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디지털 기술 중에서 AI만큼이나 양가적 존재가 있을까. 자동화를 넘어선 AI는 스스로 사고하는 기계로서 인간의 편의와 효용 극대화에 복무한다. 그러나 도가 지나쳐 사이버 영장류 단계에까지 이르면서, 인간을 배제하고, 인간을 오히려 객체로 삼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팽배하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러닝 머신, 스마트 머신 따위가 등장할 때부터 그 위험성을 경계하며 대안을 걱정해왔다.

역설적으로 이런 우려는 그것을 만든 과학자들에게서 더 크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온전한 인공 지능의 개발은 인류의 종말을 불러올 수 있다”고 했고, IT혁명의 기린아라고 할 엘론 머스크는 “잘못하면 지상에 희대의 악마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했다. 그들의 걱정은 괜한 것이 아니다. 맹목적인 과학적 사변(思辨)이 급기야 AI기술로 영원히 죽지 않는 ‘인공생명’을 꿈꾸는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참으로 발칙하다고 할까. 애초 죽음은 숙명이기에 앞서 인간의 존재방식이다. 진화생물학에 기대온 인류의 기원이며, 구차스런 논리적 탐구가 필요 없는 실존적 진리다. 감히 인공으로 생명을 만든다니, 철학의 과잉 아니면, 오도된 종교적 도그마일 뿐이다. 그러나 4차산업혁명기술과 AI 신봉주의는 이런 불변의 진리까지 전복하려 한다. 시공간과 차원을 초월한 초자연적 지능으로 죽음을 없애고, 영생을 기하고자 한다. 인공지능을 넘어선 인공생명(AL)을 만들고, 가상 세계의 ‘건조한(dry) AI’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젖은 생명(Wet-Life)’으로서 AL을 탄생시키고자 한다. 마침내는 초인적 트랜스휴먼이 되어 영원히 사는 호모데우스를 목표하고, 포스트휴머니즘을 구현코자 한다. 이른바 테크노퓨처리즘의 발흥(勃興)이다.

그런데 요즘 ‘집단AI’가 등장했다. 한 인간이 아닌 다수 인간의 능력을 모으고 증폭시켜 그들의 집단을 ‘수퍼 전문가’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다. 발상과 차원이 전혀 다른 인공지능인 셈이다. 영국 과학 저널리스트 그레그 프라이어가 처음 제기했고, 잇따라 IT업계와 전문가들이 이에 호응하고 있다. 그야말로 인간에게 오직 이롭게 AI를 이용하려는 고민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인간소외의 극단적 물질문명의 도구인, 무채색의 AI와는 결이 다른 것이다.

집단AI는 ‘인간을 위한 AI기술’을 생성하고, 인간의 것으로 그것을 실용화한 것이다. 집단AI의 알고리즘은 ‘인간을 외면하거나 소외시키는 별종의 기계 지능’을 배격한다. 대신에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 지성을 확장하는게 키워드다. 한 개인이 아니라, 평범하고 일반적인 인간 그룹을 고도의 전문 지성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계에 인간의 지능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해 인간의 두뇌와 지성을 초인적으로 증폭시키는 것이다. 집단의 모든 구성원들이 다른 모든 이들의 생각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게 하고, 그런 집단의 판단이 가장 잘 반영된 결정으로 수렴되게 한다. AI는 수렴과 반영의 도구일지언정, 의사 결정 과정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인간이다. 만약 그 과정에서 인간이 손을 떼면 AI 기능 자체도 멈춰버린다. 인간에게 배운 기계 지능의 위협은 최소화하고, 인간의 지능 자체를 크게 높이는 것이다.

이는 민주적이기도 하다. 집단 AI 참여자들은 밀고 당길 수 있는 일종의 사이버 ‘퍽(puck)’을 사용하며, 그룹이 목표하는 서로 다른 가능성들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혹은 멀어졌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의료계에선 특정 소견의 정확도에 대한 의료진 집단의 믿음과 확신 정도에 따라 퍽의 위치가 이동한다. 퍽이 일종의 잣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미국에서 최근 등장한 유나니머스AI가 그런 형태다. 역시 집단AI의 일종이다.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인간은 초인간적인 힘을 지닌 초인이 되었으나, 초인간적인 이성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한탄했다. 초인간적인 이성, 그것은 결코 AI와 인공생명을 꿈꾸는  테크노퓨처리즘과 같을 순 없다. AI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소유물일뿐,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집단AI는 다르다. ‘지적 집단’으로서 인류의 존재를 굳건히 하는 특별한 AI기술이어서 반갑다. 집단AI는 내년쯤 상용화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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