MP3 산업을 선도하며 업계 1위를 달렸다. 당시 이용자들은 소니 워크맨과 CD플레이어로 음악을 들어야 했는데, 대중은 휴대용 MP3의 편의성과 아이리버의 참신한 디자인에 환호했다.

이리버의 전신인 레인콤은 출범 1년만에 국내 MP3플레이어 시장 60%를 독식했고 레인콤은 최전성기를 찍었던 2004년, 창립 5년만에 매출 약 4500억원을 기록, 국내 MP3 시장 점유율 80%와 세계 시장 점유율 25%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수립했다. 뒤늦게 애플이 2001년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라이벌로 지목했던 것도 아이리버였다.

그러나 애플이 음원 플랫폼 '아이튠즈'를 바탕으로 MP3 플레이어 '아이팟'과 스마트폰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리버는 일명 애플 '짝퉁'으로 불린 'H10'을 출시했지만 이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드디어 애플의 아이폰 출시를 기점으로 스마트폰 시대가 시작되면서 MP3시장은 점점 줄어들게 됐다. 아이리버는 매출이 2006년 4000억원대에서 2013년 700억원대까지 떨어졌다.

아이리버는 지난 2014년 SK그룹에 인수돼 SK텔레콤의 자회사 신분이 됐고 지난해 3월에는 사명도 드림어스컴퍼니로 변경했다.이름이 바뀐 아이리버는 이제 MP3 플레이어 제조사가 아니라 디지털 음원 유통사다.

혁신과 상상력의 한계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 IT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초고속 인터넷과 이동통신 인프라 위에 외환위기 이후 벤처 붐 시기에 등장한 인재들이 수많은 제품과 서비스를 쏟아냈다. 이 시절 국내에서 등장해 세계 시장의 흐름을 앞서갔던 대표주자가 싸이월드와 아이리버였다. 싸이월드는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의 원조였고, 아이리버는 어디서나 편리하게 디지털 음악을 듣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두 회사 모두 오늘날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글로벌 혁신’의 실례였다. 싸이월드나 아이리버의 실패를 한 두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들과 경쟁에서 승리한 글로벌 기업과 비교해보면 아쉬운 점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상상력의 크기다. 개별 서비스나 제품에 머물지 않고 더 많은 사람과 기업, 외부 콘텐트 제공자와 개발자 등이 참여하는 플랫폼으로 키우려는 상상력의 크기에서 차이가 났다. PC 환경에 최적화된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스마트폰 시대를 맞아서도 도통 모바일 환경에 맞는 변신을 하지 못했다.

도토리는 미니 홈피를 꾸미는 아이템 거래 수단에서 더 발전하지 못했다. 아이리버는 여전히 어디선가 구한 MP3 파일을 집어넣어 들고 다니는 휴대형 음악 재생기기에 머물렀다. 콘텐트와 유통에 영향력을 갖지 못한 단순 재생기기는 차별화에 실패하고 시장에서 힘을 잃었다.

싸이월드는 경영난으로 직원 임금 10억원 상당을 주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선고는 다음 달 중순으로 예상된다. 경영난으로 폐업 갈림길에 선 싸이월드의 운명은 임금 체불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따라 일단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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